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께 단상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날씨에 따라 입고 벗는 옷들. 그 사이를 헤집다 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수납함에 포개어진 옷가지에는 지난 계절의 기억이 섬유 사이사이 박혀 있지요. 그 순간 옷은 기억의 껍질이 됩니다. 옷장 정리는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기억의 무덤을 헤집는 일이고요. 숱한 겨울을 거듭 보내온 니트에 머리를 끼워 넣으면 오래된 향 같은 잔해가 부유합니다. 파삭 말라버린 나무 위 그을음을 닮은 향입니다. 낡은 냄새 분자는 어떤 그리움을 가져다줍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를 증명한다고 했던가요. 그리움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말간 얼굴, 목소리, 풍경이 빗발칩니다. 어떤 순간을 살아낸 인간의 표피 같은 옷. 지나온 시간만큼 켜켜이 누적되는 그리움을 감각합니다. 아마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테죠. 영화 속 인물의 시점이 이동하듯, 코끝에 닿은 익숙한 향에 오래된 기억이 날아드는 경험을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후각은 기억을 이루는 중추입니다. 인간의 후각 정보가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나지 않다고 한들, 변화를 감지하고 비슷한 공통 분모를 뾰족이 찾아내는 데에 탁월합니다. 가까운 예로 ‘계절의 냄새’가 있지요. 겨울 아침, 공기 중의 물 입자와 서늘한 공기가 만드는 냄새처럼요. 무수히 많은 겨울을 통과했다고 해도, 다시금 설렘을 고조시키는 계절의 향입니다. 살갗을 감싸는 추위보다 반가움이 앞서는 이유입니다. 후각은 때때로 순간의 감정마저 창조합니다. 낡은 나무로 이뤄진 바닥, 내딛는 걸음마다 번지는 삐걱거리는 소리와 부유하는 먼지, 오래전 사용했던 시트러스 향수 냄새, 누추한 날들을 보듬었던 캔들의 존재감. 당신의 기억 속에도 분명히 떠오르는 냄새의 형태와 흐릿하게 느껴지는 잔상이 있을 거예요. 향으로 촉발된 기억은 넉넉히 다정했던 순간을 그리워하게 만들고요. 망각이 쓸어간 자리엔 추억이라는 축복이 덩그러니 남습니다.

필자의 경우, 행복한 기억 모두 향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노란빛이 번져갈 무렵, 흙먼지와 비릿한 물 냄새를 묻힌 채 놀이공원을 활보하던 어린 날. 열기가 식은 해변에 누워 눅눅한 바다 냄새를 머리에 끼얹던 순간. 한 차례 비가 쏟아진 숲길에서 가만히 호흡하던 언젠가. 현재가 권태롭게 느껴지는 순간마저도 지금의 냄새는 기억에 아로새겨져 또 다른 그리움을 만들겠지요. 우리가 기억을 쥐고 살아가는 존재라면, 언젠가 추억으로만 살아지는 날이 온다면, 내게 주어진 것들을 악착같이 감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지금을 장식하는 향은 무엇인가요. 그 향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실이란 몇 개의 선택지 가운데, 내가 스스로 골라잡아야 하는 것’이라 썼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통과하는 존재입니다. 내일을 설계하거나 운명을 조작하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지금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향은 부수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온전한 현재입니다.

ANTIEGG에서
예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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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진

비틀리고 왜곡된 것들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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