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는 많은데
왜 항상 볼 게 없을까

OTT 플랫폼의 과열된 경쟁을 통해 본
오늘날의 미디어 산업
Edited by

한 해가 끝나가는 겨울, 가족들과 TV 앞에 모여 연말 특선영화를 보던 때가 오래된 낭만 같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리거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보기 위해 시간 맞추어 집에 들어갔던 기억을 떠올리면 오늘날의 우리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편하게 영화, 드라마, 예능 등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스마트폰, 패드, 노트북 등의 개인 기기로 언제든지 원하는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데는 기술의 발전과 다변화된 플랫폼의 영향이 크다. 그중 많은 사람이 즐기는 OTT의 경우 2023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이용률이 전년(72%) 대비 5% 증가한 77%로 “4명 중 3명은 OTT를 시청”한다고 하니 콘텐츠 소비 방식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추세이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시작된 ‘OTT 전쟁’은 ‘디즈니+’, ‘티빙’, ‘쿠팡플레이’ 등 국내외 OTT 플랫폼이 뒤따르며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구독자를 선점하고 유지하기 위한 미디어 산업의 전쟁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 우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되었다. 바야흐로 콘텐츠 폭식의 시대. 본 아티클은 거대 자본이 들어간 콘텐츠를 내세워 커져만 가는 OTT 플랫폼 성장 이면을 진단하고 이러한 가속화된 양상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같은 것’들의 창궐

이미지 출처: unsplash

OTT 시장은 지상파 방송국과 극장가에서 시도하지 못하는 스토리나 장르를 시도하며, 새로운 콘텐츠의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법 규제를 받는 TV 드라마와 방송과 달리 OTT 콘텐츠는 정보통신망법상 유해 사이트와 불법 정보 유통만 규제받기 때문에 창작과 표현에 자유로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을 묘사하는 데 거침없다. 이러한 유리한 위치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OTT 플랫폼은 시리즈를 한꺼번에 공개하여 몰입감을 높이는 전략(최근 이용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파트를 나누어 공개하기도 하지만)을 통해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한 번에 시리즈를 공개하는 플랫폼의 특성상 시청자들은 ‘몰아보기’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또 다른 콘텐츠를 ‘이어보기’하게 된다. OTT 플랫폼을 포함하여 유튜브, 틱톡과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마찬가지로 장시간 사로잡힌 듯 영상을 연이어 보게 되는데, 이러한 시청 패턴을 폭식이나 폭음을 뜻하는 빈지(binge)와 지켜본다는 뜻의 워치(watch)가 결합한 ‘빈지 워치(Binge Watch)’라고 부르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제독 철학자 한병철(b.1959)은 그의 저서 『타자의 추방』(2017)에서 빈지 워칭을 혼수상태에 이르도록 뚫어지게 보기의 형태로 분석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콘텐츠 볼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소비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같은 것을 섭취하고 소비 가축처럼 살이 찐다.”고 말한다.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콘텐츠 홍수의 상황 속 우리는 ‘새로운 같은 것’의 의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말 연초를 노리고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와 <스위트 홈 2>. 크리처물인 두 작품은 장르의 유사성을 따르는 동시에 멀티 캐스팅과 수백 억의 제작비가 들어가며 크게 주목 받았으나 빈약한 서사 구조 혹평을 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위트 홈 1>, <무빙> 등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으며, OTT 플랫폼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동시에 지속적으로 K-콘텐츠의 위기 역시 제기되고 있다. 자본의 논리로 장르의 외형을 빌려와 새로운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제작되며, 양적 증가가 질적 향상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제작 기간을 줄이고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 드라마화, 영화화되는 현상은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콘텐츠 시장에서 도전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시장의 상황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새로운 같은 것의 창궐은 과열된 콘텐츠 시장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비단 OTT 플랫폼만의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 소비주기가 짧아지며 유사한 스토리 라인, 주제, 장르를 버무린 작품들이 연이어 선보여지고 있다. 이정혁 기자가 최근 “타임슬립, N차 인생 빼면 드라마가 안되나?”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복합장르를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해 다른 듯 같은 새롭지만 어디서 본 듯한 작품이 연이어 방영되고 있다. 올해 선보인 드라마 중 ENA <낮에 뜨는 달>, MBC <열녀박씨 결혼계약뎐>, TVN <구미호뎐 1938>, <이번 생도 잘 부탁해>, SBS <마이데몬> 등 모두 시간 여행, 환생, 판타지, N차 인생 등이 섞인 복합장르 양식을 보인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 중 대부분은 웹툰 원작이 있다. 앞서 언급한 스위트 홈을 포함하여 왼쪽부터 넷플릭스의 <이두나!>(2023), 디즈니+의 <비질란테>(2023), 티빙의 <이재, 곧 죽습니다>(2023)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지 출처: (왼쪽부터)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마크 피셔(Mark Fisher, b.1967)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 리얼리즘』(2018)에서 “새로운 것이 없다면 하나의 문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아무런 불안 없이 과거의 형식을 재생산하는” 현상을 경계한다. 우리는 ‘반복과 재조합’ 만이 남지 않도록 현재 과열된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같은 것’이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는 현재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쏟아지는 콘텐츠들에 매몰되어 한 작품의 주제 의식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사회와 문화와 연결하여 확장된 사유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풍요 속의 빈곤’은
계산된 궁핍함

이미지 출처: unsplash

우리는 종종 구독하고 있는 OTT 애플리케이션을 접속한 후 계속해서 화면을 스크롤 하며, 이렇게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이 있는데 보고 싶은 콘텐츠가 없다고 한탄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에서 선택하기 어렵거나 이미 많은 영상을 시청했기에 관심을 끄는 콘텐츠가 없어 ‘풍요 속 빈곤’을 느끼곤 한다. 이는 우리가 케이블 채널이 생기기 전 몇 개의 지상파 방송 채널을 보거나 작은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찾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전 세계의 콘텐츠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는 왜 궁핍함을 느끼는 것일까.

빈곤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결핍감에서 비롯된다. 국내외 OTT 플랫폼에서 새롭게 제작하는 시리즈들을 포함해 과거의 작품까지 경쟁하듯 제공하는 현재의 OTT에서 우리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현상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콘텐츠 폭식의 시대에 왜 우리는 갈증과 허기를 느끼는 것일까? 국내외 OTT 플랫폼에서 연이어 공개하는 콘텐츠들로 인해 콘텐츠 소비주기가 짧아지며, 우리는 한 콘텐츠를 오래 음미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빠르게 많은 양의 식사를 하게 되면 소화가 어렵듯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콘텐츠를 시청한다면 충분한 감상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깊게 음미하지 못하는 소비 습관은 콘텐츠에 대한 인지적 불만족을 느끼게 하여 다른 것, 더 많은 것을 원하게 한다. 풍요 속 느낀 상대적 빈곤은 더 큰 풍요를 갈망하게 되듯이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최근 OTT 플랫폼이 가지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며 OTT 시장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분석도 제기되고 있지만, OTT가 우리의 일상에 자리하여 보편적 시청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과열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국내외 OTT 플랫폼 간의 전쟁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장르와 종류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며 경험했던 정보의 홍수에 이어 콘텐츠의 홍수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이렇듯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에 비평적 사유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소비 욕구를 유발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계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무언가를 소비하는 습관과 태도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류희연

류희연

느리지만 가치 있는 발걸음들에
발맞추어 걷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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