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도심 속에서 고요를 찾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방 안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 동안에도 손에 들려 있는 전자기기와 창밖 어딘가에서 무수한 빛과 소리가 쏟아지죠. 자극적이고 뻔한 일상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 또한 도시인에게 쉽게 허락되는 자유는 아니니까요. 대신 도심 곳곳에 숨겨진 공간에서 휴식을 도모해보는 건 어떨까요? 단 한 사람의 쉼을 위해 마련된 서울의 1인 휴식 공간들을 모았습니다.
내 영혼을 쉬게 하는 곳
머물다, 사당
비움과 회복을 위한 공간 ‘머물다, 사당’의 이야기는 공간 지기의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향이 울산인 그는 마음이 울적할 때면 바다를 찾아갔었다고 해요. 하지만 서울은 달랐습니다. 도망칠 곳 없이 내몰리기만 하는 서울살이가 외롭고 힘겹게 느껴졌죠. 그래서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동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혼자 쉬고 회복하고 비울 수 있는, 정말 따뜻한 동굴을요.
1인 입장이 원칙인 이곳에서는 3시간 동안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사색 카드, 책, 다과와 같은 ‘머뭄도구’들과 함께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죠. 공간 지기의 배려심이 묻어나는 메모들과 앞선 방문객들이 남겨둔 ‘경험 공유 기록지’는 이 고독이 결코 쓸쓸하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계절마다 공간의 컨셉과 큐레이팅이 바뀌는 것도 이곳의 큰 매력입니다. 지난가을에는 ‘외로움 보호구역’이라는 주제로 내 안의 외로움을 살피는 시간을 가졌죠. 세심하게 준비된 공간 안에서 그동안 돌보지 못한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 시간이 금세 흘러가 버립니다. 지금은 공간을 재정비하고 있어 예약이 어렵지만, 곧 따뜻함을 가지고 돌아온다고 하니 기다렸다가 문을 두드려보세요.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훌훌 찾아갈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되어줄 겁니다.
주소: 서울시 동작구 동작대로3길 17, 202호
나를 환대하는 공간
환대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뜻의 공유 아지트 ‘환대(歡待)’는 8명의 청년이 모여 만든 공간 그룹 와트(Watt)의 세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약 18평 정도의 주택 공간을 거실, 주방, 다락으로 나누어 사람들과 향유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소개할 곳은 나를 환대하는 공간 ‘다락’입니다. 혼자서만 이용할 수 있는 이 공간은 가정집의 방 하나를 옮겨놓은 것처럼 안정적인 구조와 편안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죠.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싱잉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신을 달래주는 싱잉볼의 울림을 느낀 후에는 웰컴 티를 푹 우려 마셔요. 환대라는 공간의 이름처럼 스스로를 극진히 보살펴 주는 느낌이죠. 책상 서랍을 열면 책과 연필, 아기자기한 스티커들이 나를 반깁니다. 다이어리를 꾸며도 좋고, 사부작거리며 미래를 계획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겠네요.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준비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착용하고 소파와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겠습니다. 출출할까 싶어 포장해온 음식도 잊지 않고 꺼내 먹어요. 이보다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소박하지만 충분한, 찰나의 호캉스를 즐기고 싶다면 환대의 다락방에 찾아가 보세요.
주소: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848-6
INSTAGRAM : @place_hwandae
환대 예약 페이지
나만의 비밀 아지트
마이시크릿덴
덕수궁 돌담 옆에는 아주 비밀스럽고도 근사한 공간이 숨어 있는데요, 바로 ‘마이시크릿덴(My Secret Den)’입니다. 비밀을 뜻하는 Secret과 야생동물이 사는 굴 Den이 더해져, 나의 비밀 은신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이곳은 이름처럼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찾아오면 좋을 공간이에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예약제 공유 서재를 운영하고, 저녁 6시부터는 와인 페어링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앞서 소개한 두 곳과는 달리 여러 사람과 함께 공간을 공유한다는 특징이 있죠. 소란스럽지 않을까 싶지만, 책과 함께하는 ‘낮의 사색’ 동안에는 대화가 금지되어 있어 차분한 분위기에서 몰입할 수 있어요.
적막을 감싸는 클래식 음악과 애정 어린 책들도 마이시크릿덴을 찾게 만드는 이유지만, 사계절이 담긴 덕수궁 뷰를 빼놓고 이곳을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한눈에 가득 차는 자연은 벅찬 경외감을 선사하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풍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혼자 고요히 창밖을 바라보며 그동안 미뤄둔 고민들을 하나둘 꺼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현재 마이시크릿덴에서는 평일 정오부터 오후 1시 10분까지 팝업 카페 ‘Cafe Don’t Tell Boss’도 운영하고 있어요. 보스에게 말하지 말아달란 이름처럼,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숨 돌리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카페랍니다. 팝업 카페 운영시간에는 예약 없이도 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요.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빌딩 숲 사이 오아시스 같은 이 비밀 동굴에 잠시나마 몸을 숨겨보는 건 어떨까요.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9 현진빌딩 401호
INSTAGRAM : @my.secret.den
마이시크릿덴 예약 페이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머무르는 경험은 삶을 환기해 줍니다. 그래서 여행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하죠. 새로운 곳에 있는 나를 낯설게 바라보고 깊이 사유하는 경험은 일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줄 거예요.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게 문득 버겁게 느껴진다면, 이번 주말엔 가까운 휴식 공간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