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못 읽은
아시아 문학 3선

새로운 궤도를 그리는
아시아 문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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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한편에 빼곡히 꽂힌 세계 문학 전집을 떠올려 보세요. 필독서라는 이름으로 오래 사랑받은 만큼 몇 권을 떠올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의 저자 중에 아시아 작가는 몇 명이나 될까요? 공들여 세어보지만 그마저도 한국과 일본 작가의 범주에서 그치고 말 겁니다. 세계 문학의 역사가 오랜 세월 동안 유럽 문학을 중심으로 쓰여 왔기 때문이죠.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아시아 문학은 유럽 문학의 발자취를 좇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시아 문학은 새로운 궤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과 역사를 조명하고, 국가와 민족을 넘나드는 문학을 선보입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주최하는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는 아시아 문학의 미학적 지평을 높이는 데 기여한 작가에게 ‘아시아문학상’을 수여하고 있는데요. 역대 수상 작가 3인과 그들의 작품을 따라, 가깝고도 먼 아시아 문학의 세계를 탐험해 보세요.


몽골
담딘수렌 우리앙카이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

담딘수렌 우리앙카이
이미지 출처: TAGTAA PUBLISHING

‘몽골’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초원과 유목하는 사람들, 그 사이를 횡단하는 가축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몽골의 대표 시인으로 손꼽히는 담딘수렌 우리앙카이(Damdinsuren Uriankhai)는 이러한 전통 유목민적 감수성과, 현대 도시의 모더니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관은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학력과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갖고 있지만 업적을 쌓는 데 마음을 쏟지 않으며, 도시 생활에 익숙함에도 항상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죠. 현대 사회의 갈등이 양극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열린 태도로 양방향을 아우르는 그의 세계는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편견을 넘나드는 유연함 속에서 왠지 모를 자유와 해방감까지도 느껴지죠.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제1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작가 작품집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를 통해 우리앙카이의 시가 한국에도 정식으로 소개되었는데요. 고독의 시간 동안 인간과 삶, 현실 세계에 대해 깊이 통찰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때론 평화를 노래하고, 때론 불의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불교와 도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관심을 두었던 만큼,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그만의 사상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진리와 명상, 철학적 사유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독자에게 그의 시구가 신선한 답을 내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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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바오 닌 『전쟁의 슬픔』

바오 닌
이미지 출처: 한겨레

베트남은 우리에게 친숙한 여행지이면서도, 이전 세대에게는 ‘전쟁’이라는 단어와 함께 기억되는 나라입니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 전쟁에 많은 한국 군인들이 파병되어 지금까지도 그 상흔이 남아 있죠. 베트남의 소설가 바오 닌(Bảo Ninh) 역시 열일곱 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6년 동안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합류한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우의 시신을 수습한 다음에야 비로소 전역했죠. 그에게 전쟁은 삶의 일부이자 지울 수 없는 기억이었을 것입니다. 매 순간 불안하고 치열했던 순간을 보냈건만, 무엇을 위해 이 잔인한 고통과 슬픔을 겪어야만 했는지 알 수 없었죠.

『전쟁의 슬픔』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그의 첫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에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글에는 적개심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힘입어, 곡해 없이 솔직한 시선으로 전쟁의 비극과 휴머니즘을 그려냈죠. 주인공 끼엔과 그의 첫사랑 프엉을 중심으로, 전쟁이 어린 연인들의 사랑을 어떻게 짓밟고 마는지 낱낱이 보여주는데요. 문단계의 찬사를 받으며 베트남 문학 최초로 16개국 언어로 번역 출판된 이 소설은 휴전상태인 우리의 현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들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바오 닌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평화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_옮긴이 하재홍, 『전쟁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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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샤힌 아크타르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샤힌 아크타르
이미지 출처: New Writing

전쟁은 참전하는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특히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쟁 속에서 여성을 향한 성폭력은 언제나 뒤따랐죠. 아직까지도 진심 어린 사죄를 받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당사자 할머님들과 우리 기억 속에도 여전히 뼈아프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도 비슷한 아픔을 가진 역사가 있습니다. ‘비랑가나’로 불리는 여성들의 이야기인데요. 비랑가나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중 파키스탄 점령군에 의해 성노예로 학대당한 여성 희생자들을 말합니다. 정부는 전후 강간 생존자들에게 ‘여성 영웅’이라는 뜻의 비랑가나라는 칭호를 붙였지만,a) 대중에게는 ‘창녀’의 의미로 사용되며 이들에 대한 낙인이 되었죠. 인권 운동가이자 방글라어 소설가 중 최고로 손꼽히는 샤힌 아크타르(Shaheen Akhtar)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다큐 소설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역사의 선명한 피해자임에도 국가와 대중,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한 비랑가나의 눈으로 방글라데시의 현대사를 바라봅니다. 중심인물 ‘마리암’을 비롯한 여성의 시선으로 전쟁의 아이러니와 가부장제의 허위의식을 꼬집죠. 샤힌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님의 증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시 성폭력과 이를 책임지지 않는 사회라는 연결고리가 맞닿은 것이지요. 소설이 담담하게 그리는 분노와 감동은 의식하지 않아도 가슴에 박힙니다. “아시아 여성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반영된, 우리 시대 최고의 페미니즘 전쟁 다큐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단의 평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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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아시아 문학, 그리고 이들의 배경을 소개하면서 우리 역사의 면면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전쟁의 슬픔』을 읽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가 겹쳐졌고,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속 비랑가나들에게서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얼굴을 보았죠.

아시아라는 공통 분모 아래, 우리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비슷한 역사와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구문학에 비해 비교적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요. 아픔과 소외를 딛고 길을 개척해 나가는 아시아 문학의 도약을 응원하며, 올가을에는 아시아 문학 한 편을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요?

a) 여성신문, [인터뷰] 작가 샤힌 아크타르 “김학순 보며 ‘비랑가나’ 떠올려… 한국사회, 여성가족부 지켜야”(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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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유림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찾아 모으는 사람.
고이고 싶지 않아 잔물결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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