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슬픔을
마주하는 방법

소중한 사람과의
영원을 꿈꾸는 영화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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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존재를 잃은 후의 슬픔은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슬픔을 부정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시간에 내맡긴 채 무뎌지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영화 <너와 나>에도 상실의 경험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여고생이 친구에게 어릴 적에 기르다 죽어버린 병아리를 묻어주기 위해 크레파스 통에 넣어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녀는 그 크레파스 통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죽은 병아리는 소중한 것을 잃은 상실감을 은유합니다. 소녀는 상실감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시간 속에 묻어 두었을 겁니다. 그러나 풀어내지 못한 상처는 어딘가에 해소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 채 상실의 시간을 보냅니다. <너와 나>는 상실과 죽음, 마음 속 상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영화입니다.


응시하는 카메라
들려주는 감정

<너와 나>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은 빛에 과다 노출된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희뿌연 장면은 현재보다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운동장의 아이들을 비추던 카메라가 교실 안으로 들어옵니다. 교실 뒤편에 매달린 거울 앞에서 여고생들이 머리를 매만지고 있습니다. 수선거리던 아이들이 떠나가고, 거울 속에는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는 세미의 뒷모습이 맺힙니다. 카메라는 이를 오래도록 바라보게 합니다. 이처럼 <너와 나>의 카메라는 무언가가 떠나고 남은 자리를 고요히 응시합니다. 주변을 채웠던 것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남아있는 흔적과 여운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는 영화의 주된 정서인 상실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준 것입니다. 또 영화의 희뿌연 화면은 분명한 것을 보려 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시각에서 벗어나 미립자 상태의 공기와 빛을 감각하도록 이끕니다. 몽환적인 이미지는 이 영화를 더없이 아름답게 만듭니다.

<너와 나> 스틸컷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세미는 잠에서 깨어나 살짝 눈물을 흘립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불길하고도 슬픈 꿈을 꾸었거든요. 세미는 꿈의 불길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병원에 있는 친구 하은이를 만나러 갑니다.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전날, 이 두 여고생의 하루를 담고 있습니다. 세미는 절친인 하은이와 함께 수학여행에 가고자 합니다. 다리를 다쳐서 거동이 불편한 하은이는 고민했지만, 세미의 설득에 넘어갑니다. 하지만 수학여행 비를 마련하지 못한 하은이는 가지고 있던 캠코더를 팔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은이는 결정을 번복하고, 그 이유를 모르는 세미는 하은이에게 계속 화를 냅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둘은 결국 다투고 맙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 속 둘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영화에서 세미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은 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곤 합니다. 하은이와 다툰 후 세미는 씩씩거리며 철로 아래에 있는 터널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때 철로 위로 전철이 지나가며 큰 소리를 냅니다. 터널 안에서 울려 퍼지는 전철의 소리는 세미의 마음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하은이와 다툰 후 든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을요. 전철 소리는 세미가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감정과 마음을 일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미의 묻힌 감정을 소리로 드러내는 방식은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너와 나>가
재난을 보여주는 방식

<너와 나> 스틸컷.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하은이가 연락이 안 되자 세미는 사라진 하은이를 찾아 나섭니다. 이때 안산의 거리에 있는 학생들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너와 나>의 이야기의 층위는 확장됩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며 영화에 실제를 겹쳐서 보게 됩니다. 영화는 수학 여행을 하루 앞두고 들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어붙여서 보여줍니다.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는 아이들, 동네 마트에 진열된 과자를 고르는 아이들, 엄마가 건네주는 옷을 캐리어에 담는 여학생,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남학생 등의 장면을요. 일련의 장면들의 끝은 주인을 잃고 혼자 떠돌고 있는 개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아이들의 장면과 주인을 잃은 개의 장면을 이어 붙인 편집은 결국 상실감에 대해 말합니다. 가족을 잃은 후의 슬픔을요.

영화의 후반 즈음에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땅에 고여 있는 빗물 속에 떨어져 있는 공룡 장난감 모형의 이미지로요. 물 속에 놓인 공룡 모형의 이미지는 바닷속으로 잠겨버린 세월호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세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흐르지 않는 시간

<너와 나> 스틸컷. 이미지 출처: 필름영

<너와 나>는 하루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영화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모든 시계의 시침은 같은 시간을 가리킵니다. <너와 나>는 과거-현재-미래를 구분하는 선형적 시간관으로 흘러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영화의 흐르지 않는 시간은 상실감에 빠진 사람의 시간 감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이의 시간은 그 존재와 행복했던 순간에 멈춰있으니까요.

<너와 나>의 시간관은 자신의 꼬리를 물어서 원형을 만드는 뱀 우로보로스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세미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처음이자 모든 사건들의 끝이기도 합니다. 순환되는 시간의 한 순간이기도 하고요. 순환되는 시간은 곧 영원을 뜻합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구분되지 않은 시간은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만남을 가능하게 합니다.


영화 <너와 나> 상세 페이지


내년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됩니다. 세월호 참사는 일어난 직후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상실의 시간은 정쟁에 휘말리면서 충분히 애도되지도 못했습니다. 법적으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요. 얼마 전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승객들을 구하지 못한 해경 지휘부는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조현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두고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드는 건 아니에요. 다만 어떤 것들이 사라졌는가를 한 번쯤 생각하시면 좋겠다 싶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로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치유되지 못한 마음 한 구석을 다시금 바라보게 할수는 있습니다. <너와 나>는 해소되지 못한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떠나간 존재와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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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아영

낯선 사람, 낯선 공간을 마주하며
세상의 이미지를 보고 기억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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