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피어난 많은 창작물은 서로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만, 누군가가 세상에 남긴 기록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요. 기록이라는 형태로 창작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저 펜촉에서 완성되는 글자 한 자, 연필로 그은 선 한 획이면 충분합니다. 기록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독자에게 네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거인의 노트』
기록한다는 것은 어지럽혀진 방을 멀끔히 정리해 언제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당신의 머릿속 방을 깨끗이 정리해 언제든 적재적소에 맞게 꺼내 쓸 수 있는 생각을 차곡차곡 모아 둔다면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그래서 나는 늘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기록하라”고 말한다.
_김익한, 『거인의 노트』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일터에서의 업무 등 삶의 여러 방면에서 기록을 지속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마주할까요? 수십 년에 걸쳐 기록을 연구해 온, 대한민국 1호 기록학자 김익한은 그의 저서 『거인의 노트』를 통해 답합니다. 바로 ‘성장’과 ‘자유’입니다. 기록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며 지평을 넓히고,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 이것이 기록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흐름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이 책은 기록 방법도 설명합니다. 기록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누군가가 가뿐하게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데요. 저자가 실제로 기록한 사례가 이미지로 실려 있는 덕분에 책을 마주하는 마음이 더 이상 막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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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스스로 작가인 것처럼 행동하자. 앉아서 시작하자. 방금 뭔가 아름다운 걸 창조한 것처럼 행동하자. 여기서 ‘아름다운’이라는 말은 진짜를, 보편적인 것을 의미한다. 누가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지 말자. 어슴푸레한 빛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우리의 인간성을 보여주자. 그게 당신이 할 일이다.
_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꾸준함은 기록을 쌓아가는 데에 있어 탁월한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꾸준히 해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때로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펜을 들기가 두려울 만큼 힘에 부칠 때 읽으면 좋을 책이 있습니다. 소설가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입니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는 책 너머의 독자에게 공감과 응원의 형태로 가닿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몇 번이고 좌절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펜을 들고 글을 쓰는 행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마음속에 막연하면서도 까마득한 두려움이 밀려와 기록을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이 책은 독자가 기록을 다시 시작하고 그 과정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끔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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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내가 이 선을 그으면 뭔가 거대하게 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한 번 그 선을 그어보길 바란다. 망쳤는가? 아니, 하나의 선이 그렇게 그림을 망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_이연,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기록이 반드시 글자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빈 종이에 찍은 점 하나가 곧 기록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그 점에서 뻗어 나온 선 하나에서부터 기록은 제 생명력을 키워가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무언가를 그려낸다는 것과 자신 사이에 높은 장벽을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글과 그림으로 자신만의 메시지를 나누는 크리에이터 이연은 그의 저서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통해 그들에게 손을 내밉니다.
이 책은 시작을 주저하게 되는 모든 마음에 위로와 격려를 건넵니다. 연필로 선을 그려내면서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해 가는 과정은,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며 고유한 삶의 토대를 다져 나가는 모든 순간과 그 결을 같이합니다. 용기 내어 그은 한 줄의 선에서 비로소 예술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따스하면서도 단단한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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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nki in New York : 김환기의 뉴욕일기』
1965년 1월 10일
종일 강설(降雪). 종일 제작. 점화를 전부 뭉개고 다시 시작.
_김환기, 『Whanki in New York : 김환기의 뉴욕일기』
1973년 10월 8일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보다.
막연할 추상일 뿐이다.
_김환기, 『Whanki in New York : 김환기의 뉴욕일기』
『Whanki in New York : 김환기의 뉴욕일기』는 김환기 화백이 작고하기 전 11년간 뉴욕에서 생활하며 기록한 단상과 드로잉을 담은 책입니다. 대한민국 현대 추상 미술의 시작을 이끈 대화백의 노트에는 1963년부터 1974년까지의 매 순간들이 간결하고도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백이 노트에 남긴 족적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는 부분이 보입니다. 그날그날의 기상 상태가 적혀있기도 하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소식처럼 많은 이가 접했을 법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지요. 한편으로는 삶과 예술에 대해 깊이 고뇌한 흔적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기록에서 화백만의 언어로 매듭지어진 성찰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끝없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피어난 생각을 자신만의 언어로 포착하는 것 역시도 또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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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만의 기록을 완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 누구도 독자의 삶을 대신해서 기록할 수 없지요. 오직 자신만의 기록을 펼치기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이가 이미 완성해 둔 기록을 바라보며 움츠러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록을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고, 저마다의 기록물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