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께 단상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부옇던 하늘이 기본값이었던 여름을 보내고 서늘한 계절의 초입, 다시 글을 지어 보냅니다. 요즘의 말버릇처럼 “벌써 9월”입니다.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의 뒤통수를 망연히 바라보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죠. 올해는 작년에 비해 무엇이 나아졌는지, 오늘과 어제는 어떻게 달랐는지 헤아려 보다 눈을 꾸욱 감습니다. 여전히 반복하는 나쁜 습관과 여러 핑계로 미뤄두었던 일들이 잔여물처럼 부유합니다. 잘 지내냐는 말에 늘 그렇듯 무탈하다고 답하지만 대체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실은 무탈하지 않은 날도 있고, 견딜 만한 날도 있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기쁨에 도취되는 날도 있습니다. 고난과 환희로 이뤄진 굴곡은 반복되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 상태. 그럴 때 우리는 삶의 권태를 느끼곤 합니다.

권태가 찾아오면 사소한 반복이 힘에 부칩니다. 혼잡한 출근길도, 자리에 앉아 모니터의 전원 버튼을 누를 때도, 옆자리 동료와의 대화나 이메일 창을 여는 순간까지도요. 인식하고 보면 생경한 풍경이 한둘이 아닙니다. 공장형 사무실이 촘촘히 자리한 지역으로 출퇴근했던 당시,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일에 대한 기대를 지우곤 했습니다. 빤하게 펼쳐지는 오늘의 풍경과 건조하기만 한 내일. 인파에 묻혀 무력감을 곱씹었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자연스럽게 프레임 밖에서 사고할 시간도 줄어들었죠. 삶에 대한 상상력이 차츰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쫓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고, 학습된 욕망을 내 삶에 적용하게 됩니다. 스스로 세워둔 기대치에 삶이 도달하지 못하면 우울감에 휩싸이거나 번아웃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 과정은 미약해 보였던 권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렇다면 일상이 권태에 젖어 들지 않도록, 끊임없는 변화를 도모해야 할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고정된 상황이 얼마간 지속되는 게 당연합니다. 단순히 권태를 느낀다고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에 장시간 머무르면 갑갑함을 느끼듯, 일상에도 약간의 틈이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다른 삶으로 접속할 수 있는 미지의 틈. 누군가는 자유로이 틈을 왕래하지만, 누군가는 꼭꼭 닫힌 벽을 바라보고 있을 테죠. 손쉽게 틈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예술입니다. 예술 앞에 놓인 우리는 잠시나마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내던져집니다. 미지의 이야기 속으로, 미지의 선율로,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게 예술이지요. 내일에 대한 기대는 어제와 다른 향유 경험으로도 채워질 수 있습니다. 삶은 시간 때우기에 연속이라고 하던가요. ‘무엇을 누리고 살 것인가’는 분명 선택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얼마 전 홀로 일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입을 모아 ‘심심할 필요’를 말했습니다. 심심한 순간이야말로 정신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라고요. 비어 있는 시간을 맹목적으로 채우려는 습관을 반추해 봅니다. 느슨하게 살다 보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지는 사회에 심심하기란 쉽지 않지만, 알고 있습니다. 틈 없이 빼곡한 삶의 그늘을요. 좋아하는 영화를 몇 편이고 이어 보는 것과 음악을 배경 삼아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 책장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잠드는 그 모든 순간을 최대한 오래 누리고 싶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과는 다른 세계관을 인지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실은 여러 가능한 모습 중 하나이며, 이 또한 우리에게 영원히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_올가 토카르추크, 다정한 서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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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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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진

비틀리고 왜곡된 것들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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