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유행했던 ‘반스 운동화 던지기 챌린지’를 기억하시나요? 반스의 운동화는 어떻게 던져도 똑바로 제 위치를 잡는다면서 신발 여러 켤레를 한꺼번에 던지는 영상이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 이 챌린지는 한 차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을 끌었습니다. 엎어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금 제 위치를 찾는 운동화를 보며 어떤 이들은 ‘운동화가 살아있는 거 아니냐’며 무섭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이 흥미로운 챌린지는 사실 스케이트보드화인 반스 신발의 디테일로 비롯된 사실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신발의 밑부분이 워낙 견고하고 무게감 있게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던져도 대부분 똑바로 설 수 있었던 것이죠. 이번 글에서는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위해 탄생한 신발’이라는 형용사를 지니고 있는 반스의 디자인에 대해 알아보며 스니커 하나하나에 담긴 보더들을 위한 디테일을 만나보고자 합니다.
1970년대
미국 반항 문화의 정신적 지주
1966년 캘리포니아의 남부 도시 애너하임에서 스니커즈 브랜드로 시작한 반스는 현재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패션 브랜드입니다. 창립자 폰 반 도런은 세 명의 동업자와 함께 ‘반 도렌 러버 컴퍼니(Van Doren Rubber Company)’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를 열었고, 이곳은 뒤이어 반스라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의 전신이 됩니다.
반스는 1970년대 미국 10대들의 반항 문화와 맥락을 같이 하며 유명세에 오르게 됩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를 거쳐 미국은 인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의 강제 징집으로 청소년 세대 사이에서 큰 반항이 태동하는데, 이때 반스는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 이들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며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초창기 반스 매장이 있던 도시는 서퍼들의 장소로도 워낙 유명했는데요. 당시 파도가 없어 서핑하기를 어려워했던 서퍼들의 차선책으로 스케이드보드가 새로운 문화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스케이트보드를 잘 타는 사람을 보면 “Did you see that guy get off the wall?”이라며 탄성을 질렀다고 하는데요. 현재 반스의 슬로건이기도 한 문장 속 ‘Off the wall’은 말 그대로 벽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주류 사회의 눈치를 보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비주류 문화의 가치와 상통하기 때문에 당시 반스는 비주류 문화로부터 많은 환호를 받았죠.
오늘날에도 스케이트보드화 하면 많은 이들은 반스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이 브랜드의 아이템이 사랑받는 이유는 보더들의 피드백을 받는 걸 넘어 신발을 제작하는 과정에 이들을 직접 참여시켰기 때문인데요. 보더들과의 협업으로 세상에 선보인 반스만의 신발 속 디테일 중 가장 알려진 세 가지 요소로는 와플솔(Wafflesole), 듀라캡(Duracap) 그리고 팝쿠시(Popcush)가 있습니다.
1) 독보적인 검 러버 소재의 아웃솔, 와플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와플 모양 같지만 유연한 부분과 단단한 부분을 구분해 제작된 아웃솔은 스케이트보드의 데크에 닿는 밀착감은 높였을 뿐만 아니라 견고한 육각형 모양으로 제작해 갈라짐을 최소화했습니다. 아웃솔은 쉽게 말해 신발이 직접적으로 바닥과 닿는 부분으로, 미끄럼 방지 및 충격 흡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요. 보더들이 신발을 신어도 보드의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얇게 만들었지만, 기술을 통해 내구성을 더욱 견고히 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2) 마음껏 보드를 연습할 수 있도록, 듀라캡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신발과 보드 사이에 마찰이 가장 잦은 지점이 있습니다. 알리, 킥플립처럼 많은 보더들이 연마하는 기술은 운동화의 내구성을 특히나 필요로 하는데요. 반스는 보더들의 발등 쪽이 자주 쓸려 신발이 자주 찢어지는 위치를 파악해 보더들이 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냅니다. 마모가 잦은 위치에 듀라캡이라는 강화 고무 레이어를 더해 내구성을 크게 높인 것이죠.
3) 보더들의 피로도를 줄이는, 팝쿠시
보더라면 뛰고 걷고 넘어지는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스니커의 인솔 쿠셔닝, 쉽게 말해 바닥 깔창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데요. 반스는 팝쿠시라는 특허를 출원했을 정도로 이들에게 최상의 쿠션감과 완충 효과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케이트보드화 라인 중 칭송받는 반스만의 팝쿠시 쿠셔닝은 에너지 회복성 풋베드가 발을 보호하는 동시에 장시간 보딩을 한 뒤에도 다리의 피로감을 덜 느끼게 해 준다는 호평을 받고 있죠.
