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신발 속 느껴지는 이질감에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거슬리긴 하지만 길에 우뚝 서기가 번거로워 무시하고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잊혀 버리죠. 우리가 일상 속 마주했던 누군가의 어려움도 마음속 불편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치듯 지나쳐 버리면 당연하지 않은 것도 당연해져 버리고 말죠. 저는 이럴 때면 탁유림 에디터의 글을 찾아 읽곤 합니다. 그녀의 글은 무심코 느꼈던 작은 불편함들을 수면 위로 꺼내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그녀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본업이 아닌 에디터로서 글을 쓸 수 있었던 용기까지. 다정한 언어로 마음에 스위치를 켜주는 그녀의 글이 시작된 순간을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어 박혜림
인터뷰이 탁유림
사진 형운
운명처럼 마주한
‘함께’라는 힘
유림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고이고 싶지 않아 잔물결을 만드는 에디터 탁유림입니다.
현재 본업으로는 소셜벤처 기업에서 브랜드 굿즈를 세일즈하고 있어요. 고객사와의 밀도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퀄리티 있는 브랜드 굿즈를 제작해 드리는 게 제 소명이죠. 선택의 순간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점을 찍어왔는데, ‘콘텐츠’, ‘임팩트’, ‘고객’ 이렇게 3가지 키워드로 묶이더라고요. ANTIEGG 에디터 활동을 비롯해 본업으로 하는 일도 그 궤도 안에 있어요.
유림님에게 ANTIEGG는 어떤 집단인가요?
누군가에게 ANTIEGG를 소개할 때, 제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말하는데요. 본업으로 채우기 어려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면서, 그 어디에서보다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벌써 ANTIEGG에 합류한 지 만 2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빠르고 다면적으로 성장하는 ANTIEGG 곁에서 저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늘 고맙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은 조직이죠.
유림 님은 글쓰기를 ANTIEGG에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그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ANTIEGG의 애독자 중 한 명이었는데요. 어느 날 ‘ANTIEGG WEEKENDS’ 프로그램 초청 메일을 받게 된 거예요.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한 편,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프로그램 종료 이후 에디터 합류 제안을 받게 됐죠.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대에게 고백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습니다. 용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죠.
ANTIEGG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며 도움받은 것들이 무엇일까요? 팀에 의해 글쓰기의 어려움을 해결한 적이 있나요?
ANTIEGG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하죠. 혼자 글을 발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속감과 안정감을 줍니다. 특히 아티클 마감 1주 전에, 간단히 기획 내용을 공유하고 동료 에디터분들이 코멘트를 건네는 기획 회의가 있는데요. 저는 아티클을 작성하는 데 꽤 오래 걸리는 편이라 하루를 온종일 다 사용하게 될 때가 많았거든요. 기획 회의로 주제를 먼저 고민해 볼 수 있게 되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많이 조율되는 것 같아요. 동료 에디터들의 새로운 시선이 더해져서 기획 내용을 훨씬 다각적으로 디벨롭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동료가 주는 안정감 외에도 글쓰기 환경에서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그러한 환경을 찾는 방법도 궁금해요.
제 글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를 돌이켜 보면, 조급함 속에서 글을 써 내려갔던 경우가 많더라고요. 절대적인 시간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좋은 글이 완성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감 노동자’라는 말처럼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기한 내에 무언가 대단한 걸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한데, 그 욕심을 내려놓는 것도 필요하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환경을 바꾸어 보려고 시도해요. 늘 쓰던 자리를 벗어나서, 글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낯선 곳으로 저를 데려다 놓죠.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생각이 환기되어 너무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일상 속 크고 작은
어려움에 주목하다
처음 글을 쓰고자 결심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생각이 많은 편인데, 머릿속에 부유하고 있던 생각들을 글로써 잘 정리해서 내놓을 때 많은 것들이 해소돼요. 어릴 때부터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게 편했고, 또래들 사이에선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죠.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부터는 줄곧 사회부 기자를 꿈꾸기도 했어요. 현재 본업으로는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ANTIEGG를 통해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해요. 에디터 합류 제안 메일에 이렇게 답장을 보냈었더라고요. “ANTIEGG 덕분에 잊고 있던 꿈을 이루게 될 것 같아, 어쩐지 조금 벅차기도 합니다.” 라고요. 글쓰기가 제게는 꼭 필요하고,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이에요.
