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공간을 담는
사진가 프랑수아 알라르

예술을 사랑한 사진가가
예술가의 집으로 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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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공간에는 주된 사용자의 가치관, 성향이 묻어납니다. 가구와 소품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주된 컬러 차트는 어떤지, 심지어 사용하는 찻잔과 그릇 같은 요소에서도 그곳에 머무는 인물의 파편이 담겨 있지요. 공간에서 개인의 삶의 방식을 유추할 수 있다면, 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창작자들의 공간은 어땠을까요? 프랑스 출신 사진가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는 전 세계 명사들의 개인적인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인물과 공간의 관계성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통찰하죠. 그는 왜 예술가의 공간에 주목했을까요?


병약했던 아이가 카메라를 들기까지

프랑수아 알라르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알라르

프랑수아 알라르가 카메라를 들게 된 배경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프랑스 유명 가구 디자이너였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과 사진을 무척 친숙하게 느꼈고, 다양한 가구, 직물, 질감에 둘러싸여 생활했다고 합니다. 당시 패션 포토그래퍼 헬무트 뉴튼과 같이 유명한 작가들이 정기적으로 알라르의 집을 찾아와 공간을 사진에 담곤 했다고 하죠. 또 알라르는 가족과 일주일에 한 번 박물관과 벼룩시장을 찾았는데, 그때의 경험이 중첩돼 관심사가 더욱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수아 알라르의 집
프랑수아 알라르의 집, 이미지 출처: 킨포크

환경적 영향으로 인해 사진가로 성장한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가 사진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사실 알라르는 어린 시절 병약했던 편이었는데요. 많은 시간을 홀로 집안에서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내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대화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진을 시작한 이유 역시 건강상 이유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당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죠. 사물의 존재감과 조화를 눈여겨보던 알라르는 차후 공간에 내재된 인물의 흔적들을 포착하는 작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예술을 사랑한 사진가

말라파르테의 집
말라파르테의 집,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알라르
말라파르테의 집
말라파르테의 집,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알라르

알라르는 80년대 초 ‘VOGUE’와 ‘W’ 등 세계적인 매거진을 펴내는 콘텐츠 그룹 ‘콘테 나스트(Condé Nast)’에서 패션 포토그래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년이 된 즈음에 우연히 자신만의 일을 도모해 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자연스럽게 예술로 빠져들죠. 첫 전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은 이탈리아 소설가 쿠르치오 말라파르테(Curzio Malaparte)입니다. 알라르는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라 불리는 집, 카프리 섬 절벽 끝에 위치한 말라파르테의 주택으로 향하는데요. 빌라 말라파르테를 촬영하기 위해 약 10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2003년 선보인 첫 전시에서 빌라 말라파르테를 담은 사진 작품을 공개했죠.

사이 톰블리의 집
사이 톰블리의 집,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알라르
사이 톰블리의 집
사이 톰블리의 집,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알라르

알라르의 예술 사랑은 남다릅니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물건과 가구를 수집했고, 사진을 찍지 않을 때면 전시회나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알라르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어김 없이 등장하는 두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미국의 추상화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와 이탈리아의 가구 디자이너 카를로 몰리노(Carlo Mollino)입니다. 알라르는 첫 월급으로 톰블리의 작품을 구매할 정도로 톰블리의 오랜 팬이었는데요. 톰블리의 공간 역시 빌라 말라파르테 작업처럼 15년 정도를 기다린 끝에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행위에 집중하기보다, 공간에 드러나는 인물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을 먼저 생각했죠. 이러한 노력은 알라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정취를 만들어 냈습니다.


알라르가 공간을 채우는 방식

세잔의 집
세잔의 집,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알라르
세잔의 집
세잔의 집,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알라르

알라르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코코 샤넬의 아파트,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폴 세잔의 아틀리에, 에일린 그레이의 주택, 이브 생로랑의 작업실 등.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던 아티스트들의 사적인 공간을 알라르만의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알라르의 사진은 금방이라도 공간의 주인이 나타날 것처럼 현장감이 오롯이 느껴지는 게 특징인데요. 인물과 사물에 깃든 이야기가 더해졌을 때는 더 흥미롭죠. 오랜 시간 호기심 많은 방문객이었던 알라르는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채우고 있을까요?

프랑수아 알라르, “56 DAYS IN ARLES”, 2021
프랑수아 알라르, “56 DAYS IN ARLES”, 2021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1년, 락다운으로 인해 알라르도 마찬가지로 집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알라르는 항상 다른 사람의 집이나 아틀리에를 오갔기 때문에 집에 머무는 경험이 그에겐 무척 낯설었다고 합니다. 이때 ‘뉴욕 타임즈’로부터 집 안의 풍경을 담아 보자는 제안을 받고, 56일 동안 매일 집 안을 돌아다니며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데요. 당시의 작업물은 “56 DAYS IN ARLES”이라는 시리즈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사진에 등장한 알라르의 공간에는 다채로운 조형 작품들과 톰블리의 그림, 시간의 흔적이 두드러지는 소품들, 아무렇게나 놓여진 책들로 가득했습니다. 공간을 담은 사진 몇 장에 알라르가 삶에서 몰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지요.


알라르는 오랜 세월 사진가로 활동했지만 변함 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물을 들여다봅니다. 새벽에 일어나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그 순간이 여잔히 매혹적이라고 말하죠. 독자분들의 주변에는 어떤 사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나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회현동에 위치한 피크닉에서 프랑수아 알라르 전시가 한창입니다. 사물과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이 궁금하다면 알라르의 작품을 참고해 보세요.


WEBSITE : 프랑수아 알라르
INSTAGRAM : @francoisha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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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진

현예진

비틀리고 왜곡된 것들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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