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께 단상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부산한 연초를 기념하던 봄과 더운 공기를 타박했던 여름을 지나 올해 마지막 글입니다. 이럴 때면 기억과 몸 사이 분명한 시차를 느낍니다. 통과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맨 처음 지면을 빌려 에세이의 첫 호를 송출했던 순간이 선명합니다. 글을 이룬 모든 문장이 어설퍼 보이고, 보면 볼수록 아쉬운 단어가 솟구쳤죠. 쉬지 않고 글의 의미를 검열했습니다. 글에 담은 메시지가 누구에게 가닿을지. 과연 내 글을 필요로 하는 독자가 있을지. 과정 속에서 전전긍긍했던 것은 물론, 발행을 마치고서도 한참을 머뭇거렸어요. 당시 저는 글을 향한 평가보다 독자의 부재를 우려했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구태여 발행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요. 글의 의미는 독자가 있을 때만 발현하는 것일까요? 독자가 없는 글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읽어 주는 이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계속 써야 하는 걸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만의 글을 지어본 이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본 적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최초의 활자를 타이핑할 시점에는 독자의 존재가 희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는 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하나의 결과물로 내어 보이는 창작자라면 쓰임을 의식할 수밖에 없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작업을 꿋꿋이 이어가기란 분명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요. 사실 대중의 관심이 갈급한 창작의 한계는 자명합니다. 향유자가 없다면 스러지겠지요. 알아주는 이가 없다며 낙담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히 동력을 상실하게 되고요. 그렇다면 향유자의 존재에 좌우되지 않는 창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창작의 중심이 내 안에 있을 때입니다. 발산하는 자체에 재미를 느끼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대도 송출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면 지속 가능할 테죠.

동시대 최고의 영화감독이라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놀란도 비슷했습니다. 지금은 지나치게 유명하지만, 영화 <메멘토>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인이었어요. 그의 첫 작품은 놀랍게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카메라로 만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는 20대에 여러 편의 단편을 선보이며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려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수많은 작업 이후 알려진 영화가 <메멘토>였지요. 이후 그의 작업에 감명받은 한 영화 제작자가 그를 워너 브라더스에 추천하면서, 본격적으로 놀란의 화려한 필모그래피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놀란의 첫 작품이라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알지 못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작품도 마찬가지죠. 놀란도 최초에는 번번이 실패하지만 지속하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재밌는 점은 그가 맨 처음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요소들이 대표작에도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스텔라>의 예고편이 공개됐을 무렵, 놀란의 초기작을 알고 있는 주변인은 말합니다. “이상하네요. 아직도 같은 영화를 만들고 계시네요?”

‘꿈을 좇으라’는 허황처럼, 지나치게 낭만적인 이야기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이건 아니건, 불변하는 것은 창작물의 운명을 조금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운이 좋다면 단순히 재밌어서 반복한 작업이 누군가에게 가닿을지 모를 일이죠. 그 순간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니 ‘지속’에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설령 독자가 없다고 해도 어떤가요. 인간은 언젠가 소멸하지만, 창작물은 영속합니다.

  •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다 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 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 간다.
    _김혜리 기자, 엑스(구 트위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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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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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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