그렇다면 반스의 디테일이 담긴 스케이트보드화에는 어떤 모델들이 있을까요? 반스에는 스케이트보드 퍼포먼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케이트 클래식 라인’이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클래식한 디자인은 고수하되 스케이트보드에 특화된 기능적인 부분들을 추가하며 탄탄한 팬덤을 이끌었는데요. 시중에 여러 개가 나와 있지만 그중 대표 라인으로 잘 알려진 에라, 올드스쿨 그리고 하프캡에 대해 소개합니다.
반스 최초의 스케이트보드화,
에라
반스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스케이트보드화 라인 에라는 실제 오랫동안 스케이트보드를 타온 프로들의 피드백을 받아 기존 어센틱을 개선해 만든 모델입니다. 어센틱이 반스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신발이라면, 에라는 전적으로 유명 보더들의 의견을 수렴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과 협업해 직접 디자인했던 모델이기도 하죠.
편안한 스케이트보딩을 위해 기본 디자인의 어센틱 모델에서 발목 부분을 개선했습니다. 보더들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힐탭¹⁾에 보다 견고한 가죽을 두고, 어센틱보다 토박스²⁾를 길고 날렵하게 뺌과 동시에 단단한 컨버스 소재를 사용해 마모를 줄이고자 했죠.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아치 서포트도 인솔(깔창)에 더해 쿠션감과 발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1) 힐탭(Heeltap): 아킬레스 건을 보호하기 위해 덧댄 부분
2) 토박스(Toebox): 신발의 발등 바로 윗부분
반스의 스테디셀러,
올드스쿨
1977년에 처음 출시된 ‘올드스쿨’은 반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재즈 스트라이프가 최초로 도입된 신발인 만큼 ‘반스’하면 가장 떠오르는 모델입니다. 하지만 기본 라인과 스케이트보드 라인 사이에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요. 스케이트보드화에 초점을 맞춰 리뉴얼되며 미드솔³⁾이 높아지면서 내구성을 높였으며 보더들의 관절이나 근육에 덜 무리가 갈 수 있도록 쿠셔닝에 집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케이트보드의 특성상 텅⁴⁾이 잘 돌아가는데, 이를 보완해 텅이 안 돌아가게 잡아주는 밴딩 기능도 추가됐죠. 실제로 이 부분을 얇게 제작하거나 옆으로 돌아가면 데크에 발목을 맞을 때 충격이 세게 올 수 있는데요. 보더들의 발목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기에 스케이트보드를 직접 타본 프로들이 고안했다는 후기를 받을 정도로 꽤 괜찮은 모델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3) 미드솔: 신발 앞뒤의 굽을 통틀어 미드솔
4) 텅(Tongue): 발등부터 발목을 감싸는 끈 아래의 부분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하프캡
하프캡은 실제 보더들의 행동 패턴을 기반으로 세상에 탄생한 모델입니다. 1992년, 보더들이 가위와 테이프를 이용해 보더화를 커스터마이징하는 유행 문화가 생겨났는데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여러 보더들은 신발의 어퍼 부분을 반으로 자르게 됩니다.
반스는 보더들의 문화를 빠르게 발견해 기존 하이톱의 단점인 자유로운 움직임을 막는 요소를 보완합니다. 뿐만 아니라 몰딩 처리된 힐탭, 고정형 텅 스트랩, 새로운 컷의 듀라캡을 통해 보더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의 내구성과 통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성공하죠.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여러 보더들이 고민을 하는 상황 속에서 반스는 발 빠르게 이들의 니즈를 포착해 더욱 발전된 스케이트보드화를 세상에 선보이는 혁신을 꾀하고 있죠.
반스는 스케이트 클래식 라인을 새롭게 론칭하며 텅에 새겨진 기존 메시지를 ‘세계 최고의 스케이트보딩 슈즈(World’s No.1 Skateboarding Shoe)’라는 문구로 교체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부하는 이들의 자신감은 보더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디테일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역사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전 세계 다양한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를 이끌며 창조적인 자기표현을 이어나가는 반스의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