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덤은
왜 멸시의 대상이 됐나

케이팝 아이돌 성공의 주역
아이돌 팬덤은 왜 자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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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핫이슈는 누가 뭐라 해도 케이팝이다. 아이돌을 잘 모르는 5060세대도 뉴스에 매일 도배된 BTS의 이름을 알고,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은 아이브(IVE)를 롤모델로 꼽는다. 전 세대가 케이팝을 알고 듣는 시대가 되며, 케이팝을 이끄는 아이돌 그룹의 위상도 달라졌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아이돌 음악이 음악이냐는 비난 섞인 목소리가 컸다. 아이돌 음악이 인정받지 못하며 아이돌 음악, 문화까지 평가절하당했다. 아이돌 팬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돌 팬덤도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동안 케이팝 아이돌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아이돌 팬덤에 대한 시선은 얼마나 변했을까?


아이돌 좋아하는 게
죄인가요?

지난여름, 한 아이돌 그룹의 팬 사인회에서 소속사가 팬들에게 ‘몸수색’을 시행했다는 이야기가 SNS를 중심으로 퍼졌다. 소속사가 녹음기 등을 찾겠다며 팬들의 신체를 직접 확인하거나 옷을 들어보라는 ‘과한 요구’를 진행한 것이다. 팬들의 경험담이 폭로되며 ‘덕후는 불가촉천민이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돌았다. 다음날 소속사 하이브는 사과문을 게재하며 동일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X(구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를 몇 시간이나 장식할 정도로 팬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소속사의 과한 ‘몸수색’에 분노한 이들은 팬 사인회에 참여했던 해당 아이돌 그룹 팬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이들이 분노에 공감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케이팝 아이돌 팬덤이라는 것이다. 직접적인 ‘몸수색’을 당한 경험이 없더라도, 아이돌 팬덤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크고 작은 불편함을 겪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팬덤은 스스로 “아이돌 좋아하는 게 죄인가요?”라고 자조하게 되는 것이다.

1) 아이돌의 탄생과 팬덤의 시작

아이돌 콘서트
이미지 출처: Unsplash

무언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의미의 팬(Fan)이 ‘무리’로 규정이 되면서 팬덤(Fandom)으로 명명되었고, 팬덤은 현재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을 좋아하는 이들을 주로 가리키는 명칭이 됐다.

한국 아이돌 팬덤은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과 함께 집단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난 알아요’로 데뷔한 이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고정된 틀을 깬 자유분방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팬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이때부터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이뤄졌고 오늘날 K팝의 기반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0대 팬덤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a)

이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기획사가 오디션을 통해 발굴하고 트레이닝을 거친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 등의 ‘아이돌’ 그룹을 내놓았고, 아이돌 가수 시장과 함께 전국 단위의 대형 팬덤이 형성되었다. 각 팬덤은 타 팬덤과 자신들을 구분 짓기 위해 ‘공식 색’ 등을 활용했으며, 같은 색의 풍선, 우비 등을 착용하며 결속력을 높였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같으면 쉽게 친해진 경험이 있는 것처럼, 또래 집단에 큰 영향을 받는 10대 문화 전반에도 아이돌 팬덤 문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2) 점차 목소리를 내는 ‘팬’들

콘서트 팬 이벤트
이미지 출처: 트위터 @god15bot

H.O.T로 시작해 아이브와 TXT까지, 아이돌 시장은 1세대부터 4세대까지 구분되며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주목할 점은 아래 god 팬들의 보이콧 사태처럼 아이돌 팬덤이 수동적인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의 위치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아이돌을 향유하는 방식에서도 변화가 있었는데 아이돌을 향한 환호와 열정을 무조건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기획사에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든지 사회 활동에 참여하다든지 등의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지난 2001년, 그룹 god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당시, 리더였던 박준형이 열애설이 터지자 소속사는 그를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속사의 퇴출 발표 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팬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끼고 소속사 앞에서 묵언 시위까지 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팬들의 집단적인 반대 움직임과 다른 멤버들의 퇴출발표 철회 요구가 이어지며, 박준형 강제 퇴출 사건은 일단락됐다.c) 이처럼 아이돌 팬덤은 오랫동안 아이돌의 든든한 보호막이었으나, 한 편으로는 ‘맹목적이다’라는 비난과 편견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아이돌 팬덤은 범죄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탈퇴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 4월 성관계 불법 촬영 및 동영상 유포 사건에 연루됐던 전 FT아일랜드 멤버 최종훈과 전 하이라이트 멤버 용준형은 팬들이 팀 탈퇴를 요구하는 퇴출 성명서를 발표하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결국 두 사람은 팀에서 탈퇴했다.d) 이는 아이돌 팬덤의 성숙도를 짐작하게 한다.

