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더위와 긴 장마로 연일 지치는 여름입니다. 이 더위를 극복할 오싹한 영화, 드라마들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죠. 생생한 CG와 잔인한 소재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때로는 활자만으로도 본연의 공포를 선사해 줬던 추억의 고전 추리소설의 맛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 책장 한 켠에 자리했던 전집 시리즈를 기억하시나요? 오늘의 주인공은 세대를 불문하고 소년, 소녀들을 열광시킨 추리 소설, 탐정 시리즈의 대표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의 기본은 ‘모든 편견에서 벗어날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편견을 뒤집는 충격적인 반전과 날카로운 사회 비판, 그러면서도 친근한 인간사를 그려낸 희대의 고전 추리소설을 소개합니다. 100년 전 작품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신선한 속임수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캐릭터까지 두루 갖춘 추리소설 원조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아서 코난 도일, 『공포의 계곡』
1)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 홈스를 소개하는 것은 추리 소설 큐레이션에서 진부한 선택이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하지만 홈스를 배제하고 고전 추리소설을 논한다는 것이 더 못 할 짓이죠. 홈스가 해결하는 사건 하나하나가 오늘날 수많은 추리물의 ‘근본’으로 인용되곤 하니 말입니다.
홈스는 보편적인 탐정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추리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기까지 독보적인 공을 세운 캐릭터입니다. 홈스의 아버지이자 창조자인 아서 코난 도일은 대학 시절의 교수님에게 영감을 받아 홈스의 외형, 성격을 창조해 냈습니다. 그는 구두에 묻은 흙만 보고도 어디를 지나왔는지 추리하는 엄청난 관찰력과 추리력,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신나서 흥분하는 지적 추리 그 자체를 즐기는 괴짜의 기질을 모두 가진 탐정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는 사소한 것들에 담긴 배경과 사건을 모두 잡아냅니다. 철저히 합리적인 추론에 근거해서 말이죠.
우리는 홈스의 충실한 친구이자 조수인 왓슨을 통해 홈스의 추리를 따라가게 되는데요. 일반인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홈스의 사건 해결 방식 때문에 잠시 미궁에 들어간 기분이었다가, 연극배우처럼 극적인 퍼포먼스를 더해 범인을 지목하고 상황이 종결된 후 차근차근 추리 과정을 설명해 주는 홈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탁월한 추리에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자고로 ‘천재의 추리란 중간 고리를 제거하고 추리의 시작과 끝부분만 들려주는 기교가 발휘되기 마련’인 것을 오늘날 모두가 받아들이게 된 것도 홈스의 공이 크죠.
홈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그 천재성 때문이겠지만, 추리의 대가라는 냉철한 면과 대비되는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독한 골초로 동거인을 괴롭게 하면서도 바이올린 연주 실력자여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예술가 면모도 있죠. 귀족 등 부자 의뢰인에게는 거액의 의뢰비를 사양치 않고 받으면서도 가난하고 딱한 사정이 있는 의뢰인에게는 ‘지적 추리 자체를 즐겼으니 됐다’며 의뢰비를 받지 않습니다. 때로는 교화의 여지가 있는 의뢰인 혹은 범죄자들에게 따끔하게 훈계하기도 하고요. 철저히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으로서만이 아니라 런던의 시민으로, 누군가의 친구이자 형제로, 별나고 게으른 동거인으로도 등장하는 그의 입체적인 성격이 두꺼운 팬층을 만들었습니다.
2) 천하의 홈스도 긴장하게 만드는 적이 등장하는 작품
서식스에서 더글러스라는 한 남자가 얼굴에 총을 맞고 죽은 채 발견됩니다. 살아생전 더글러스는 부인에게 ‘공포의 계곡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던 것이 밝혀지며 홈스는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놓인 ‘공포의 계곡’에 얽힌 또 다른 사건에 관해 파헤치죠.
