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는
꼭 필요할까

도슨트는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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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를 보러 갔다. 운이 좋게 입장하자마자 도슨트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열심히 들으며 따라다녔다. 도슨트의 설명에 한참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나오니,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명을 듣지 않고 홀로 자유롭게 관람한 일행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이번 전시는 특히 작품설명도 없고 알쏭달쏭한 작품들이 많아서 호기심을 매우 자극했을 것이다. 작품 순서를 따라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니, 스스로 고민하고 상상했던 것보다는 시시하다는 반응이다. 억울해졌다. 설명을 듣고 난 반응 때문이 아니라, 열심히 도슨트 설명을 들은 필자보다 홀로 실컷 감상한 후에 설명을 추가로 들은 일행이 더 다채롭게 감상한 것 같아서 억울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전시에서 도슨트가 가지는 의미가.

우선, 논의 대상은 시각장애인이 아닌 성인 대상의 도슨트 프로그램으로 한정하려 한다. 도슨트에 대한 논의는 어린이나 시각장애인처럼 포용에 대한 관점으로도 풀어갈 말이 많지만, 이 경우에는 어린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쉬운 설명이나 보지 않아도 작품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상세한 묘사 등 각 필요에 따른 맞춤형 도슨트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도슨트의 역할과 그 필요에 대한 목적성이 다르므로 본 논의에서는 제외하고자 한다. 추가로, 도슨트 프로그램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전시회가 이루어지는 뮤지엄, 즉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틀어 지칭하려고 한다.


도슨트의 의미

Salvador Dali Museum 도슨트
이미지 출처: Salvador Dali Museum

도슨트(docent)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서 전시된 예술작품을 설명하고 관람객을 이끌 수 있는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정의한다. 1845년 영국에서부터 처음 도슨트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20세기 초 미국 보스턴 미술관을 이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도슨트 프로그램의 목적은 전시된 예술작품에 대한 해설을 제공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불친절한 예술작품이 친절하게 다가가게 된다. 특히 현대예술의 모호성과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는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작품의 배경과 의미, 작가의 의도 등 작품 전반에 대해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도슨트 주변으로 많은 관람객이 몰려다니게 되어, 설명을 듣지 않는 다른 관람객의 관람을 방해하기도 한다. 설명을 듣는 동안 정체된 군중이 작품을 가리고, 도슨트의 큰 목소리가 소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특히 요즘에는 오디오 앱처럼 관람객에게 개별적으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사용되면서 도슨트의 역할에 더욱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오디오 앱이 도슨트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고, 도슨트는 사라질 만한 직업일까? 필자는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도슨트 프로그램의 한계를 짚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해보려 한다.


도슨트가 등장하는 때

뮤지엄
이미지 출처: Medium

우리가 뮤지엄에서 관람하는 행위는 ‘뮤지엄 경험’이라는 용어로 지칭할 수 있다. ‘뮤지엄 경험(museum experience)’는 “관람자의 개인적, 사회적, 물리적 맥락의 중첩을 통해 구성되는 영역”으로 정의된다.¹⁾ 즉, 관람자의 개인적인 배경과, 관람자가 위치한 사회적 배경, 물리적 위치 등에 따라 뮤지엄에서의 경험이 서로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뮤지엄에서의 경험이라고 하면, 작품을 관람 중인 모습을 떠올린다. 우리가 뮤지엄에서 겪고자 하는 것은 전시 예술품에 대한 감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뮤지엄 경험 연구는 관람자의 경험을 관람 중인 시간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뮤지엄 경험은 관람자의 취향, 정체성 등에 따라 달라지고, 관람 이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즉, 뮤지엄 경험은 ① 관람 전 관람자의 사전 지식, 방문 동기, 정체성 등에 영향을 받고, ② 관람 중에 나타나는 인지적 변화와 정서적 반응, 그로 인한 담화나 행동을 의미하며, ③ 관람 후에 작품을 묘사하고 평가 및 분석하는 모든 과정을 포괄한다. 특히 관람 이후에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작품에 대한 감상을 종합적으로 엮어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만들고 체화하므로,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경험이다.

보통 도슨트 프로그램은 관람 중에 전시 작품을 함께 관람하며 이루어진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질문을 유도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풀어낸다. 하지만 뮤지엄 경험이란 관람 전과 관람 중, 그리고 관람 후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과정이다. 관람자의 심층적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면, 도슨트의 역할이 꼭 관람 중일 때만 함께할 필요가 있을까?


해석은 제공하는 것일까,
제한하는 것일까

미술 작품 감상하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Unsplash

도슨트의 역할은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일이다. 보통 도슨트 프로그램은 작품의 의미, 제작 배경, 작가의 의도 등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관람자는 이를 수용하는 입장이다. 도슨트 프로그램에 관람자와의 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구체적 감상을 이끌어내며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나가는 대화는 드물다. 그렇다면 관람자는 도슨트의 해석을 수용하는 것으로 예술작품을 충분히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예술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논의점이 있다. 예술작품을 ① 해석의 대상으로 보는 입장과 ② 체험의 대상으로 보는 입장이다. ① 해석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에는, 예술작품이 함유하는 내용과 목적이 분명하다고 여긴다. 작품에 대한 고정된 해석이 존재하며, 보통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고 현실 고발의 성격을 띤다는 의견이다. 작품 해석에 권위를 가진 자만이 해석이 가능하고, 그 해석을 수용하는 것이 관람자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② 체험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에는, 작품 그 자체가 일으키는 감상을 중시하고 해석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작품 내에 존재하며, 권위자의 해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권위자의 일방적 해석은 작품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행위가 된다.