3) 생산자를 넘어 기획자로 변신한 ‘팬덤’

이미지 출처: Unsplash

1세대가 활동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이 아이돌 팬덤과 시장이 형성되는 시기였다면, 동방신기, 원더걸스, 빅뱅 등이 활동한 2010년대는 인터넷의 발달로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큰 변화를 겪었다. CD는 MP3로 대체되고, 오프라인만큼 온라인을 통한 팬덤 활동과 모임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BTS, 엑소 등 3세대 아이돌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다. MP3 음원 발매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K-POP 아이돌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온라인 팬덤 활동이 현재 K-POP에 ‘해외 팬’이 대거 유입된 배경이 된 것이다. 글로벌 팬덤 구축과 성공을 견인한 것 또한 아이돌 팬덤이다.

X에서는 ‘스밍 이벤트’가 자주 개최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음원을 발표하면 아이돌 팬들이 사비로 상품을 구매한 뒤 스트리밍을 독려하는 것이다. 온라인 투표 등, 아이돌의 커리어와 직결되는 수상에도 아이돌 팬덤이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새로운 팬의 유입에도 팬덤의 영향이 지대하다. 유튜브에 관심이 있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검색하면 팬들이 만든 ‘교차편집’ 영상부터, ‘ㅇㅇ즈’라고 불리는 멤버들의 관계성, 캐릭터를 볼 수 있는 각종 콘텐츠가 쏟아진다. 이 모든 콘텐츠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홍보’하기 위해 팬덤이 만든 것으로, ‘기획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듀스 101>을 통해 데뷔한 그룹 워너원
<프로듀스 101>을 통해 데뷔한 그룹 워너원, 이미지 출처: 워너원 공식 SNS

아이돌 팬덤이 기획자로 변모하는데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국민 프로듀서’로 호명된 팬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연습생의 데뷔를 위해 실제 ‘프로듀서’처럼 짧은 방송 분량을 대체할 콘텐츠를 생산하고 투표를 독려하며, ‘황제 민현’ 등 대중에게 각인될 캐릭터를 생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K-POP 팬덤이 잃어버린
소비자의 권리

이미지 출처 : Unsplash

한국경제연구원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한류’가 소비재·문화 수출로 유발한 국내 생산액을 총 37조원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 중 30조5000억원이 소비재다.e) 신세계 백화점은 지난 9월, 신세계 최초로 ‘세븐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기존 명품이나 골프·스포츠 등 분야에서 신상품을 소개해오던 신세계 강남점 ‘더 스테이지’에 한가운데를 아이돌 팝업스토어가 자리를 잡았다.f) 아이돌 팬덤의 구매력이 인증받은 것이다. 기획사도 굿즈를 넘어 웹툰, 웹소설 등의 IP 비즈니스를 전개하며 팬덤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는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산업과 팬덤의 가시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이 여전히 ‘대중적이지 않은 주류문화’라는 분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까닭은 팬덤의 주축이 (심지어 아이돌의 성별과 관계없이) 어린 여성이며, 케이팝은 어린 여성들로 이루어진 팬덤의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열정으로 굴러가는 산업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기인한다. 게다가 그 열정이라는 것이 대부분 아이돌의 예술성이 아닌 댄스나 외모 같은 외적인 요소로부터 비롯한다는 믿음은, 팬들을 ‘빠순이’라 부르는 공공연한 멸칭에서 확인할 수 있다.

_프레시안뉴스g)

이처럼 ‘빠순이’가 된 아이돌 팬덤은 정당한 ‘소비자 권리’까지 침해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연 ‘추첨제’다. 추첨제는 유료 팬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먼저 좌석 결제 권한을 주는 제도다. 당첨된 회원은 자신이 어느 자리에 배정됐는지 결제일이 지나야만 알 수 있다. 따라서 콘서트에 가고 싶다면 내 자리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결제부터 해야 한다.h) 유료투표 또한 논란의 중심에 있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시즌1부터 시즌4까지 시청자 투표 결과를 조작했음이 확인되어 제작진에게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각종 유료투표에 참여했던 팬덤은 허탈함과 분노를 호소하기도 했다.

