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기에 아름다운 생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세계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흑백과 여백을 통한 정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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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역사가 어김없이 반복됩니다. 전쟁과 질병은 여전히 일어나며, 우리는 수많은 생명을 잃어왔는데요. 그 속에서 인간은 ‘생존’이 아닌, ‘존재’ 해 왔습니다. 참혹하고 끔찍한 역사를 행하고 당하며,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고 아름답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남아 지금의 우리가 되었습니다. 이토록 불안하기에 아름다운 우리의 생(生)을 화면에 그린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을 소개합니다.


불안한 세대

이미지 출처: IMDB

2013년 제85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한 낯선 폴란드계 감독이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작 <이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폴란드의 역사와 상처를 그려 전 세계 영화인의 마음을 동하게 했는데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이다>를 기점으로 <콜드워>를 통해 폴란드의 아픈 역사를 그리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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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리코브스키 감독의 부모는 냉전 시대로 인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그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태어난 후에도 이혼과 재혼 끝에 함께 생을 마감했는데요. 그가 ‘아름다운 재앙’이라 부른 부모의 사랑은 훗날 그의 영화 <콜드 워>의 모티브가 됩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그는 어릴 적부터 반유대적 사회를 경험했고, 홀로코스트로 죽게 된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역사의 잔해 속에서 나고 자란 포리코브스키. 전쟁 직후 불안을 겪은 세대이자 산물인 포리코브스키 감독 영화의 핵심은 ‘불안’입니다.


<이다>와 <콜드워>

이미지 출처: IMDB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영화 <이다>는 1960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 수녀 ‘안나’가 자신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입니다. 일평생 고아이자 수녀였던 ‘안나’는 이모를 통해 자신이 유대인이며, 그녀의 부모가 ‘예드바브네 학살’로 폴란드인에게 살해당한 것을 알게 되는데요. 그녀는 수녀 ‘안나’와 유대인 ‘이다’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됩니다.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영화 <안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다>와 반대로 <콜드 워> 는 냉전 시대의 ‘사랑 영화’ 입니다. <콜드 워>는 냉전 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15년에 걸쳐 서로를 사랑한 남녀의 이야기인데요. 음악을 가르치는 ‘빅토르’와 노래하는 ‘줄라’의 아름다운 노래가 영화를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콜드워>의 음악은 어느새 선전도구가 되고, 그 시대의 엄혹함은 연인을 갈라놓게 되죠. 이처럼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자신이 겪은 유대인의 이야기, 부모의 사랑, 폴란드의 역사를 영화에 담았습니다.


흑과 백의 시대

이미지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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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흑백 연출입니다. 그는 고전적인 감성을 추구했습니다. 이는 관객들이 그 시대를 더 가까이 경험하게 하기 위함인데요. 그렇기에 그의 영화는 현대에 만들어졌으나 마치 고전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이와 같은 흑백 연출로 불안했던 그 시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냉전 시대에 두 사상의 분리를 ‘흑과 백’의 시대로 바라봤습니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인의 삶을 억눌렀던 그때의 풍경은 적막한 흑백 영상과 잘 어울리는데요. 또 생기 없이 차갑고 무거웠던 유대인들의 삶도 느껴집니다. 본래 영화에서 색은 배경과 인물을 분리시킵니다. 하지만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영화는 색이 없기에, 인물과 배경은 분리되지 않고 흑백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로써 주인공들은 차가운 폴란드 배경과 하나가 되죠. <이다>에서 유대인 학살로 부모를 잃은 ‘안나’의 공허한 마음은 백색의 여백으로 전달되며, 냉전 시대의 칠흑 같은 어둠은 흑백으로 내려앉아 <콜드 워>의 사랑을 가로막습니다.


여백의 비(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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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영화에 대해 “세상에 간신히 매달린 사람들” 이라고 말했습니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보편적인 영화의 화면비(2.35:1)와 달리, 정사각형에 가까운 4:3 화면비를 사용했는데요. 그는 이 좁은 화면 안에 인물을 가장자리 혹은 화면의 끝에 두었습니다.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가장 안정적인 배치 구조를 벗어나, 시각적으로 매우 불안한 화면을 연출했습니다. <콜드 워>에서 ‘줄라’가 가장 외로워하는 장면에 그녀는 화면 맨 아래에 배치됩니다. 관객들은 화면 끝에 간신히 놓인 그녀를 보며 공허함과 불안감을 느끼는데요. 또 ‘줄라’ 위로 가득한 공백은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은 시대의 무게처럼 느껴집니다. <이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나’를 둘러싼 공백은 마치 그녀의 비어 있었던 정체성과 본질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또 역사와 비극에 의해 내몰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좋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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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여백과 흑백은 비(悲)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의 영화는 결국 ‘아름다운’ 삶을 이어나가는데요. 언제나 화면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던 ‘이다’.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한 마지막 장면. 그녀는 처음으로 화면 중앙에 놓여 강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속에서 성당으로 걸어갑니다. 이처럼 영화 <이다>는 관객에게 강한 긍지와 결심, 또 이전까지 없었던 생명감을 전하며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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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워>의 엔딩 또한 두 남녀는 결국 함께 할 수 없기에 함께 죽음을 선택합니다. 벤치에 앉아 있던 ‘줄라’는 더 좋은 풍경을 보러 가자며 ‘빅토르’를 데리고 떠나는데요. 보통 카메라는 그들을 따라가 그 좋은 풍경을 보여줬겠지만, <콜드 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화로 사랑을 엿보았을 뿐, 영화는 더 나은 풍경과 실제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가 경험하고 살아온, 우리 실제의 삶이 영화보다 더 멋지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줄라와 빅토르가 보러 간 좋은 풍경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 각자의 삶에서 가장 좋았던 풍경이 떠오를 것입니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이 선택한 결말의 이미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어둠의 정서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역사의 흐름 안에서 필연적으로 불안하고 휘청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세상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인데요. 하지만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영화는 끝내 아름다운 삶을 찾아갑니다. 그렇다면 <콜드 워>의 마지막 장면처럼, 영화보다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아름다운 걸까요? 어찌 보면 세상은 완전한 절망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구원하고, 또 나로써 ‘생존’이 아닌 ‘존재’해 나가며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과 내일이 온통 흑백으로 느껴지는 독자분들께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영화를 추천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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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빈

사랑과 경탄을 담아, 성실한 사유를 이끄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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