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살 집을 구하는 것조차 너무 어려운데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살아가지?”
_신새늘, 『어쨌든 우리는 서울에 산다』
10억을 우습게 넘긴 서울 25개 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에 대해 입을 모아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며 울적해 하면서도, 내 일을 사랑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서울에 나만의 거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위하는 기묘한 시대. 울분과 자조를 내뱉으면서도 청년들은 끊임없이 서울로 들어오지만, 정작 대다수의 청년이 마주하는 현실은 좁은 방, 반지하, 옥탑방 등 낭만으로 포장된 공간의 변두리뿐입니다. 공정과 실력주의라는 신자유주의의 새 이름은 이러한 청년들의 자립과 독립에 그럴듯한 서사를 부여합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서울을 갈망하는 걸까요? 그리고 이곳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실제로 어떤 생각과 욕망을 품고 있을까요?
마침 지난 10월 23일 홍대입구역에 위치한 무신사테라스에서 개최된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3(SPT23)에서 서울과 청년을 다룬 3권의 독립출판 작업물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총 200여 개의 팀이 참가한 SPT23은 올해로 일곱 번째 열린 수도권의 대표적인 독립출판 축제로, 기성의 제도 밖에서 주류에 편입되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과 기획을 이어가는 젊은 창작자들이 대거 모이는 행사입니다. 필자는 이곳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창작자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서울을 이야기한 책들을 발견했고, 그 책들을 읽으며 이들이 서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욕망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중심에 오면 중심이 될 줄 알았다”
『서울중독』(2023)
“나를 삥 둘러싸던 산을 피해 왔지만, 콘크리트 빌딩이 여전히 삥 감싸고 있다.”
_용진, 『서울중독』
강원도에서 자랐지만 부모를 따라 자연스럽게 상경한 작가 용진은 고향에서 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치열한 내신경쟁으로 인해 새벽부터 밤까지 치열한 ‘서울로의 입시 경쟁’을 치렀다고 합니다. 적어도 대학은 서울로 가야 성공할 것만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 패배자’가 될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죠. 큰물에서 놀아야 큰 사람이 된다는 아주 오래된 격언은 연원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오늘날까지 생존해 한 지방 청년의 뇌리속에 각인되었나 봅니다. 학교 이름도, 학과도 따지지 않고 그저 소재지가 서울이기만 하면 됐고, 결국 총 9개의 원서 중 유일하게 합격한 학교는 다행히 서울에 위치한 대학이었습니다. 그렇게 작가 용진의 서울에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을 향한 알 수 없는 감정을 욕망을 넘어 중독이라고 표현한 작가 용진의 책 『서울중독』의 구성은 독특합니다. 꿈에 그리던 서울 입성 후, 상계동 원룸에서 시작해 수유동 반지하 원룸까지 ‘흘러간’ 저자 자신의 간략한 이주사를 앞 부분에 요약했고,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과 서울에서 겪었던 일들을 후반부에 에피소드별로 다뤘습니다. “주민등록증 뒤편에 새로 적힌 서울 주소가 내심 뿌듯했다.”(『서울중독』) 이와 동일한 상황까진 아니더라도, 그저 자신이 서울 시민이라는 것만으로 어깨에 가득 뽕이 올라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겠죠?
힘겹게 서울에 입성해 생존해가면서도 저자는 여전히 “서울을 항해 중”이라고 말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경복궁, 한강, 강남을 갈 수 있지만, 그 어떤 곳도 마음 편히 머물 수 없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일과 삶의 터전을 옮겨다녀야 하는 서울에서의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눅눅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지방으로, 변두리로, 외곽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중심에 오면 중심이 될 줄 알았지만,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살아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중심이란 어디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중심도 그의 중심과 같나요? 그럼 만약 중심에 도달하고 난 뒤에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ANTIEGG 독자들의 중심이 궁금해집니다.
“여기엔 수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어쨌든 우리는 서울에 산다』(2023)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곳엔 낭만이 가득하다.”
_신새늘, 『어쨌든 우리는 서울에 산다』
서울을 다루는 청년 담론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단어는 ‘혼자’입니다. 언제부터 서울은 ‘혼자’, ‘독립’, ‘1인’ 같은 단어들과 연결이 되었을까요. 대체 왜 서울은 ‘함께’가 아니라 ‘홀로’ 생활 혹은 생존하는 삶의 공간이 되었을까요. 서울로 대학을 못 갔다는 ‘희미한 자격지심’이 상경의 뿌리가 되었다는 신새늘의 『어쨌든 우리는 서울에 산다』는 가족의 반대를 뿌리치고 홀로 상경한 저자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서울에서의 삶을 인터뷰한 기록을 모은 책입니다. 1장에서는 저마다의 상경기를, 2장과 3장과 4장에서는 도시에서의 치열하고 혹독한 일과 인간관계와 생활을, 마지막 5장에서는 그럼에도 서울에서의 삶을 ‘낭만’이라고 기억할 수 있는 순간들을 담았죠.
