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을 넘어 삶으로 잇는
콘텐츠 속 지방

요즘 콘텐츠가 그리는 지방
‘힐링’ 넘어 ‘삶’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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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방 소멸에 대한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2023년 소멸위험 지역은 118곳으로 전체 시군구의 52%에 달하는데, 대부분이 비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 소멸이 지방 소멸이라고 명명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번 장마와 폭우는 지방을 집중 타격해, 서울은 상대적으로 약한 피해를 입었다. 일부 누리꾼은 지방 폭우 피해 상황에 대한, 언론의 부족한 관심을 지적했다. 비슷한 상황은 태풍 힌남노가 북상했을 때도 있었다. 포항을 비롯한 지방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서울은 다소 잠잠하게 지나갔고, “큰 태풍이 온다더니 기상청이 오바했다”고 발언하는 이들이 다수 생기며 온라인에서는 다툼이 일기도 했다. 이런 다툼의 끝은 “서울에만 사람이 사냐”는 외침으로 마무리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이뿐이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에 이어 제2순환선이 생기면서 수도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종으로, 횡으로, 원으로 연결되는데 무수한 읍·면·동이 국도도 아니고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예를 들면 화성시 송산동과 마도면, 광주시 곤지암읍, 남양주시 화도읍, 포천시 소흘읍. 수도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모든 지역은 시·군 수준이 아니면 고속도로를 가질 수 없지만 수도권은 읍·면·동도 고속도로를 가질 수 있다. 놀랍다. 수도권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아니, 지방이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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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일이 한국 전체의 일처럼 여겨지는 반면 지방의 일은 무시, 축소 당하는 것을 비유하는 ‘서울공화국’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표현이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지방 거주자들에게는 울분의 상징이며, 수도권 거주자들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말이다.b)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 속 ‘지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방은 다 ‘시골’이라구요?

시골의 모습
이미지 출처: unsplash

필자는 15살이 되던 해 상경했다. 전학한 첫날, 짝이 농담처럼 “시골에서 왔으면 너희 집도 농사짓겠네.”라고 했다. 지하철이 2호선이나 다니고, 우리 아버지는 농사가 아니라 학원을 운영한다고 반박했다. 어색한 서울말을 쓰는 내내, 누군가 고향을 ‘시골’이라 부르면 따박따박 달려가 ‘대구’라고 고쳐주었는데, 그건 아직까지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곤 한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필자 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시골 논란’인데, 지방에서 살다가 대학 진학, 취업 등을 이유로 수도권으로 상경한 사람들이 “그럼 너희 집은 시골이네.”라는 무지, 혹은 무례 사이에 있는 질문을 받는 일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먼 지역을 의미하는 ‘시골’이라는 명칭 안에 ‘지방’을 담는 포함하는 것은 결국 지방에 대한 이해 부족, 날이 갈수록 커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갭 때문이다.


살기 위해 서울로 갑니다

매일일보는 기획 기사를 통해 ‘서울공화국’이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일자리를 꼽았다. 1000대 기업(매출액순)을 확인해 보면 수도권은 10년간 711개에서 752개로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동안 동남권 소재 기업은 24%가 감소했다. 동남권 청년 인구도 2015년부터 5년 동안 수도권으로 이동한 인구가 무려 3배나 늘었다. 지방 소멸과 맞닿은 인구 유출이 일자리 문제와 이어져, ‘살기 위해 서울에 간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란 것이다.

상경을 하지 않더라도 ‘살기 위해’ 매일 서울에 오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 산포시라는 가상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삼남매를 통해 이들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그려낸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이미지 출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극 중 둘째인 염창희(이민기 분)는 아버지에게 차를 사는 것을 허락해달라 말하며 “전기차로 3,000원이면 될 거리를 누나랑, 나랑, 미정이랑 택시 타고 들어오면 몇만 원을 써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몇만 원’은 세 남매가 필수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먹고 사는 값’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 몰라.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냐고 해. 하고 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 태어나 갖고…”

_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자신은 왜 계란 흰자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느냐는 염창희의 자조 섞인 물음 또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지방=힐링?

