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낡고 버려진 건물, 텅 빈 도로 같은 이미지에 매료되는 걸까요? 누군가는 풍경 속의 흔적을 더듬으며 번영했던 한때를 상상할 겁니다. 누군가는 유령, 좀비 등이 출몰하는 영화적인 풍경을 상상할지도요. 누군가는 인간의 나약함과 시절의 유한함을 가득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건 다르겠지만, 폐허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폐허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때에는, 그 두께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가 스며있을 테니까요.
여기 전 세계의 폐허를 찾아다니며 그 풍경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사진작가 헨크 반 렌스베르겐(Henk Van Rensbergen)은 버려진 건물과 도로, 낡고 부패한 인간의 흔적 속에서 무얼 찾고자 했을까요? 그의 사진 작품을 함께 살펴보며 폐허가 가진 창백한 아름다움, 그 속의 풍부한 이야기를 들어보아요.
비행기 조종사가 기록한
세계 곳곳의 폐허
헨크 반 렌스베르겐은 전 세계를 비행하는 보잉 787 조종사이자 사진작가입니다. 그는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자신의 상황을 이용하여 세계 각지의 버려진 장소를 탐험하죠. 뉴올리언스의 물에 잠긴 놀이공원, 일본과 인도네시아의 버려진 호텔, 불가리아의 버려진 공산당 기념비 등, 그는 세계 곳곳의 폐허를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헨크는 처음엔 주변 지인들에게 비밀스러운 공간을 보여주기 위한, 기록 용도로써 사진을 찍었습니다. 폐허 사진 촬영을 시작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공간의 분위기를 사진에 온전히 담아내 보는 이에게 그곳의 정취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죠.
그는 잊히거나 금지된 장소를 발견하는 건, 어릴 적 지하실이나 다락방을 탐험할 때의 느낌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고 말합니다. 버려진 건물에 놓인 서류, 옷가지, 신발, 벽에 걸린 달력 등은 그곳에서 벌어진 비밀을 머금고 방문객에게 조용히 속삭이죠. 헨크의 사진 속에는 마치 방금이라도 누군가 옷을 다리고 있었을 법한 모습의 방부터 수많은 환자가 스쳤을 치과의 의자까지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자주 포착됩니다.
세계에서 인류가 사라진다면
헨크의 사진에서 버려진 건물과 도로 등 인간이 만든 인공물 속, 인간은 사라지고 자연의 고요함만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헨크는 여기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연이 세상을 되찾는다면 어떤 모습일지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그의 사진 시리즈 ‘No Man’s Land’에선 버려진 호텔과 광장, 주차장을 야생동물들이 배회합니다. 쇼핑몰과 같이 상업적인, 오직 인간만을 위한 공간에 들어온 동물들의 모습은 인간 중심적인 우리의 사고에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삶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언제든 스러질 수 있는 것임을 상기시키죠.
WEBSITE : 헨크 반 렌스베르겐
INSTAGRAM : @henkvanrensbergen
인류가 사라진 인간의 공간. 폐허 이미지들은 우리가 영원할 거라 믿었던 인간의 번영과 안정이 유한하다는 걸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 사실은 폐허 이미지를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기도, 두렵게 보이게도 만들죠. 한번 매혹되면 눈을 뗄 수 없는 헨크 반 렌스베르겐의 폐허 사진, 그 안에 스민 고요함에 맘껏 압도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익숙하게 스치던 나의 주변 풍경을 낯설게 보는 계기가 되어 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