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읽고 싶은
세 권의 시집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며
시집 세 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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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입니다. 장마나 무더위는 마냥 반갑진 않지만, 이 계절에만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이 있지요. 여름과 함께할 준비를 하며 몇 권의 시집을 꺼내 보았습니다. 매혹적인 여름이 한가득 담겨 있는 시집부터 뜨거운 열기를 피할 은신처가 되어 줄 시집까지. 이 계절을 오롯이 감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 책 세 권을 소개합니다.


주하림, 『여름 키코』

주하림, 『여름 키코』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여름은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계절입니다. 쾌청한 하늘과 새파란 나뭇잎은 생명력을 전하지만, 푹푹 찌고 눅눅한 날씨는 무언가를 부패하게 만들죠. 주하림 시인이 『여름 키코』 에 그려낸 여름 또한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기괴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닌 계절로 나타나지요.

시 속에는 “끈적거리는 피의 해변(「여름 키코」)”이나 “부여받았던 생기와 정열 향기를 모조리 빼앗기고 말라비틀어진 과일(「컬렐 부인, 끝나지 않는 여름밤 강가에서」)” 같은 기이한 여름 풍광이 담겨 있습니다. “생말로 모래 밭”이나 “니스 해변” 등 이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담겨있는가 하면, 우울과 슬픔 속에 존재하는 여러 자아들이 파편화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살길을 행복하게 갈구할 거야/ 역경이 오면 그땐 다시 떠돌이 개처럼 뜨거운 침을 흘리며 잠깐 경련하겠지만/ 그전까지 나는 모든 행복한 시간을 통틀어/ 그것을 전부 가지고 있는 여름이 되어 있을 테니”_주하림, 「천엽벚꽃」 中

우리는 자주 사랑에 실패하고 이상과 멀어지며 허무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뜨겁고 매혹적인 여름은 언제나 돌아오죠. 고통과 무력감을 발화하는 것은 결코 포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능동적인 저항이라 볼 수 있지요. 『여름 키코』에 담긴 달콤 씁쓸한 여름을 맛보며 또 한 번 이 계절을 살아갈 한 줌의 위로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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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주, 『가벼운 선물』

조해주, 『가벼운 선물』
이미지 출처: 민음사

여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 두고 얇은 옷을 걸친 채 발 딛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으니까요. 언어는 무겁고 존재는 버거우며 시간은 불가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를 속박하는 몸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데요. 조해주의 두 번째 시집 『가벼운 선물』은 덤덤한 표정으로 의미 사이사이를 헤쳐 놓으며 우리에게 ‘가벼움을 선물’합니다.

“지렁이가/ 무게중심을 휘어짐 그 자체에 두듯이// 같은 곳을 지나고 있다/ 발자국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했던 말 또 하고 하면서//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아까보다 조금 잠긴 목소리로// 밟은 자리 또 밟으면서// 첨벙 거리면서” _조해주, 「안목해변」 中

“아무리 크게 벌려도/ 다시 입으로// 입으로” (「트램펄린」)과 같은 구절에서 언어와 의미를 무화하는 마음을 찾기도 합니다. “저쪽으로 가볼까// 그는 이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밤산책」)과 같은 구절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지 않은 채 누군가와 함께 나무 아래를 걷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죠. 조해주의 시는 선형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지금-여기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어제와 내일 그리고 이쪽과 저쪽을 넘어, 현재에 집중하며 가벼이 여름을 지나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시집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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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식물원』

유진목, 『식물원』
이미지 출처: 아침달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과잉된 세상에서 도망쳐 낯선 곳으로 도피해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나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삶과 삶 사이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시집, 『식물원』을 꺼내 듭니다. 이 시집은 흑백 사진과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년기의 졸업 사진, 분수대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등 한 사람의 생애를 훑는 듯한 기분을 느끼다 보면, 아래 구절이 담겨 있는 첫 번째 시에 도달하게 되지요.

“종려나무가 있었다.// 그는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그 중에 어떤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그는 자주 고개를 숙였고, 남몰래 주먹을 쥐었고, 그러다 하품을 하였고, 이대로 끝이 난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는 지루함을 견디며 종려나무 사이를 옮겨 다녔다.” _유진목, 「21」 中

시집 속 ‘나’와 ‘그’와 ‘당신’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저 종려나무처럼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쥐고, 지루함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시집을 권합니다. 이번 여름에도 역시 여러 생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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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어느덧 여름입니다. 가벼운 옷을 입고 시집 한 권을 든 채 거리를 나서봅시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매료될 준비를 하면서 말이죠.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수고한 당신이 무탈한 여름을 보내길 기원하며, 『여름 키코』 속 주하림 시인의 말과 함께 글을 끝맺습니다.

“나는 그냥 행복하네 달려도 달려도 올리브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삶에 대한 쓸모없는 집착에서 자유로우며 날아오르네 매일 꿈꾸고 내일이 즐거워 우리가 파랑을 너무 사랑하니까 나는 그것에 맞춰 춤출 수 있네 무한 속에서 희미하지 않게 아름답게 용기내어 여기까지 살아온 내가 고맙다“

_주하림, 『여름 키코』 시인의 말 中


임수아

임수아

아름다운 것만이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믿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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