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라고 합니다. 이 말을 빌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은 사람의 몸이라 말해봅니다. 둥근 어깨와 굽은 등을 보노라면 누군가의 생애를 엿볼 수 있고, 제각각의 색깔과 모양, 체온과 체취로 독창성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들여다볼수록 경이롭고 무한히 변형 가능한 물질, 몸. 이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사진예술의 재료로 적극 활용한 포토그래퍼를 소개합니다.
대자연과 결합하는 몸,
롭 우드콕스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롭 우드콕스(Rob Woodcox)는 광활한 풍경에 대규모 앙상블을 섞어냅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수십 명이 얽힌 모양새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는 인간이 지구를 훼손하는 것을 경계하고 사진을 통해 환경과 교감하고자 합니다. 그의 사진에선 사람과 자연이 모두 대등한 중요성을 가지며 상호작용하고 그 과정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표출합니다.
한편 그는 퀴어 정체성, 신체 중립, 인종 평등, 그리고 환경 정의(justice)를 그려내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피사체는 옷을 입지 않고 각자의 살색을 드러내며 사회적 관습으로만 이해되길 거부합니다. 태초로 돌아간 듯한 맨몸이 자연의 순수함과 조화를 이룹니다. 다이나믹한 스케일이 인상적인 작가입니다.
WEBSITE : 롭 우드콕스
INSTAGRAM : @robwoodcoxphoto
헤엄치는 몸,
에드 프리먼
노년의 남성 포토그래퍼 에드 프리먼(Ed Freeman)의 이력은 특이합니다. 그는 포크 기타와 클래식 류트 연주자였고 비틀즈의 마지막 투어에 로드 매니저로 동행했습니다. 중년 즈음에야 사진으로 진로를 바꾸었는데, 다소 늦게 시작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탁월한 감각이 눈에 띕니다.
그는 물의 질감을 사랑합니다. 물속에서 중력을 거스르며 부유하는 신체는 그 본연의 곡선을 자랑합니다. 지상과 맞닿은 표면장벽으로 흐려지는 반사 이미지가 신비함을 더합니다. 마치 양수 속 태아를 떠올리듯 숭고한 동시에 육체의 관능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표지를 맡은 그는 기품 있고 우아한 누드 커버를 완성했습니다.
WEBSITE : 에드 프리먼
INSTAGRAM : @edfreemanphoto
사물을 닮아가는 몸,
에이디
신체 사진을 찍는 작가 중엔 유독 무용수 출신이 많습니다. 움직임에 대한 오랜 탐구가 자연스레 다른 방식의 표현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영국 출신 포토그래퍼 에이디(AdeY)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현대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약했습니다. 그의 누드 사진에 성적 의도가 담기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 직접 몸을 예술 도구로써 사용해본 경험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에이디의 사진에선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옷을 입고 있어야 할 장소에 살색의 향연이 펼쳐지며 비일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사물의 형태와 닮아가는 몸이 주목할 만합니다. 의자나 계단, 난간의 모양을 맨몸으로 흉내 냅니다. 하지만 철근으로 만들어진 딱딱한 조형물과 따뜻하고 물렁한 인간의 살결은 어울리지 않고 더욱 대비됩니다. 이러한 물질의 충동이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나 불안을 포착하며 인간이 얼마나 취약하고 외로운 존재인가에 대해 반문하게 합니다.
WEBSITE : 에이디
INSTAGRAM : @__adey__
기하학적인 몸,
융청린
융청린(Lin Yung Cheng)은 ‘3cm’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대만의 포토그래퍼입니다. 그는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여성의 몸을 해체하며 주목받았습니다. 뼈가 두드러질 정도로 마른 몸을 가진 여성이 붉은 실로 생살을 꿰매는 이미지를 연출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이란 실로 고문과 자기학대에 가깝다는 것을 꼬집었습니다. 그의 사진은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듭니다. 가령 두피의 가르마까지 이용해 선을 긋는 것처럼 말이죠.
융청린의 피사체는 어색하고 괴로워 보입니다. 곡선으로 타고난 몸을 직각으로 만들며 불편한 자세를 취하게 합니다. 가령 거울을 이용해 관절을 해부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모양새로 여성의 몸을 낯설게 하며 새롭게 보기를 제시합니다. 그 비판을 고유한 미학으로 전개했다는 것이 융청린의 강점입니다.
작가들 대부분이 공통으로 했던 말이 있습니다. 롭 우드콕스는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의 젖꼭지가 검열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나체를 예술로 다룰 때도 검열당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에이디는 “매체에서 누드사진을 더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노출이 꼭 섹시하거나 섹스에 관한 것일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발가벗은 몸뚱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그 한계는 달라집니다. 대상화가 되길 탈피한 몸은 무수히 많은 결합성을 가진 질료로 활약하며 그 자체의 미학과 철학을 전파합니다. 우리의 몸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고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예술 그 자체라는 걸 사진들은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