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세상은
편리하기만 할까

결제수단으로서의 현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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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의 국내 도입은 국내 소비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플라스틱 카드에 이어 모바일 결제까지. 한때는 가장 보편적인 결제 수단이었던 현금의 존재감은 갈수록 미미해지고 있다. 현금 없는 세상은 과연 편리하기만 할까? 결제 수단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강제로 통용되는 화폐,
현금

현금은 강제 통용력을 가지는 화폐로, 중앙은행이 발행한 은행권과 정부 발행의 보조 화폐를 말한다. 본 아티클에서는 흔히 ‘현금’ 하면 떠올리는 ‘지폐’와 ‘주화’를 대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물교환하던 시절의 물품화폐를 제외하면, 현금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결제 수단이라고 여겨진다. 현금은 상당히 직관적일 뿐 아니라 사용법도 단순하다. 누군가에게 지급 의사를 밝히고 이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결제 과정이 마무리된다. 손에서 손으로 이동하는 즉시 소유권도 이전되는 것이다. 화폐 단위에 대한 인지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기에 오랜 시간 사랑 받아왔다.

간편한 결제 방식으로 인해 현금은 때로 범죄의 타깃이 되거나 유용된다.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상자 속 과일로 둔갑하기도 하고, ‘검은돈’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된 데는 현금이 추적할 수 없는 결제 수단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실제로 국가나 중앙은행에서조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횟수로 현금 거래를 하는지, 얼마만큼의 금액을 거래하는지는 알 수 없다.

현금 달러
이미지 출처: Alexander Grey / Unsplash

또 한 가지 특징은 금액이 늘어나는 만큼 현금의 몸집도 점차 커진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고액권도 다수 발행되고 있지만, 고액권이라도 금액이 높아질수록 수량이 늘고 물리적 부피가 커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대량의 현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은행에 예치하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예치된 현금을 사용하기 위해선 매번 인출하고, 소지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드’의 등장은 혁신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

카드는 현금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결제 수단이자, 가장 세계화된 결제 수단이다. 각 나라의 현금을 떠올려 보자. 화폐의 단위도, 크기도, 들어가는 인물마저 제각각이다. 하지만 카드는 다르다. 세계 어딜 가나 카드는 가로 85.6mm, 세로 53.98mm, 두께 약 0.8mm의 얇은 플라스틱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의 결제 원리도 동일하다. 자성을 띤 마그네틱선 또는 마이크로칩을 이용해 데이터를 읽힌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체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 원하는 만큼 결제할 수 있다는 편리성은 모두가 카드에 열광하게 했다. 카드 산업은 전자 단말기의 발명과 함께 날개를 달고 무궁무진하게 발전한다. 카드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또 한 번의 추진력을 얻는다. 물리적인 수단을 직접 주고받지 않아도 원격으로 결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초창기에는 카드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결제가 이뤄졌었다면, 이제는 ‘앱카드’로 진화해 설정해 둔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몇 초 만에 결제가 완료된다.

앱카드
이미지 출처: CardMapr.nl / Unsplash

무섭게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카드 시장의 모습에 전 세계 많은 전문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를 예고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처럼 디지털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비현금 지급 비중이 몰라보게 증가했다. 현금 없는 매장, 현금 없는 버스처럼 현금 자체를 취급하지 않겠다는 곳도 생겨났다. 더욱이 ‘애플페이’를 포함한 간편결제 서비스의 등장은 스마트폰만으로도 오프라인 결제를 가능케 해 현금을 넘어 ‘지갑 없는 사회’를 현실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현금인가

현금에서 카드, 실물 카드에서 온라인 결제, 온라인에서 모바일 결제로 이어지는 흐름은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굉장히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이루어졌다.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지품은 더욱 간소해지고, 터치 몇 번으로 지폐나 동전을 세는 번거로움 없이 거래를 마칠 수 있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애플페이를 간절히 기다려온 것 또한 이러한 편리성을 누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카드와 간편결제만 취급하면 현금으로 인한 사고도 예방하고, 결제 시간 단축으로 동일 시간 대비 거래량 또한 늘릴 수 있다. 수수료 문제를 차치하면 사업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마냥 좋은 일이 아닐까.

하지만 대다수의 기술이 그렇듯 언제나 양면성은 존재한다. 탈현금 사회는 보편적인 결제 접근성의 측면에서 취약함을 드러낸다. 그도 그럴 것이, 카드 또는 간편결제를 활용하려면 부가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카드나 스마트폰을 인식할 수 있는 단말기가 있어야 하며, 원활하게 연결되는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어 있어야 하고, 은행 및 카드사의 애플리케이션이 문제없이 작동되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연결된 시스템에 단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온전한 거래가 이뤄질 수 없다는 뜻이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주요 포털의 결제 서비스 접속이 마비되었을 때 발생했던 사회적 혼란을 기억하는가? 이와 달리 아무런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 현금은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결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
이미지 출처: 한국은행

보편적인 결제 접근성의 또 다른 맥락으로, 현금은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는 결제 수단이다. 기술의 발전은 항상 누군가의 소외를 수반한다. 탈현금화는 다양한 결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소외 계층의 소비활동에 제약을 만든다. 또한 경제 활동이 위축되어 있는 빈곤 지역에서는 인프라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 무엇보다 현금 접근성이 중요하다. 결제 수단 선택의 자유는 소비의 자유와 직결된다. 개개인이 가진 경제력은 다를 수 있으나 이를 사용하는 데에는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탈현금 사회에 대한 우려에 따라, 세계 각국의 국책기관은 현금 사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비현금 지급수단이 통용되고 있는 몇몇 국가에서는 현금 선택사용권을 법제화하여 결제 수단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스웨덴은 은행의 현금 취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효했고, 영국에서는 현금 입출금 기기가 일정한 수로 유지되도록 하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또한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 캠페인을 펼치며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요소들은 대부분 ‘결제’라는 방식을 통해 갖춰진다. 그렇기에 결제 수단은 해당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합의되어야만 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을 이들을 위해 결제 수단에도 ‘배리어프리(barrier free)’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현금이 이 세상에서 강제로 통용되는 화폐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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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유림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찾아 모으는 사람.
고이고 싶지 않아 잔물결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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