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시선으로
소설 읽는 방법

남다른 독서 경험으로
한 해를 꾸리고 싶은 이들에게
Edited by

새해를 맞아 새 책을 집어 든 당신, 혹시 소설을 고르셨나요? 그 결정에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녹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소설을 고르는 이유는 각양각색입니다. 스토리가 있으니 다른 분야의 책보다 잘 읽혀 독서하기에 수월하다는 사람도 있고, 잠시 현실을 잊고 책 속으로 뛰어 들어가 쉬고 싶은 휴양지처럼 소설을 읽는 경우도 있지요.

여러 이유를 불문하고, 마음을 다잡을 때 하게 되는 일들에는 이전과 다른 방법을 조심스레 궁리해 보기 마련입니다. 소설 하나를 읽더라도 인생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독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면 이 아티클을 처방합니다. 『불안의 서』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모두가 알 법한 대가들이 펼친 소설에 관한 생각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재구성한 ‘색다르게 소설 읽는 방법’입니다. 물론 유난스럽고 고생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든 노력 없이 얻을 수는 없으니까요! 사랑하는 문학 세계를 논술하는 대가들의 정교한 글에서 묻어나는, 문학을 향한 반짝이는 사랑과 열정에 감화되는 것은 덤으로 가져가세요.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감상하기

페르난두 페소아, 『이명의 탄생』

이미지 출처: 미행

1800년대 후반 포르투갈 태생의 페르난두 페소아는 재미난 작가입니다. 작가가 다른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일은 간혹 있는 일이죠. 그런데 페소아는 유별납니다. 일생 동안 70개가 넘는 이름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다른 문체로 쓰는 일을 해냈거든요.

“내 속에는 할 수만 있다면 사람으로 만들어내서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만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위와 같은 말을 남긴 페소아가 만든 것은 70개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70개의 ‘서로 다른 인격체’였습니다.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서로 다르게 분리해 낸 인격들은 모두 다른 생애를 지녔습니다. 성향, 직업, 사는 곳, 출생 연도까지 다르게 부여되었죠. 페소아는 이를 ‘이명’이라 부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 이미지 출처: 민음사

페소아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페소아가 이명을 어떻게 대하는지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알바루 드 캄푸스’는 페소아가 자신에게서 분화시킨 또 다른 인격입니다.

그가 실제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나 일기에 기록된 이명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아주 섬세하게 소설 속 인물의 특징을 묘사하는데, 실존 인물을 말하는 것처럼 굉장히 구체적이거든요. 10월 15일에 태어났는데 오후 1시에 태어났다고 누가 말해줬고, 별자리까지 대조해서 확인해 보았다느니, 해양 엔지니어고 연한 금발에 파란 눈, 반 헬레니즘주의자라는 등 마치 수사기관에서 뽑아낸 한 사람 데이터를 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분리해 만든 인격을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실로 경이롭죠. 나아가 창조한 인격들의 이름으로 여러 작품을 집필해 실제 발표하기도 했으니, 페소아 자신의 표현대로 그 자신이 곧 문학이 된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페소아라는 훌륭한 작가가 창조한 다채로운 맛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The Enigmatic Poet Fernando Pessoa, by Margo Hammond. 이미지 출처: Creative Pinellas

페소아의 세계를 다소 상세하게 소개해 드렸는데요. 페소아가 인격을 만들어낸 방법을 차용해 소설을 감상해 보는 것을 제안하기 위함입니다. 페소아처럼 전혀 다른 나 자신이 되어 소설을 읽는 것이죠! 내 안에서 완전한 타인이나 다름없는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보고 그 인격으로 소설을 읽는 기이한 경험을 시도해보는 겁니다.

“각각의 감정에 하나의 인격을, 각각의 영혼의 상태에 하나의 영혼을 부여하기.” 페소아의 메모를 따라가보지요.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내려갑니다. 반복적인 삶에 눌려있던 감정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후후 불어 빛을 내주고요. 그 감정이 마구마구 확장된다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상상하며 페소아처럼 갖가지 특징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완전히 분리된 곳에서 그 인격에 이입해, 손에 쥔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감상을 적어봅니다. 모든 것을 정제하려는 교정과 검열이라는 이성의 충동을 이겨내면서요.

