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 문을 연 LG 아트센터, 강원도 원주의 산 정상에 자리한 뮤지엄 산, 제주도의 본태박물관과 유민 미술관(전 지니어스 로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삼각형과 사각형, 원형 등의 도형을 품은 듯한 기하학적인 공간이 온통 노출 콘크리트로 감싸여 있고, 곳곳으로 빛이 흘러 들어와 회색 벽체에 스며듭니다. 이들 건축물은 모두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한국에 설계한 건물입니다. 권투 선수 출신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되기까지. 그의 뾰족한 건축 세계를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봅니다.
정식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건축가입니다. 1941년 태어나 81세인 지금도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며 전 세계에 수많은 건축물을 남기고 있죠. 그는 한 번도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독특한 이력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권투 선수로 활동했고 졸업한 후에는 가구 제작이나 인테리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건축을 독학합니다.
그 무렵, 안도 다다오는 헌책방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집을 만납니다. 이상적인 도시를 추구하며 순수한 모더니즘 건축을 설계하는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에 크게 영향을 받은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건축을 공부하기로 결심합니다. 그 후 유럽 곳곳을 돌며 수많은 거장의 건축물을 보고 관찰하며, 깨우침을 얻습니다.
일본에 돌아온 안도 다다오는 1969년 안도 다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하며 건축가로서 첫발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1973년, 그의 첫 번째 작품 도미시마 주택을 완성합니다. 그는 당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학력도, 건축을 제대로 배운 경험도 없었으나 뜻만은 크게 갖자’고 다짐했다”고 말합니다. 혹자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근대 건축을 스스로 깊이 탐구하며 얻은 통찰이 일본 전통 건축에 대한 이해와 합쳐지며 오히려 그만의 건축언어를 확립하게 됐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빛의 건축가: 빛과 노출 콘크리트
빛과 콘크리트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특히 노출 콘크리트는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그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죠.
“누구든지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재료로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건축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저의 건축에서 빛이 희망을 뜻한다면, 콘크리트는 그 희망을 지탱하는 요소입니다.”
_안도 다다오
빛의 교회(1989)는 빛과 콘크리트가 만드는 효과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작입니다. 오사카의 어느 교외 주택가에 위치한 예배당은 폭이 6m, 길이는 18m인 직사각형 평면의 자그마한 공간입니다. 그는 이곳에 콘크리트 박스를 세우고 벽면 한쪽에 십자가 모양으로 창을 냅니다.
천장에는 다른 조명을 설치하지 않아 온통 어두운 실내 공간에서, 신도들은 이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시야를 얻습니다. 신성함과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 빛의 십자가를 마주하며, 사람들은 속세에서 벗어나 오롯이 종교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모두를 위한 건축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건물 하나에 그치지 않고, 도시 규모로도 부지런히 확장합니다. 그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바꿔 지역을 재생한 작품입니다. 1987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여덟 개의 공간을 완성했고, 여전히 진행 중인 작업이기도 하죠.
당시 나오시마 섬은 구리 제련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산업 폐기물과 오염물로 인해 아름답던 자연이 파괴되고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고 있었습니다. 섬의 인구도 노령화되어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던 이곳을 되살리고자,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1987년 섬을 구입하고 안도 다다오에게 설계를 의뢰합니다. 그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현대 예술을 한껏 품은 건축물로 이에 응답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지추 미술관(2004)은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와 월터 드 마리아(Walter Joseph De Maria),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건축가는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3층 규모의 건축물을 아예 땅속으로 숨깁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미술관은 삼각형, 직사각형, 정사각형 모양의 틀로 찍어 놓은 듯 건물이 섬의 일부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을 지하에 들여 고유한 자연경관을 강조하는 동시에 전시실은 외부와 아예 분리해 작품에 더욱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대신 중정을 들이고 천창을 설치해 지하임에도 주변의 풍경과 빛이 계속해서 드나듭니다. 자연과 조화하는 건축을 하는 그의 철학이 드러나는 순간이죠.
건축주와 건축가가 같은 뜻을 품고 수많은 노력이 모인 끝에, 사람들에게 방치되고 기억에서 사라져가던 섬은 연간 70만 명이 방문하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건축가가 도시의 풍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안도 다다오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자아를 회복하고 정신을 수양하는 삶을 언제나 추구해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그의 건축에도 빠짐없이 담겨 있어, 공간에 가면 우리가 그리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국내에도 의외로 가까운 곳에 그의 건축이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방문해 건축가가 일생 동안 구축한 세계를 살피고 우리의 모습을 돌아 보아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