수도권에 사는 ‘염남매’의 고민은 비수도권에서는 더욱 가속화 된다. 도시의 이미지부터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 속 배경의 대부분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거리, 능력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 기회와 사랑은 오로지 서울에만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서울은 지역구별로 나눠져 ‘핫플’, ‘힐링 스팟’ 등, 다양한 이미지로 이야기 되는데 지방은 ‘시골’, ‘힐링’이라는 단어로 납작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이미지 출처: tvN

어느 순간부터 지방은 ‘힐링’의 대명사가 됐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예능 프로그램 중 <여름방학>, <슬기로운 산촌 생활>, <삼시세끼> 등은 모두 지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콘텐츠로,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연예인이 ‘힐링’하는 모습을 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방 생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들은 지방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기에 지방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힐링 공간’으로 이야기되는 데 그친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을 넘어, 지역과 지역민에 대해 이야기할 순 없을까, 아쉬움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제주에서 ‘우리’가 사는 법

총 14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 속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제주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정은희(이정은 분)와 온 지역을 떠돈 뒤 제주도에서 해녀로 제2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영옥(한지민 분), 겉보기에는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우울증과 이혼 위기에 처한 민선아(신민아 분)가 서울을 떠난 뒤 찾는 공간도 제주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이미지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

<우리들의 블루스> 속 제주도는 잔잔한 바다와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힐링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정은희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척스럽다는 말을, 이영옥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해녀들의 텃세를 견뎌야 한다. 민선아는 제주에서의 삶을 택하기 위해선 아들의 양육권을 두고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노희경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우리들의 블루스>를 취재할 때 제주에서 몇 달을 머물며 시장 상인, 해녀, 어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보며 동석과 은희 캐릭터를 생각하고, 그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이 이야기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것이 결국 ‘지역’에 오롯이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계기가 되었다.

상처를 피해 서울을 떠난 뒤에서도, 제주에서도 다시 상처받는 인물들의 모습이 극 곳곳에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은 이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제주’는 인물들에게 ‘힐링 공간’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청춘’의 종착지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이여름(김설현 분)도 서울을 떠난다. 여름은 회사에서는 ‘갑질’에 시달리고, 6년 만난 남자친구에게는 이별을 통보 당한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여름은 삶의 방향성을 순식간에 잃어버린다. 여름은 어느 날 만원 지하철이 안이 아닌 지하철역 밖에 핀 벚꽃을 보고 인생에 쉼표를 던지기로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된 여름은 바닷가의 작은 어촌마을인 안곡마을에 정착한다. 안곡마을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안대범(임시완 분)과 만나고, 아픈 강아지를 치료해 주기도 하며 여름도 안곡마을에 물든다.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이미지 출처: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도 ‘힐링’을 강조하는 드라마로만 보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속 힐링 공간이 아니다. 평범한 도서관 사서로 보였던 대범은 물리 천재로 이름을 날렸던 수재지만, 과거 누나가 살해당해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보이던 김봄(신은수 분)도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에게 칼에 찔리기까지 당한다. 이 모든 일이 여름이 ‘아름다워서’ 머물고 싶던 안곡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충격을 받은 여름이 안곡마을을 떠날 결심을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다. 돌아와 대범, 봄, 그리고 여름 앞에 놓인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간다. 여름과 안곡마을의 관계가 ‘힐링’을 넘어 ‘머묾’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말미에 여름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봄과 떠들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대범과 조깅을 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온 곳에서 수없이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름은 시종일관 웃는다. 삶의 공간을 서울에서 안곡마을로 오롯이 옮겨왔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서울과 지방, 우리는 무엇이든 ‘가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지역에는 짧은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수히 녹아있다. 공간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방법 중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기를, 그렇게 지방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감히 바라본다.

a) 프레시안, 10·29참사의 재구성…서울 완전독점과 지방 소멸(2022.12.08)
b) 중앙일보, 인구감소·저성장 풀려면 ‘서울공화국’ 끊어야(2022.12.12)

  • 뉴스 토마토, 지자체 절반 ‘소멸 위기’…특화단지 속도·성장동력 확보 시급(2023.07.26)
  • 스브스뉴스, 수도권 제외하면 전부 시골?…’지방’과 ‘시골’의 차이점(2017.10.18)
  • 매일일보, [기획] ‘서울 공화국’ 70년…“살려면 상경해야”(2023.02.01)
  • 씨네21, [인터뷰] 노희경 작가, “‘우리들의 블루스’ 캐릭터의 촉발은 은희와 동석”(2023.03.17)

최윤영

최윤영

예술, 사람, 그리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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