그들에게 ‘서울’이라는 화두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고향을 떠나 상경한 뒤 처음 마주한 것은 생존의 문제였고, 간신히 일터와 삶터에 적응한 뒤 찾아온 고민은 연애와 결혼의 문제였으며, 대구에만 머물렀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다채로운 타인들을 만나며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비좁은 그릇 안에 담겨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 서울은 인생의 여러 숙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거대한 나무였습니다. 신새늘은 이 책에서 서울에 오지 않았다면 겪지 못했을 깨달음을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보수적인 환경의 폐단은 ‘행동의 제약’이 아니라 ‘생각의 제약’이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세상을 그만큼 좁게 본다. (…) ‘하면 안 되는 것’에 집중하느라 ‘하고 싶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어쨌든 우리는 서울에 산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고생스럽게 왜 서울을 고집하냐’고, ‘그렇게 힘들면 서울을 넘보지 말고 고향에 머물라’고 함부로 말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기회가 하나의 점에 몰려 있는 세상에서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태어난 곳에 남으라는 말은 조금 잔인합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어 보입니다. 저자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도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서울에 남아 있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하니까요. 치열한 현재를 살고 있는 ‘서울러’라면 이들의 이야기를 벗 삼아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사라진, 남겨진,
지켜온 것들을 쓸거예요”
『강서추억탐구소설클럽』(2023)
“시작하기 전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할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 장소는 모두 픽션이야. 네가 아는 이름이 나와도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고.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_송한별, 『강서추억탐구소설클럽』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두 손으로 붙잡을 방법은 없습니다. 욕망이 부질없는 이유는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불덩이를 맨손으로 잡으려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욕망은 그 불길이 완전히 연소하거나 혹은 주변의 모든 사물을 집어삼켜 재가 될 때 비로소 멈추죠. 그런 점에서 소설집 『강서추억탐구소설클럽』이 서울을 욕망하는 태도는 새롭고 신선합니다. 이 소설집은 한낮과 한밤 젊은이들에 의해 휩쓸리고 지나간 뒤 황폐해지는 점멸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이 아닌, 허가바위,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성주우물 은행나무, 허준테마거리 등등 실눈을 뜨지 않고 바라보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일상적 공간으로서의 서울을 다룹니다.
서울특별시 강서구에서 벌써 10년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고 강서구에서만 30년 넘게 산 송한별은 자신을 독립장르 소설 생산자라고 소개합니다. ‘강서구 곳곳에 이야기로 새겨진 사라지고 남겨지고 지켜진 것들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단 이 독특한 연작 소설은 말 그대로 ‘강서구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모인 6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경험과 추억을 토대로 서울을 복원한 SF소설집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의 강서를 알고 있겠지요. 제가, 그리고 우리가 아는 강서를 하나로 모으면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강서추억탐구소설클럽』)
반짝거리는 서울의 광채는 꿈 많은 우리의 눈을 더 빠르게 현혹시킵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무모하게 돌진하게 만듭니다. 욕망이 강렬할수록 그 허무도 크죠. 하지만 무언가를 추억하고 그 추억을 한땀한땀 재건하는 작업은 욕망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우리의 감각을 아주 오랫동안 평온한 상태에 머무르게 합니다. 낡은 단지와 오래된 공원이 시간의 풍화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 단단히 뿌리내린 동네의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묘하게 안정시키죠. 강서에서 나고 자랐거나, 그곳을 일상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작가 6명이 강서구라는 실존하는 지역과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간들을 배경으로 써내려간 6품의 SF 작품들을 읽다 보면 굳이 핫플레이스가 아니더라도, 나의 지난 시간이 머물렀던 오래된 공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재미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당신이 추억하고 싶은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서울을 꿈꾸는 사람들
“중독: (…)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_용진, 『서울중독』
작가 용진의 진단이 맞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는 ‘서울’이라는 집단 중독에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감당하기 힘든 주거비와 그럼에도 더 열악하고 낡은 삶의 조건을 ‘낭만’과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분명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3권의 책들에 담겨 있는 청년들의 삶과 고민에 대해 비루하거나 불쌍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올해 SPT에서 발견한 ‘서울을 바라보는 청년의 시선이 담긴 3권의 책’은 오늘날 우리 근처의 청년이 서울을 향해 (비록 분노에 차 있을지라도) 중독에 가까운 강렬한 욕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비록 “춥고 혹독할”지라도 자신들은 끝까지 이곳 서울에서 살아남을 것이며 여전히 서울살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서울은 아직은 살만한, 그리고 도전해볼 만한 성채로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5년 뒤, 10년 뒤 SPT나 여러 문화 씬에 등장할 서울을 다루는 작업물들에서도 여전히 서울은 희망과 애정이라는 서사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서울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서울을 꿈꾸는 그들이 살아갈 서울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