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적 심상을 부르는
문화 콘텐츠 세 가지

관계 맺는 감각들
배가되는 문화 향유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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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에서 두 개 이상의 심상이 결합해 한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전이를 일으키는 표현을 익히 접하게 됩니다. 이른바 공감각적 심상이라 하죠. 학창시절에 공식처럼 외던 대표적인 형용은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등이 있을테고요. 그런데 공감각적 묘사는 시에서만 펼쳐내는 시도가 아닐 겁니다. 다양한 대중 문화 경험에서도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라는 각기 다른 감각이 서로의 자리를 대신하며 경계 너머 자극을 받곤 합니다. 공감각적 심상을 활용하는 문화 콘텐츠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청각의 시각화
<블루 자이언트>, 2023

<블루 자이언트>
이미지 출처: 판씨네마㈜

원작 『블루 자이언트』는 재즈를 소재로 한 이시즈카 신이치의 음악 만화입니다. 재즈에 빠져 세계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가 되겠다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성장하는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를 그립니다. 본능적으로 색소폰을 연주하던 다이가 스승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며 기술을 터득하고, 재즈를 향한 믿음으로 재능을 폭발시키는 쾌감을 선사합니다.

주인공이 대성한다는 전형적인 결말임에도 과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림만으로도 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음의 빠르기, 세기, 흐름은 만화에서 크고 작은 칸의 강약 조절로 표현되거나 인물의 동작과 표정이 적절히 배치되면서 느껴집니다. 전반적인 곡의 분위기도 연상되죠. 이로써 독자들은 저마다의 재즈곡을 상상하게 됩니다. 재즈와 친숙하지 않다 할지라도 나름의 선율을 흥얼거려볼 수 있습니다. 만화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로 제작돼 청각적 상상을 현실화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는 10월 18일 개봉 예정입니다.


시각의 청각화
<사울의 아들>, 2016

이미지 출처: 그린나래미디어㈜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는 영화 <사울의 아들>은 반대로 청각의 힘으로 시각을 구현합니다. 작품은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참혹한 현실을 다룹니다. 카메라 밖,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무자비한 상황을 그리는 방법이 인상적입니다. 바로 소리를 통하는 것이죠.

주인공 사울의 뒤 혹은 옆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그의 모습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주변을 흐리는데, 오히려 시각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요소가 극대화됩니다. 공간에 낮게 깔린 마찰음과 기계음, 고통에 시달리는 신음 등 주변부 소음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귀를 기울이게 하기에. 소리로 인해 관객이 인지하는 세상이 확장되는 셈입니다. 듣기가 보기를 증폭시킨다는 잔상을 짙게 남깁니다.


촉각의 시각화
<펀치 드렁크 러브>, 2003

이미지 출처: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는 기이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누나 7명을 둔, 어리숙하고 늘 위축되어 있는 한 남자에게 사고처럼 갑자기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담습니다. ‘펀치 드렁크’라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죠. 권투 선수가 초점을 잃고 비틀거리는 느낌이나 뇌가 심한 충격과 손상을 받아 일어나는 뇌세포손상증을 이르는 단어가 사랑과 연결된 것입니다.

일단 영화는 초반부터 한 대 얻어맞은 상태로 시작하듯 번져있는 여러 빛깔이 무질서하게 얽히고 분리되며 울렁거림을 나타냅니다. 물론 울렁거림은 황홀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 갈수록 주인공 배리가 타격을 하거나 받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무실 벽을 주먹으로 세게 치고 상처가 난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그의 손가락 마디에 ‘LOVE’가 새겨집니다. 신체적 통증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승화되는 마법을 확인시킨달까요. 결국 타격의 감각은 핑크빛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예민한 감각은 사소한 현상도 포착하는 레이더가 됩니다. 나아가 여러 감각의 호응은 세상을 창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무기가 되지요. 이번 아티클을 가이드 삼아 여러분만의 공감각적인 콘텐츠를 발견하는 재미를 충분히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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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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