‘빠순이’라는 멸칭 속에 숨은 불평등

이미지 출처: MBC <우주의 별이> 캡처
이미지 출처: MBC <우주의 별이> 캡처

있는 철벽, 없는 철벽 다 치더니 생각보다 수준이 낮네요. 뭐 하긴 빠순이면 쉬웠겠다. 띨띨이 같고 밀당 없이 갖다바쳐, 공 안 들여도 자달라면 자주고.

_MBC, <우주의 별이>

2017년 방영된 드라마 <우주의 별이>에 등장한 대사는 아이돌 팬덤을 ‘빠순이’, ‘띨띨이’, ‘ATM’으로 명명함과 동시에 “공 안 들여도 자달라면 자주고”라는 대사를 삽입해 큰 논란을 빚었다. 당시 더욱 논란이 된 것은 주연이었던 수호가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였고, 수호의 팬들도 드라마 시청자에 속했기 때문이다. <우주의 별이>에서 수호의 팬 200명을 동원해 무보수 밤샘 촬영을 진행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팬들은 “스태프들이 팬들에게 막말과 반말을 서슴없이 했다”며 “15시간 동안 김밥 한 줄 주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i)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홀대는 서문에서 언급한 ‘몸수색’ 사태와 궤를 같이한다.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의 저자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와 딸 강지원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빠순이 인권 침해’에 대해 역설하며, 엄연한 소비자인 팬들에게 행해지는 반말과 폭언 등, 아이돌 팬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돌 팬덤에 대한 홀대와 편견이 2023년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하나다. 기본적으로 팬 이벤트에서 팬덤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과 수고는 케이팝 팬덤 시스템 안에서 답습된다.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팬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j) 아이돌 팬덤이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이라고 자조하는 것이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는 아이돌 그룹 BTS의 경제적 가치를 46억 5,000만 달러로 평가했는데, 이는 한화로 약 6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BTS가 ‘경제적 가치’에는 BTS의 공식 팬덤 아미(ARMY)의 구매력과 서포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아이돌 팬덤은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아이돌의 이름으로 수천만 원을 기부하거나 단체로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등, 사회 선순환에도 기여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성숙함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돌 팬덤의 변화에 발 맞추어 편견과 멸칭 속에 숨은 불합리도 변한다면, 아이돌, 더 나아가 K-POP 산업의 건강한 성장도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a) 매거진한경, 팬덤, 조용필에서 임영웅까지, 팬덤의 히스토리 [21세기 경영학의 키워드 ‘팬덤’] (2023. 09.27)
b) 김유민, “K-POP 아이돌 팬덤의 문화생산 활동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2021. 서울
c) SBS연예뉴스, [뮤직Y]”강성훈 퇴출”·”문희준 보이콧”…뿔난 팬덤이 움직인다(2018.09.22)
d) 스포츠Q, [아이돌 팬덤의 모든 것]③ 더 이상 ‘빠순이’가 아니다! 팬덤의 성장과 진화(2019.07.23)
e) IT조선, [팬덤 비즈니스] ③ 팬덤의 부가 산업 효과, 경제 전반에 영향(2023.08.16)
f) 매일경제, “뉴진스·페이커 만날 수 있대요”…1020이 주말마다 찾는 ‘이곳’(2023.10.16)
g) 프레시안, ‘앤팀 신체수색’, 케이팝 팬덤을 ‘숭배자들’로 멸시한 사회 태도 보여준다(2023.07.15)
h) 디지털서울넷, ‘빠순이’ 취급 받는 K-팝 소비자 권리(2023.07.03)
i) 디스패치, “팬들은 현금지급기?”…’우주의 별이’, 팬덤비하 논란(2017.02.02)
j) 서울경제, [허지영의 케잇슈] 팬덤은 여전히 ‘불가촉천민’…케이팝, 윤리적 경종 필요할 때(2023.07.15)

  • 한겨례21, ‘빠순이’가 뭐 어때서(2016.07.20)
  • 매거진 한경, BTS·테일러 스위프트, 어떻게 거대 팬덤 거느리게 됐나 [팬덤의 경제학](2023.09.25)

최윤영

최윤영

예술, 사람, 그리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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