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서동남아시아 영화들

2023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해야 할
비주류 아시아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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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대형 할리우드 스타의 내한을 성사시키고 유명 국내스타들을 한자리에 결집하는, 소위 라인업 좋기로 잘 알려진 행사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라는 별칭엔 또 다른 무게가 있습니다. 바로 같은 면적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접하기 힘든, 비주류 아시아 영화를 대량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죠.

얼마 전 발표한 제28회 상영작에도 낯설고 흥미로운 작품이 한 가득입니다. 그 중 영미·유럽이나 중국·일본에 비해 영화제 후 국내 개봉이 거의 이뤄지지 않을, 한국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영될 가능성이 큰 서동남아시아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불법 이주 노동자를 다룬
태국의 LGBTQ 영화 <도이 보이>

영화 <도이 보이> 스틸
영화 <도이 보이> 스틸, 이미지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호스트바에서 남자 손님을 접대하는 청년 ‘쏜’은 이성애자이고 여자친구도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미얀마에서 태국 치앙마이로 넘어 왔지만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그를 갈수록 수렁으로 떨어트립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특성 탓에 미얀마인은 태국에서 가장 많은 미등록 외국인 수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도이 보이>는 불법 체류를 하면서 게이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쏜’을 통해 사회적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음지 문화와 그 관습을 담아냈습니다.

별개로 젊은 미남 배우들의 출연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업 랭크>로 한국을 찾았던 배우 Bhumibhat Thavornsiri가 또 한 번 등장합니다. 태국의 새로운 얼굴, 떠오르는 신성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도이 보이> 상세 페이지


성소수자 가족의 재회를 다룬
인도네시아 영화 <사라의 수난>

영화 <사라의 수난> 스틸
영화 <사라의 수난> 스틸, 이미지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여성 ‘사라’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골 고향으로 되돌아옵니다. 도시에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그녀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언짢은 눈초리로 냉대하기만 합니다. 설상가상 기억상실증에 걸린 어머니는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사라는 모친을 간호하기 위해 과거의 남자 옷을 입고 다시 아들 행세를 합니다.

LGBTQ 문화가 보다 활발한 동남아시아의 특성 상 퀴어 영화가 유독 많습니다. 그 중 <사라의 시선>은 트랜스젠더의 딜레마와 가족 간의 갈등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관찰했습니다.

최근 영화계는 인도네시아의 부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인도네시아 내 자국 영화 점유율이 10%도 채 되지 않았다면 최근엔 50%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하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도네시아 영화의 르세상스’ 특별전을 관심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영화 시장의 미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사라의 수난> 상세 페이지


견고하고 아름다운 화면의 베트남 영화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영화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스틸
영화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스틸, 이미지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늘상 있던 오토바이 사고가 났길래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고의 사망자는 자신의 형수였습니다. ‘티엔’은 남겨진 어린 조카를 챙겨 아이의 아빠이자 자신의 형을 찾아 고향으로 떠납니다. 베트남 시골을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입니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젊은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1993년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의 향기> 이후 베트남영화로선 30년 만에 해당 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예술에서 가치를 두는 ‘카메라의 힘’이란 무엇인지 경험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흔히 촬영에 대한 상이라면 화려한 무빙과 속도감 있는 스펙타클을 기대하겠지만 이 영화는 자극적인 드라마나 액션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정적으로 흘러갑니다. 느리고 긴 시간을 버티다 보면 다다르는 동화의 순간, 주인공의 사색을 끝내 공감하게 되는 영화적 체험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상세 페이지


옴니버스로 감상하는
미얀마 영화<10년: 미얀마>

영화 <10년: 미얀마> 스틸
영화 <10년: 미얀마> 스틸, 이미지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가 지속된 지 2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최근엔 또다시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하며 총선을 저지하기도 했습니다. 혼란한 시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건 영화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10년: 미얀마>는 2021년 쿠데타를 겪은 감독들이 제각기 상상한 10년 후의 미얀마가 담겨져 있습니다.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서 연상되는 의문사, 정치범, 저항군, 폭력, 검열 등이 암흑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죠. 미래라는 소재를 빌려 시재를 고발하고 토로하는 영화입니다.

특히 <10년>은 2015년 홍콩에서 시작해 일본, 대만, 태국을 거치며 국제적 연작이 된 시리즈입니다. 각국의 개성 있는 연출과 사회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프로젝트로 이번엔 미얀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차례입니다.


<10년: 미얀마> 상세 페이지


화려함의 극치, 발리우드의 정수
인도 영화<발리우드 러브스토리>

영화 <발리우드 러브스토리> 스틸
영화 <발리우드 러브스토리> 스틸, 이미지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인도 최대 영화 산업 도시 뭄바이(봄베이)와 할리우드를 합친 단어, ‘발리우드(Bollywood).’ 그 중 ‘마살라’라고 하는 주 장르가 바로 흔히 알려진 ‘인도식 뮤지컬 영화’입니다. 남녀의 연애담과 가족사를 풀어가는 통속 서사에 신나는 군무가 어우러지는 형식을 갖추고 있죠.

<발리우드 러브스토리>는 인도에서 뜨겁게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타 감독과 배우가 만들어낸 야심찬 신작입니다. 란비르 싱과 알리아 바트가 남녀 주인공을 맡았고, 휴머니즘 영화 <내 이름은 칸>으로 익숙한 감독 카란 조하르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영향력 있는 제작진은 곧 거대 자본과 스케일을 뜻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웅장하고 규모가 큰 마살라를 즐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타에 비해 OTT 배급까지는 원활히 기대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스펙타클을 미학으로 삼는 발리우드의 본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극장에서 풍성한 화면과 음향 시스템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발리우드 러브스토리> 상세 페이지


가끔 영화 한 편 보러 저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영화제로 발걸음하는 이유가 있다면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서동남아시아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익숙한 문화권이나 거장들의 신작은 영화제 이후에도 공식적인 극장 개봉을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서동남아시아 영화들은 OTT나 VOD 배급은 커녕 축제 이후 한국을 떠나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한국에서의 유일한 상영이 될지도 모를 귀한 영화들을 선택해보는 건 어떨까요? 소개작 외에도 네팔, 부탄, 파키스탄, 스리랑카,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등 이국적이고 다양한 영화들이 가득합니다! (이미 매진된 회차라 하여도 간간히 취소표가 나올 예정이니 눈 여겨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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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다 보고 난 후에야 '진짜 시작'을 외치는 과몰입 덕후.
좋아하는 게 많아 늘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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