이런 일을 굳이 해야 할까요? 다른 존재와 다른 세계를 인지하게 하는 번거로운 일이 소설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수많은 다른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몸짓이죠. 이명을 만들기 위해 자기 내면으로 파고드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나라는 경계 바깥의 은하를 인지할 힘이 생겨납니다. 자신만 아는 외골수로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는 것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로만 가능하니까요.

이명을 만들고 감상하는 일과 가장 맞닿은 일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읽고 진솔한 감상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전혀 다른 방법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자신과 또 다른 세계와 조우하니 말이죠. 이명을 만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한 페소아처럼, 땅과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독자로 일조하는 독서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명의 탄생』 구매 페이지


커튼을 찢고 새로운 세계를 조망하기

밀란 쿤데라, 『커튼』

이미지 출처: 민음사

이 책을 읽어본 적은 없어도 제목은 들어본 적 있으실 테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 출생으로, 최고의 현대 소설가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입니다. 1960년대부터 조국 체코에 침공한 소련의 압제와 사회주의 확산으로 갖은 고초를 견디는 중에도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삶의 지혜, 역사와 현재를 꿰뚫는 현명한 통찰력으로 명성을 높입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역사의 일부로 기록되던 시대를 살았던 밀란 쿤데라는 소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소설이 있는 그대로 현실을 고발하는 기자 같은 글쓰기만을 강요받는다면, 소설의 역할이자 기능은 확성기에서 멈추고 말 것입니다.

밀란 쿤데라.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쿤데라는 소설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 시점을 ‘인간 본성’에 주목하던 때라 보았습니다. 그전까지 소설은 재미있는 교훈이나 기분 전환이 되는 스토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글이었습니다. 소설가들이 종교, 관습 등 여러 요인으로 숨겨져 있던 인간 본성의 양상을 주목하면서 인간 성찰이라는 탐구를 시작하자, 인간의 진정한 본질을 신속하고 명민하게 꿰뚫어 보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과학도, 철학도 아닌 무려 소설로 말이죠! 이런 맥락으로 ‘인간의 뱃속까지 내려가 구석구석을 해부하는 소설’ 같은 수식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설이 곧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하는 말도 과언이 아니라며 끄덕거릴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 위해 사는 것이라니, 맞는 말이니까요.

인간 본성을 탐색하기 위한 소설의 사색은 그 자체로 명징한 판단을 내리거나 절대적인 진리를 부르짖지 않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스스로 질문하고 놀라며 탐색하죠. 소설은 그 자체로 살아있어 은유, 풍자, 과장, 가설, 환상, 금언 등 등장인물을 맴돌며 그 삶에 갖가지 바람을 불어넣어 사색을 펼쳐 보입니다. 특히 위대한 소설은 진부하고 낡아빠진 상징으로 이미 해석이 끝난 세계의 커튼을 찢고, 발견되지 않은 뜻밖의 세상을 조망하게 하죠. 소설의 사색과 조망을 따라 지금 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 이것이 소설이라는 예술을 탐조등으로 삼는 방법입니다.

종합해 볼까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간의 실존, 본성에 대해 기존의 해석을 찢고 새롭게 탐구하는 것이 좋은 소설입니다. 인물의 의식 흐름, 대사 처리, 창조된 공간, 문장의 형식으로 작가가 설계한 장치들을 따라가며 우리 본성의 낯선 영역을 마주하는 과정에 도전해 봅시다. 그리고 이 세계의 조명받지 못한 역사의 한구석과 현실의 가능성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분 손에 쥐어진 소설을 도구 삼아 비추어보는 겁니다.


『커튼』 구매 페이지


소설이라는 진귀한 음식을
낱낱이 해부해 미식하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미지 출처: 을유문화사

