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풍경화
배경이 한국이라면

한국근대미술사 속
빛과 색채의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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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영상 ‘WHAT IF [VINCENT VAN GOGH] VISITED KOREA’ 중
홍보 영상 ‘WHAT IF [VINCENT VAN GOGH] VISITED KOREA’ 중,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한 AI 광고 영상은 상상 속 그림을 보여줍니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뭉크(Edvard Munch), 라울 뒤피(Raoul Dufy) 등 유명 화가들이 한국에 온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지 AI를 통해서 구현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인상주의 화풍으로 향토 풍경을 펼쳐낸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상상 속 모습이 아닌,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의 풍경을 인상주의 화풍으로 담아낸 작가 두 명을 소개합니다.


근대 경성을 담은 김주경

김주경,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7,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김주경,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7,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김주경의 대표 작품인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특선을 수상한 그림입니다. 당시 경성 거리에는 서양식 옷차림을 한 경성인들과 서양식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김주경은 이렇게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경성의 일상적인 모습을 화면에 그려냈습니다. “북악산을 뒤로 한 풍경”에서는 가장 가운데 자리한 경성부청사와 그 일대의 근대식 건물들, 근대식 옷차림을 한 여성의 뒷모습을 통해 새로운 경성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근대 일본의 미술교육은 서구의 화풍을 수용하면서 일본의 풍경 사생을 통해 일본적 화풍을 정립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김주경은 1925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였는데, 해당 작품은 1927년 유학 중 그려진 작품으로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공개되었습니다. 거친 붓 터치와 강렬한 색감과 색면으로 구성된 건물, 북악산 풍경은 그가 서양의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을 반증합니다. 동시에 조선의 풍경을 소재로 선택해 풍토적인 작품을 그리고자 했죠. 근대 일본 미술계가 시도했던 것처럼 그 역시 조선의 화풍을 정립하고자 시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주경, “봄의 아침”, 1928,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김주경, “봄의 아침”, 1928,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김주경, “도시의 석모”, 1928,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김주경, “도시의 석모”, 1928,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김주경, “고도의 황혼”, 1930,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김주경, “고도의 황혼”, 1930,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김주경은 월북 화가로 그에 대한 정보와 남은 작품이 적지만,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을 통해 출품작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출품작 대부분은 도시 풍경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봄의 아침”, “도시의 석모”, “고도의 황혼”은 제목에서부터 각기 다른 시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침의 도시풍경을 담은 “봄의 아침”은 채광이 많이 드는 시가지의 모습이 표현되었고, 그 외 작품들은 저녁 시간대의 풍경화이기에 짙고 어둡게 표현된 거리와 해가 저무는 하늘을 거친 붓질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빛을 연구한 듯한 풍경화는 일본 외광파1)에 받은 영향을 보이며 동시에 그가 외국의 화풍을 우리나라 풍토에 적용하고자 시도한 결과입니다.

김주경의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작가가 있으셨나요? 해당 작품은 아니지만, 김주경은 당대에 폴 세잔(Paul Cezanne)을 연상케 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1929년 한 평론가가 김주경의 작품을 보고 “입체인상파의 ‘쎄산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 필치에까지도 그러하다”고 평한 것이죠. 김주경의 작품은 ‘세잔이 조선의 풍경을 그렸다면’하는 상상보다는 더욱 생생함을 전달합니다. 그가 그린 옛 서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함과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겨운 풍경을 남긴 오지호

오지호, “남향집”, 1939,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오지호, “남향집”, 1939,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화가 오지호 역시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풍을 익혔던 작가입니다. 1925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고 외광파를 접했던 오지호는 색채를 통해 형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이를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고 한국적 풍경을 그려갔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빛과 색채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였는지를 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죠.

그의 대표작 “남향집”은 1939년 살던 개성의 초가집을 배경으로 딸과 반려견이 등장하는 그림입니다. 앙상한 나무를 통해 겨울 풍경임을 추측할 수 있죠. 그런데도 관람자는 어째서인지 따뜻함, 정겨움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의 정중앙에 위치한 나무가 따스한 겨울 햇볕을 쬐고 있다는 것을 그림자로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나무 그림자는 어두운 검은색이 아니라 푸른빛의 오묘한 색깔이며 초가집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만큼 빛과 색채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였는데,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같은 자세입니다.

오지호, “무등산록이 보이는 구월 풍경”, 1949,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오지호, “무등산록이 보이는 구월 풍경”, 1949,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오지호, “추경”, 1953, 유화, 광주시립미술관
오지호, “추경”, 1953, 유화, 광주시립미술관

“무등산록이 보이는 구월 풍경”은 산 능선을 굵고 또렷하게 표현하고 산면을 색면으로 처리했습니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자 조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던 오지호에게 무등산은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된 소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추경” 역시 무등산 풍경화와 비슷한 형태를 띠며, 산을 단순화한 추상적인 화면이 돋보입니다. 전자가 따뜻한 햇볕을 받는 산을 맑은 색으로 채색한 화사한 그림이라면, 후자는 단풍이 물들어 한결 침착한 분위기가 연출된 그림입니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풍경을 담아낸 두 작품은 우리나라의 풍토와 기후를 담아내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김주경, "오지호", 1937, 『오지호·김주경 二人畵集』, 이미지 출처: 한성도서주식회사, 1938
김주경, “오지호”, 1937, 『오지호·김주경 二人畵集』, 이미지 출처: 한성도서주식회사, 1938

오지호는 김주경과 함께 국내 최초의 컬러 화집인 『오지호·김주경 이인화집(二人 集)』(1938)을 출간했습니다. 한국적 색채감각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오지호의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화집이었죠. 빛과 색채에 몰두하였던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이 떠오르기도 하고,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정겹고 따스한 느낌이 들죠.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 마네, 세잔 등.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이자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그림들을 그린 화가들이죠. 빛과 색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였던 화가들의 눈에 비춰진 풍경을 좋아하시나요?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적 풍경을 담은 김주경, 오지호의 작품들도 한번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나만의 한국근대미술 최애 작품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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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비

마음속을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건져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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