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시선을
발명한 사진작가들

우연을 목격하고
응시하고 현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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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절망과 희망의 순간을 목격합니다. 사진에는 모든 우연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죠. 이미지는 다른 세계의 인류애와 동시대의 무자비함을 충실히 조명하는 하나의 매개로 작용합니다. 사진작가들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아무도 알고자 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포착해 우리 앞에 펼쳐놓습니다. 사진작가는 우연을 포착하는 사람이지만, 사진작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카메라를 든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사진작가들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고 있죠.

오늘은 남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세상을 기록한 사진작가들을 소개합니다. 가장 사적인 순간을 담았던 비비안 마이어부터 가장 위험하고 극적인 순간을 담는 린지 아다리오, 가장 낯선 대상을 포착한 다이앤 아버스 그리고 가장 친밀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김영희까지. 마음이 가는 사진작가의 렌즈를 빌려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도시의 인간다움을 포착하기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의 삶은 철저하게 비밀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그의 사진들은 ‘존 말루프’라는 청년이 시카고 경매장에서 한 버려진 상자를 낙찰받으면서 세상에 공개되었죠. 비비안은 그 누구도 책임질 마음이 없었던 부모 밑에서 자라 타인과의 유대감을 쌓을 수 없는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비안의 사진에서는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집니다. 비비안은 여러 가정에서 보모로 일하며 거리로 나가 아이들, 젊은 연인, 노인들의 사진을 끊임없이 찍었습니다. 그의 렌즈에 담긴 피사체들은 어딘지 모르게 인간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죠. 비비안은 열정적인 스킨십보다 잔잔한 몸짓에서 느껴지는 친밀함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노부부가 서로에게 기대어 잠든 모습이나 공사장 인부들의 맞잡은 손을 찍은 사진에서 이를 느낄 수 있죠.

이미지 출처: vivianmaier.com

비비안은 벌거벗은 도시의 진짜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뉴스가판대의 상인, 옥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인부, 더러운 옷을 입고 초췌하게 앉아있는 한 남성. 비비안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시카고 거리를 비비안과 함께 걷는듯 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받거나 외로운 사람을 찍었던 비비안의 렌즈 속 시선과는 달리 실제로 그는 매우 차갑고 냉소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렌즈라는 한 겹의 레이어를 통해서 비비안은 인간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셈이죠. 비비안은 노년에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늘 누구나 볼 수 있는 거리의 벤치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결핍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가족과 과감하게 절연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 가장 소외되었지만 언제나 다른 사람을 향한 렌즈를 켜두었던 사람. 더 이상 내 주변에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독자분들이 계신다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의 순간에 내 마음을 비추어 보는 것을 권합니다.

이미지 출처: vivianmaier.com

아무도 보지 않는 존재들을 응시하기
다이앤 아버스

다이앤 아버스는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사진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소수자, 여성, 기형으로 태어난 사람들과 같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프레임 안에 담았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다이앤은 집안이 반대한 사람과 결혼하며 평온했던 생활의 테두리 안에서 뛰쳐나오게 됩니다. 패션 화보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오던 다이앤은 본격적인 예술 사진의 세계로 들어서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의 초상을 찍게 됩니다. 다이앤은 카메라가 일종의 ‘허가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당신 집을 방문해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미쳤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모두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이야기하죠.

이미지 출처: Wikiart.org

다이앤은 사회가 규정해 놓은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 안에 어설픈 동정이나 연민의 시각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다이앤의 피사체들은 모두 당당하거나 활짝 웃고 있는 등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이앤은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피사체를 보고 사람들이 이미지와 직접 부딪히며 대상을 마음으로 느끼기를 바랐죠. 나아가 다이앤은 모든 사람들은 외상을 입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데 이미 외상을 지닌 채 태어난 사람들은 인생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사회가 그어놓은 비정상과 정상의 잣대를 뒤집어 보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을 권합니다.

이미지 출처: Wikiart.org

최전선의 순간을 셔터로 목격하기
린지 아다리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목소리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종군 사진작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린지 아다리오 또한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취해하는 종군 사진기자입니다. 린지는 분쟁지역을 돌며 전쟁 지역의 여성 인권에 대해 취재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종교와 정치색을 떠나 파키스탄 여성들의 일상을 전하기도 했죠. 린지는 이때 자신의 신념을 떠나 피사체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행동하는 습관을 길렀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lynseyaddario.com

린지는 <뉴욕 타임즈>, <내셔널 지오그래픽>등 잘 알려진 매체들과 일하며 이라크, 수단, 리비아, 시리아, 소말리아, 콩고 등에서 종군 사진작가로 일했습니다. 린지는 분쟁 자체의 추함 속에서 피사체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전쟁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정함과 친절함을 잃지 않으며 높은 회복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린지는 말합니다. “나는 평화 속에서 사는 동시에 전쟁을 목격하고, 인간의 가장 악랄한 측면을 경험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쪽을 선택했다.” 린지 아다리오의 사진들을 살펴보면,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lynseyaddario.com

피사체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김영희

사진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입니다. 재미교포 사진작가인 김영희 작가가 처음 카메라에 손을 댄 이유도 카메라가 언어를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김영희 작가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르완다 내전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거, 인도네시아 인종 폭동 등을 취재하며 종군 사진기자로서 활약했습니다. 92년 소말리아 내전을 취재할 때는 숙소를 덮친 반군에 납치된 적도 있죠. 여성 사진작가로서 폭동이나 전쟁 등 국가 분쟁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영희 작가는 “위험 앞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합니다. 김영희 작가는 미국 타임지에 위안부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실어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서구의 국가들에게 알린 계기를 마련한 작가이기도 하죠.

이미지 출처: yunghikim.com

김영희 작가의 사진 속 피사체들은 모두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진에게서 “포토저널리즘은 내가 아니라 오로지 대상을 위한 것”이라는 작가만의 철학이 묻어나는듯합니다. 김영희 작가는 인간다움을 포착해 내는 것에 친밀감과 감정을 빼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은 가장 친밀한 대화 같아서 내가 찍고자 하는 대상의 비언어적인 행동과 눈빛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죠. 필자는 김영희 작가의 사진들을 볼 때면 사진 속 사람들과 눈을 맞춰봅니다. 그들이 건넬 이야기를 기다리면서요. 독자분들도 사진 속 피사체들과 눈을 맞춰 보세요. 이미지를 넘어 하나의 이야기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미지 출처: yunghikim.com

미국의 에세이 작가 수전 손택은 ‘사진은 개인이 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나 사진에 담긴 피사체는 다르지만 4명의 사진작가 모두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들에게 카메라는 초대장이었고 언어였고 또 인생 그 자체였죠. 필자는 이들의 사진을 볼때면 사진기를 들고 서 있는 프레임 밖의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순간들을 포착하는 그들의 모습을요. 독자분들은 이 사진들 속에서 어떤 순간을 발명해 내실지 궁금합니다.


Picture of 린리

린리

모두가 빠짐 없이 오늘치 취향을 누리도록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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