대부분 도슨트가 전달하는 작품 해설은 예술작품을 해석의 대상으로 보는 입장과 일치한다. 도슨트는 작품을 해석할 만한 권위자이고, 예술작품에는 정해진 의미가 있다. 관람자는 대부분 도슨트의 해설에 귀 기울이고 수용하며, 스스로의 주체적인 감상을 확장시키기 어렵다. 그렇다면, 자칫 관람자의 시각을 수동적으로 제한하고, 관람자의 다의적인 해석을 방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비슷하게 고등학교 국어 교과과정에도 문학작품의 해석에 대한 네 가지 관점이 나온다. 작품 내적인 요소로만 이해하고 분석하는 절대론적 관점, 작가의 의도를 고려하는 표현론적 관점, 사회적 이슈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반영론적 관점, 독자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효용론적 관점이다. 교과서는 어느 관점이 옳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네 가지 관점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작품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고 강조할 뿐이다. 도슨트 프로그램에도 관람자 입장에서 해석하는 과정이 추가되어야 균형적인 작품 감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포스트 뮤지엄에서의 도슨트

앉아서 한 곳을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Unspalsh

도슨트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공간적 배경을 들여다보자. 기존에 뮤지엄은 교육적 역할이 가장 두드러졌다. 작품을 수집하고 보관하며, 그에 대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것이 뮤지엄의 주된 활동이었다. 도슨트 프로그램의 형태와 유사하게, 뮤지엄이 관람자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일방향이었던 것이다.

이후 뮤지엄 담론은 점차 관람자의 경험에 주목하게 되면서 뮤지엄의 역할을 재정의하기 시작한다. 교육보다는 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주목했다. 후퍼 그린힐(Hooper-Greenhill)은 ‘포스트 뮤지엄’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참여와 협업을 강조했다. 작품 선정이나 평가 등 전시를 구성하는 과정까지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며 뮤지엄의 콘텐츠에 대중의 다양한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뮤지엄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담론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공간이다.

뮤지엄의 사회적 기능이 확대되면 관람자들의 대화를 이끌고 참여를 유도하는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산재된 의견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구성하고 적절히 배치할 만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뮤지엄이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방향성을 고려했을 때, 도슨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까지 세 가지 질문이 나왔다.

① 도슨트 프로그램을 ‘관람 중’에만 진행되는 것으로 한정해야 할까.
② 관람자의 개인적인 시각과 자유로운 해석을 도슨트의 해설이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③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는 포스트 뮤지엄에서 도슨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필자는 마르지엘라 전시를 자유롭게 감상하고 이후에 도슨트 설명을 전해 들었던 일행의 방식이 가장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유롭게 전시를 관람한 이후에 모여서 도슨트의 해설과 함께 감상을 나누고 의미를 구성해가는 것이다. 도슨트 프로그램을 관람 이후에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한다면 다른 관객에게 방해도 되지 않고, 전시 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규모보다 더 많은 관객이 참여할 수도 있다. 관람 중에는 도슨트 해설 없이 작품을 감상하며 작품의 의미를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해석해나갈 수 있고, 관람 후에는 도슨트의 통솔 아래 다른 관람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의 감상을 더욱 확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슨트는 예술적 지식이 풍부하고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뛰어난 고급 인력이다. 작품의 설명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담론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통해 도슨트를 더욱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용할 수 있지 않을까. 도슨트는 뮤지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맞춰 관람자와의 능동적인 쌍방소통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대화형 도슨트 프로그램을 시도했는데, 하나의 전시에서 여러 형태의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 점이 참 흥미로웠다. 필자가 제시한 것과는 달리, 함께 작품을 관람하며 감상을 나누고 이후 체험활동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앞으로도 이처럼 열린 형태의 다양한 도슨트 프로그램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분명 주목할 만한 중요한 대화들이 나오리라는 것도 확신한다.

1) 박진희, 「뮤지엄 경험 담론과 적용 방안에 대한 연구」

  • 박진희, 「뮤지엄 경험 담론과 적용 방안에 대한 연구」 2020, 동덕여자대학교, 박사학위
  • 양지연, 「뮤지엄과 대중참여: 크라우드소싱 기반 전시기획의 실천과 전망」 문화예술교육연구 제13권 제4호, 2018
  • 김지호, 「미술관 교육에 있어 동시대미술의 소통적 방법에 관한 고찰 – 도슨트와 대화 프로그램의 상호소통성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연구 제12호, 2015
  • 배진희, 손지현, 「미술관 관람객과 도슨트 간의 담화분석을 통한 상호작용적 학습경험 연구」 한국조형교육학회 제48호, 2013
  • 신응철, 「해석학적 관점에서 본 도슨트의 위상 – 박물관, 미술관에서의 예술작품 해석의 문제를 중심으로」 철학탐구 제24집, 2008

김희량

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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