작가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이 작품을 모르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롤리타』라는 화제의 작품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입니다. 러시아 태생의 작가로, 훗날 미국으로 이주해 문학을 예술적으로 날카롭게 분석한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언어를 배운 덕분에 언어의 운율, 수사학, 논리 등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요. 그 덕분에 글을 아름답게 쓰기로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그의 작가로서의 업적도 위대하지만,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 동안 학생들이 러시아 문학과 영미 문학이라는 세계에 지적으로 감흥을 느낄 수 있도록 도운 훌륭한 학자 나보코프의 관점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었던 언어의 귀재답게 그는 소설의 심미적인 면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나보코프가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 소개한 ‘문학을 대하는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해 보지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만약 어떤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작가가 쓴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상상하면서 예술적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보코프는 아주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문학은, 우리가 좋아하는 책은 숨이 턱턱 막히는 전율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런 진정한 문학은 물약 삼키듯 단숨에 들이키지 말고 ‘손으로 잘게 쪼개고 으깨고 빻아야 한다’라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산산조각난 상태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을 음미하고 혀 속에서 굴려야만 진귀한 향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부서지고 쪼개진 부분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통일되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작품 전체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고 말이죠.

창작자이자 독자 나보코프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작품을 이처럼 잘게 부수어 음미하는 문학 미식가였습니다. 특히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열렬히 숭배했는데요. 등장인물 하나하나는 물론이며 인물의 몸짓, 희극적 요소, 그림 같은 묘사, 시적 비유, 도덕적 메시지 등 작품의 모든 것을 파헤치고 도려내어 목록과 해설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소설에 묘사된 구레나룻에 대한 시대적 배경까지 간략히 기록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나보코프 자신이 작가였으므로 그는 작가들이 특별한 작품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단순한 것 이상의 문학 유희의 필요성, 그리고 그 방법을 강조할 수 있었죠. 지적인 읽기가 중요하다고 역설한 그는, ‘디테일을 다룰 줄 아는 독자야말로 대작의 비밀을 풀어내는 열쇠’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감각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그 디테일 간의 조화가 없는 책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까지 말합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체와 같은 사례가 상술한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나보코프의 해설이고요.

나보코프의 말대로, 상세한 디테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위대한 작가가 공들여 설계한 상상 속 현실을 함께 여행할 수 없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녀오긴 했다만 여행 후 남은 기억은 패키지 투어 가이드의 안내에 이끌려 다녔다는 인상만 남는 여행이 되겠죠. 나보코프가 골방 수집가 같은 광기 어린 독자가 되라고 종용하는 것 같이 느껴지나요? 예술을 심미적으로 탐험하고자 하는 학생들과 독자들을 위해, 자신이 문학 속에서 통렬하게 느낀 마법을 공유해주려는 선생님의 따스한 소통이라고 받아들여줍시다. 작품 속 이야기와 세상을 내가 이해한 세상 속에 살아있게 만드는 마법 말이죠. 위대한 작가이자 선생님의 문학 강의가 궁금한 분들께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추천합니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구매 페이지


세상은 예술, 특히 문학에 많은 역할을 기대합니다. 사회를 비추는 거울도 되어야 하고, 사회의 오작동한 면을 고발하는 칼도 되어야 하죠. 즐겁게 취할 수 있는 오락이자, 모든 것을 잊고 고립될 수 있는 무인도와 도피처도 되어주어야 합니다. 삶에 대한 벼락같은 깨우침을 주는 교훈과 철학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치렁치렁 매달아 놓은 역할에도 불구하고 다른 예술에 비해 펜 하나로 쉽게 완성할 수 있는 장르라고 속상한 평가를 붙이기도 하니, 소설은 참으로 과한 짐을 지고 있습니다.

1953년 9월, 코넬대학교 첫 번째 문학 수업에서 나보코프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수강하는 이유를 적어서 제출하라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 나보코프는 한 학생이 적은 답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는 인류가 문학이라는 장르에 그토록 많은 역할을 기대어놓은 이유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정의가 무엇이고 어떤 소설이 훌륭한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재밌는 이야기, 전율이 일게 만드는 이야기를 즐기는 ‘유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죠. 사랑할수록 있는 그대로 봐줘야 하는데, 자꾸 기대하게 되나 봅니다.

연말에는 멋진 글 한 편을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책, 나쁜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잘 맞는 책, 덜 맞는 책이 있을 뿐이라는 글이었죠. 오늘 소개해드린 소설 읽는 방법, 각 작가들이 소설을 바라본 시선을 참고해 색다른 독서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사랑해 마지않았던 책은 또 다른 매력으로 즐기고, 쭈뼛거리게 되는 세계는 다른 마음과 방식으로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Picture of 이한빈

이한빈

고전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방황하고 반항하며 만드는 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