시계가 치즈처럼 흐릅니다. 구름은 방 안으로 밀려들고요. 초현실주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죠. 바로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가 창조한 풍경입니다.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예술 사조이자 운동입니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무의식, 꿈, 욕망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술가마다 표현 방식은 달랐을 텐데요. 정작 우리에게 익숙한 건 몇몇 작품으로 한정됩니다. 의식 너머 그 이면의 세계를 더 넓혀줄 초현실주의 예술가 두 명을 소개합니다.
심해 속 따뜻함
에일린 아거
꿈속에 심해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에일린 아거(Elieen Agar, 1899-1991)는 해양 생물 모티브와 따뜻한 푸른색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명확하게 구획된 선 안에 기하학적 패턴을 콜라주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잔물결, 불가사리, 뼈, 돌, 해양 쓰레기 등 해안가에서 볼 법한 형태를 낯선 맥락에 배치합니다. 오브제 개별로는 익숙하다가도 모아놓은 전체 모습은 기이하죠.
아거는 자연에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지낸 어린 시절과 잉글랜드 해안가에서 보낸 휴가에 대해 인상적인 기억이 있죠. 고령이 된 시점에도 ‘자라나는 나무, 떨어지는 조약돌 등에서 자연이 말하는 신호를 읽었다’며 그때를 떠올렸으니까요.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때로는 경고를 보낸다면서요.
1936년, 아거는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립니다. 런던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에 참여한 것이 계기였는데요. 해당 집단의 일원이 된 바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남성 위주의 흐름과 일부 화풍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내가 포함된 것에 놀랐다’며 그 이유로 ‘그들은 여성을 오직 뮤즈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죠. 역으로 남성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동료 예술가에 대한 평은 더 재밌습니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썼던 문학가 ‘앙드레 보르통’은 사자 같고, 이 글 서문에서 언급했던 ‘살바도르 달리’는 눈에 확 띄고 폭발적인 기질을 지녔다고 했죠. 붉은 면과 검은 선의 추상 표현으로 알려진 ‘호안 미로’는 아이 같고 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아거의 거침없는 성향은 자서전에 쓴 것처럼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나는 평생을 관습에 저항했다. 색, 빛, 신비로움 등을 내 일상에 끌어들이면서.”
_에일린 아거
충돌하는 감각
메레 오펜하임
불쾌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메레 오펜하임(Meret Oppenheim, 1913~1985)은 질서와 규범을 거부합니다. 회화에서부터 디자인과 공예, 오브제, 조각, 시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말입니다. 털, 음식, 사람, 캔버스 등 사용하는 화구도 일관성과 거리가 멉니다. ‘비일관성’이 오펜하임의 예술 세계를 이루는 키워드로 볼 수도 있겠네요.
그는 한 작품에 극단에 놓인 감각을 놓아 감상자의 불편감을 유도합니다. 차가움과 따뜻함, 부드러움과 딱딱함 등 상반된 감각이 한 데 존재하죠. 다루는 개념 역시 대립 관계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실과 꿈, 일상과 환상, 자연과 문명, 유용함과 무익함 등입니다.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같이 놓였을 때, 개념과 개념 간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작품 속 오브제는 본래 일상에서 사용되던 목적을 완전히 잃고, 오직 예술로써 기능하게 됩니다.
커피 잔과 접시, 스푼이 털로 덮인 “모피 잔의 아침 식사(1936)”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극단성을 잘 드러냅니다. 이 작품에서 커피 잔은 액체를 담는 용도를 잃습니다. 연한 갈색의 중국산 양털 사이로 잔 손잡이와 접시 밑바닥의 본 질료인 사기가 드러납니다. 잔을 보는 우리는 무언가를 ‘마신다’는 개념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되는데요. 뒤덮인 털은 입술을 갖다 대지 않아도 간지러운 감각을 연상시켜 역겨움, 당혹스러움, 불쾌감 등을 느끼게 합니다.
오펜하임은 이 충돌하는 감각으로 갑작스러운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이 작가보다 더 큰 생명력을 얻게 되죠. 다른 작품을 공개해도 모두가 ‘그 잔’을 이야기했으니까요. 여기에 당시 예술계에서 여성 뮤즈로만 소비되었던 트라우마, 히틀러 집권으로 유대계 의사였던 아버지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상황 등이 맞물려 대중에 17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요. 긴 공백 뒤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창작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이었죠. 오펜하임은 예술로 무기력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구원했습니다.
“모든 개념은 그것의 형태와 함께 탄생한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나는 그 생각들을 현실로 만들어버린다.”
_메레 오펜하임
초현실주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작품에도 실재하는 오브제가 등장하죠. 인식하는 현실을 기점으로 이면에 놓인 지배도 외압도 없는 무의식 세계를 지향합니다. 환상과 구별되는 이유인데요. 이는 예술가들에게 전쟁의 기운과 대중의 혼돈이 가득하던 시대를 버티는 부표가 아니었을는지요. 아거와 오펜하임이 보여준 세계가 무의식 속 다른 풍경을 불러왔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