영국 전역에서 유명한 탐정이라 홈스의 사건 대부분이 지역 곳곳을 무대로 삼고 있긴 합니다. 그중에서도 『공포의 계곡』은 익숙한 도시 풍경을 떠나 사건 발생하기 딱 좋은 으스스한 배경과 꺼림칙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무대 한복판으로 독자를 끌어갑니다. 본격적으로 사건 현장으로 떠나기 전, 독자들은 가볍게 머리를 푸는 홈스의 추리와 함께 이야기 속으로 순식간에 몰입하게 되는데요. 함께 퀴즈를 푸는 기분으로 홈스가 일상에서 추리하는 방식과 그 추리가 사건의 실마리로 이어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공포의 계곡』은 홈스의 숙적 모리아티와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는 작품으로 유명하죠. 모리아티 교수는 홈스에 대항할 만한 두뇌의 소유자이자 지성 있는 범죄자입니다. 홈스 세계관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하는 인물의 등장까지 더해지는 작품이라, 분명 미궁 속 살인 사건의 의문이 해결되는데도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추리소설 주인공을 넘어서 한 분야의 상징이 된 인물이 속한 세계관을 폭넓게 맛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많은 작품 중에서도 『공포의 계곡』을 추천합니다. 아직 장편이 부담스러우시다면 홈스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들어봤을 법한 『붉은 머리 연맹』이나 『보헤미안 스캔들』 에피소드를 수록한 단편집을 읽어보며 오늘날 탐정 캐릭터의 표본이 된 홈스의 다양한 면모를 맛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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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 『Y의 비극』
1) 어느 집안의 끔찍한 사건
『Y의 비극』은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셜록 홈스 시리즈와 함께 손꼽히는 대작입니다. 어느 집안에서 아버지가 자살하고, 약 두 달 후 미치광이라고 불리던 노부인마저 둔기에 얻어맞아 죽은 채 발견됩니다. 그 이후로도 가족들을 향한 여러 살인 미수 사건들이 발생해 은퇴한 연극배우이자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드루리 레인이라는 탐정이 집안사람들을 찾아와 살인범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 집안의 이름은 해터Hatter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모자 장수 이름에서 작가가 따온 것이죠. 이름 그대로 이 집안에는 전반적으로 음울하고 비정상적인 분위기가 감돕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정신 질환으로 추정되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는 각종 폭행 등으로 사회적 문란을 일으킨 사람도 있고요. 비뚤어진 방식으로 자식을 편애해 비틀린 심성의 자식을 만든 부모들도 계속해서 나오죠. 그중에서도 초반에 사망하는 노부인 에밀리 해터는 이 집안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 가족 전체가 ‘미친 집안’으로 불리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Y의 비극』을 집필한 작가 엘러리 퀸은 독자들도 동등하게 추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단서들을 공정하게 제공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탐정의 입장이 되어 머리를 싸매며 사건 해결의 지점으로 달려가게 되는데요. 보통 사건이 해결되면 긴장된 분위기가 풀어지며 분위기가 환기되곤 하죠. 하지만 이 작품은 탐정 드루리 레인을 통해 살인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후에도 서늘하게 경직된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됩니다. ‘이 사건 재밌네!’하고 개운하게 여길 수 있게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죠. 엘러리 퀸은 이 끔찍한 집안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 개인의 잘잘못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역할, 이 사건을 지켜보는 제삼자의 소명까지도 생각해 보도록 독자들에게 바통을 건네줍니다.
2) 엘러리 퀸 시리즈의 매력
엘러리 퀸은 세계 3대 혹은 4대 추리소설을 투표하면 아서 코난 도일과 함께 거론되는 작가죠. 앞서 소개한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 셜록 홈스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추리 소설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바다 건너에서도 그의 소설을 읽으며 성장해 추리 소설 작가가 된 형제가 있었으니, 바로 프레데릭 대니와 맨프레드 리라는 미국인 형제입니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잡지 공모전에서 1등 상을 받으며 데뷔해 ‘엘러리 퀸’이라는 공동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집필했습니다.
엘러리 퀸의 작품 속 탐정들은 철저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기반으로 사건을 풀어갑니다. 일단 연극처럼 ‘짠!’하고 사건을 해결한 다음 그 과정을 풀어 설명해 주는 홈즈의 추리와 또 다른 매력이 있죠. 상술했듯이 작가가 독자에게도 실마리를 동일하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적극적인 추리를 펼쳐보고 싶은 독자들에겐 앨러리 퀸의 작품은 신나는 게임장과 같습니다.
