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이 세상을 정의하고 가동하는 법칙이다.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지배 아래,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가치는 자본주의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미래적인 가치는 자본주의와 겹치며, 숭고하면서도 비열한 양면을 모두 보인다. 지속가능성에는 매번 그린워싱이 따라 붙은 것처럼. 다양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묻혀버렸다. 패션 산업을 통해 살펴보자. 이제 런웨이에 흑인과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이지만, 우리는 과연 진정성 있게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을까?
잡지 표지에 등장한 흑인,
박수칠 일일까
2022년 영국 보그지 2월호 표지엔 아홉 명의 흑인 모델이 등장했다. 패션 잡지의 표지는 당시 사회적 트렌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다수의 시선이 모이는 지점인 만큼 시대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러한 표지에 흑인 모델이 등장하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유의미한 일이나, 이 표지는 많은 비판을 직면했다.
어두운 조명으로 아주 까맣게 표현된 피부, 검은색 옷으로 피부와 대비되지 않는 모습은 흑인의 검은 피부색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흑인을 흑인으로 제시하기 위해 꼭 검은색을 강조해야 하냐는 비판이 있었다. 또 어둡게 표현된 탓에 모델 개개인을 식별하기 어려우며, ‘흑인 집단’으로 통째로 인식하게 된다. 이들은 균질화되었고, 웃음기 없는 표정과 경직된 자세는 이를 더욱 강조할 뿐만 아니라 친근감 없는 타자화된 존재로 위치한다. 흑인의 특징인 곱슬머리까지 생략되며, 백인의 시선이 진하게 반영된 사진이라는 평을 받았다.
패션 산업에서 인종 다양성은 ‘등장’으로 추구된다. 런웨이에서 등장하는 흑인 모델을 세는 것처럼, 단순히 흑인 모델의 등장만으로 패션 업계의 인종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흑인의 존재를 확보한 것만으로 정치적 행동을 완료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단순한 등장으로는 인종의 불평등한 구조에 접근할 수 없다. 표지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호평을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면, 그 안일한 기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인종 문제를 ‘남의 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즉, 진정성 있는 접근이 아니라는 뜻이다.
유색인을 이용하는 방법
인종 자본주의(Racial capitalism)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얻기 위해 인종을 이용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다양성을 자랑하기 위해 기업이나 학교의 대표사진에 흑인을 포토샵으로 추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브랜드의 신뢰도와 인지도를 얻기 위해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선구적인 또는 선량한 이미지를 쉽게 얻으려는 행동이다.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겉치레에 불과한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토크니즘(Tokenism)’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때 유색인은 평준화되거나 왜곡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눈이 찢어진 동양인만 자주 등장하는 점이다. 다양한 생김새를 가정하지 않고, 개성을 제거한 채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가지 특징만 남았다. 여기서 동양인은 여전히 프레임에 갇힌 채, “우리도 다양성을 챙겼다”는 증거로 기능할 뿐이다. 이처럼 유색인은 철저히 백인의 시선으로 분석되고 표현된다.
특히 백인의 미적 기준은 유색인을 가르는 또 다른 잣대가 된다. 패션 잡지나 이미지에 등장하는 흑인은 주로 백인의 미적 기준에 가까운 얼굴이 많다. 넓적한 코와 두툼한 입술과 같은 흑인의 상징적인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또 상대적으로 밝은 톤의 흑인이 더 자주 등장한다는 경향도 있다. 미국의 배우 젠다야는 스스로를 ‘할리우드가 허용할 만한 흑인’이라고 설명하며, 자신은 피부색이 더 어두운 여성과 같은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인의 입맛대로 활용되는 흑인 이미지는 백인의 권력과 미적 기준을 오히려 강화할 뿐이다. 흑인의 정체성보다는 미적 논리가 더 강조되며, 소수자의 존중이나 억압의 역사에 대한 애도도 없다.
자본주의의 유색인 노동 착취
‘인종 자본주의’에는 다른 맥락도 있다. 패션 산업에서 인종의 문제는 런웨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의 전체로 시야를 확대해보자. 세계 지도를 펼치면 어떤 구조가 보이는가? 패션 기업의 본사는 북반구에, 공급망은 남반구에 위치한 시스템이 보인다. 대체로 유색인종의 공간에 노동이 집중되고, 백인의 공간에서 소비가 이루어진다. 패션의 인종 다양성 담론에서 노동자의 문제는 잘 언급되지 않지만, 노동의 문제엔 인종이 깊이 결부되어 있다.
2020년, 한 도시의 의류 공장 단지에 대한 뉴스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Dark Factories’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이 공장들은 흑인과 아시아인 노동자들이 덥고 통풍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시간당 6천원도 안 되는 금액을 받으며 일했다. 이 공장이 위치한 곳은 영국의 레스터(leicester)라는 도시로, 영국 패스트 패션 소매 기업의 주요 공급업체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영국에서 버젓이 불법적인 노동이 자행되고 있었고, 그 노동 현장에는 어김없이 유색인종이 있었다. 영국은 사회적 인식이나 물리적 인프라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근거로 착취를 변명할 수도 없었다. 즉, 패션 산업에서 자행되는 노동 착취의 쟁점은 지역이 아닌 ‘인종’이다.
현대와 같은 인종 차별의 형식은 17~18세기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아프리카인에 대한 노동 착취에서부터 형성되었다. 인종 차별은 유색인종의 노예 노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자, 신분제가 사라져가는 사회에서 착취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였다. 점점 자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인종과 노동 계급의 문제는 분리할 수 없이 뒤섞인 관계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를 위해 인종 구분, 나아가 인종 차별을 철저히 이용했고, 이 시스템은 여전히 현대의 노동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패션은 자본주의가 인종 차별을 토대로 세운 대표적인 산업이다.
런웨이에 다양한 인종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패션 산업의 다양성은 인정 받는 편이다. 그러나 아직 여러 유색인종이 각각 백인과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려면 한참 멀었다. 미국 런웨이에 등장한 모델 중 백인은 56%를 차지하고, 흑인이 17%, 라틴계가 12%, 아시아인이 6%다. 백인과 유색인 모델 간 임금 격차도 뚜렷하다. 다양성은 수치로도, 의미로도, 구조적으로도 부족한 상황이다. 백인을 제외한 인종은 여전히 외면 받고, 타자화되고, 평준화되며, 심지어 착취 당한다. 진정한 다양성이 무엇인지, 소수자의 정체성과 억압의 역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이해와 고민이 꼭 필요하다.
- 탠시 E. 호스킨스,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2014, 문학동네.
- 알렉스 캘리니코스,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2021, 책갈피.
- BBC, Zendaya: ‘I’m Hollywood’s acceptable version of a black girl'(2019. 4. 24.)
- CNN. Is British Vogue’s latest cover the best way to celebrate Black beauty?(2022. 1. 21.)
- The New Republic. How to fix the fashion industry’s racism(2019. 4. 18.)
- Zippia, Runway model demographics and statistics in the US(2021).
- Brandi Thompson Summers. (2017). Race as Aesthetic: The politics of vision, visibility, and visuality in Vogue Italia’s “A Black Issue”, QED: A Journal in GLBTQ Worldmaking, 4(3), 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