엘러리 퀸은 X, Y, Z의 비극 시리즈 외에도 『로마 모자 미스터리』, 『그리스관 미스터리』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소재를 사건 키워드로 삼는 국명 시리즈도 출간했답니다. 독특한 소재들을 맛보며 추리 소설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엘러리 퀸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쥐덫』
1) 여왕도 애정한 작품 『쥐덫』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교외 장원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부부는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런던에서 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살인범이 하숙집 손님 중 하나로 숨어들었으니 조심하라고 말이죠. 살해된 시체에서는 이 살인이 오래 전 한 사건에 대한 원한으로 일어났음을 가리키는 메모가 나오고, ‘눈먼 쥐 세 마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기괴한 동요 가사는 앞으로 두 명의 피해자가 더 나올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화선은 끊어지고 폭설 때문에 집은 완벽히 고립되고 맙니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사정이 있는 듯 의심스러운 정황을 보이는 탓에 손님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심지어 하숙집을 운영하는 부부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사건은 어떤 국면을 맞게 될까요?
『쥐덫』은 영국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작가 본인이 직접 희곡으로 다시 집필하면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고, 윈스턴 처칠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연극을 관람했다고 합니다. 짧지만 인상 깊은 『쥐덫』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추리의 기본을 일깨워 줍니다. 모든 것을 의심할 것!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간 지점에 사건의 실마리가 숨어있습니다. 크리스티는 평화로웠던 모든 인물, 모든 풍경을 한순간에 뒤집어 전부 의심스러운 정황이 되도록 만듭니다. 독자이자 관객은 그녀가 설계한 범죄 현장에 서서 모든 장치를 다시 되짚어 보다가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며 초조하게 추리에 동참하게 되죠.
2)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 작품을 쓴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추리 소설의 대가입니다. 앞서 소개한 두 탐정이 주로 이성적인 추리 과정을 보여주며 매력을 발산한다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추리의 기본이 논리에 기초하니 이 부분은 배제하고, 크리스티 소설 속 탐정들은 ‘인간의 본성’을 보다 날카롭게 주목합니다.
그녀는 작품은 사실 추리물보다는 비교적 범죄 심리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소설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일상에서 쉽게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범행에 얽히면서 평범한 일상에 가려져 있던 두려움과 죄책감, 본능 같은 것들이 드러나죠. 그녀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작가의 통찰력이 눈부시게 발휘된 작품입니다. 사회적인 지위를 얻었거나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러 모였다가 각자 품고 있던 비밀스러운 면이 드러나며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죠. 이렇듯 그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모든 사람은 어두운 면을 품고 살며,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점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크리스티는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엄청난 디테일을 불어넣습니다. 행동, 차림새, 배경, 사는 곳, 직업까지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죠. 그래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친숙합니다. 마치 실제 살아있는 인물을 관찰해 그대로 묘사한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등장시키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가 그녀의 작품에 등장시키는 여러 탐정 중 하나이자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 영국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된 ‘마플 양’도 얼핏 보면 오락가락하는 시골 할머니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에 대한 통찰과 개개인의 사소한 습관까지 포착해 내는 예리한 관찰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입니다.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다 보면 천재적인 지능, 괴짜 같은 면모, 빈틈없는 논리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일으키는 사건이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우치게 됩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굳이 100년 전 쓰인 추리 소설을 골라 읽으며 얻는 건 무엇일까요? 자극적인 조미료를 걷어냈을 때 주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며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범죄 소설, 추리 소설은 잔인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죠. 선정성이나 기상천외한 기교에 치중된 현대 작품에 비하면 다소 심심한 맛이겠지만, 고전 미스터리는 이런 일도 인간의 희로애락에서 비롯된 비극이기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양면성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줍니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인간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얻는 데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세 작가는 추리 소설의 탄탄한 구조, 기발한 소재라는 특징을 갖추면서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충실하게 다뤘기에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중에서도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와 세계관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어둡고 습한 여름, 인간의 서늘한 이면을 보여주면서도 매력 넘치는 탐정들이 손짓하는 고전 추리소설 시리즈에 몰입해 이 시기를 견뎌내길 권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