유림 님이 쓰는 글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누군가의 마음에 모래알처럼 밟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요. 아주 사소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그런 이야기요. 제가 SNS 계정 아이디로 ‘Ripple Effect’라는 어구를 활용하고 있는데, 잔물결 효과라는 뜻의 경제학 용어예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큰 파동과 함께 점차 호수 가장자리에까지 파동이 이어지잖아요. 제가 세상에 던지는 작은 돌멩이가, 요란하진 않지만 넓게 퍼져 나가기를 바라면서요.
이 세상에서 글쓰기로 전하고자 하는 주제들은 무엇이 있나요?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주목해요. 동물권과 환경문제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편이지만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 불필요하게 희생되거나 낭비되는 것들,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누군가도 함께 봐주기를 바라죠. 사람들이 조금 더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건드려서 스위치를 켜줄 수 있으면 해요. 그레이 아티클의 대부분은 그런 마음에서 써 내려갔던 것들이에요.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무해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자연과 음악, 사람들이 꾸려가는 저마다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큐레이션 아티클을 기획할 때는 주로 제가 애정하는 것들에서 소재를 찾는 편이에요.
평소 소재 선정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로 제 주변에서 영감을 얻어요. 제가 잘 알지 못하고 관심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확신 어린 글이 나오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평소에 일상 곳곳에서 포착되는 문제의식을 잘 모아두었다가 소재로 꺼내곤 합니다. 또, 시의성 있는 소재를 선정하려고 해요. 팝업스토어나 동물권을 주제로 했던 아티클처럼 현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면 좋을 것들에 대해 쓰고 있어요.
유림 님이 주목하는 그것들이 유림 님의 삶과 특별한 인연이 있던 게 있을까요?
동물에 관심이라곤 없었던 제가 동물을 사랑하게 된 건 길고양이 때문이었어요. 평소에는 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들의 비참한 삶을 지켜보면서 점차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직접 구조나 임시 보호도 하면서 그들의 삶에 더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죠. 동물과 한 번 유대를 쌓으면 더 이상 그들을 대상화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동물도 결코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죠.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생명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유림 님의 아티클을 보면 감각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데요. 이미지를 고르는 팁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unsplash라는 이미지 사이트에 되게 감각적인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어요. 우선 한글로 소재와 연관된 단어를 검색해요. 그중 직접적인 이미지보다는 간접적으로 표현된 이미지를 찾는 편인데요. 예를 들어 웨이팅이라고 해서 실제 웨이팅하고 있는 사진보다는 길게 줄이 늘어난 이미지를 통해 소재를 간접적으로 연상할 수 있도록 해요.
누군가의 일기장 속
한 줄이 될 때까지
유림 님이 글이라면 어떤 글이 되고 싶고 어떤 독자를 만나고 싶은가요?
누군가의 일기장에 적히는 글이요. 마음이 힘들 때마다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문장이 되고 싶어요. 작년에 ‘meet me’라는 플랫폼을 통해 음악과 일상을 나누는 리추얼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촘촘한 성취로 엮인 울타리는 좌절이 끼어들 틈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적어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얼마 후에 멤버분이 자기 일기장에 적어두셨다며 사진을 찍어 올려주신 거예요. 내가 전한 이야기가, 내가 만든 문장이 누군가의 일기장에 적힌다는 게 정말 벅차고 남다른 경험이더라고요. 그렇기 위해서는 내 글을 찬찬히 들여다봐 주고 마음 깊이 느껴줄 수 있는 독자가 필요하겠지요.
그 글의 첫 문장은 무엇이 되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찾아 모으는 사람”
에디터 소개 글의 첫 번째 문장이기도 한데요. 제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기도 해요. 사랑과 평화가 제겐 가장 중요한 가치거든요. 아무래도 좋을 수 있는 걸 떠올려 보면, 자연이나 동물처럼 사랑과 평화를 수반하는 것들이죠. 저는 그런 대상을 넓혀가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 과정 자체가 인생인 것 같기도 하고요.
에디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애를 써서 멈추지 않고 글을 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거창한 꿈은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고, 발행하고, 아카이빙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여건이 언제나 함께하기를 바랄 뿐이죠. 다만 에디터 페르소나를 지금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기획력과 작문 능력이 뛰어난 에디터, 작가가 워낙 많다 보니 부지런히 읽고 쓰면서 역량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해요. ANTIEGG를 통해 꾸준히 지켜봐 주시길 바라요.
유림 님의 길을 따라 걸어올 미래 동료분들을 위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기 어려운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하셨다니 무척 기쁩니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닐 만큼 인고의 시간이 따라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선 여러분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영감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탁유림 에디터와 이야기를 나눈 후 세상을 바꾸는 것은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생각했습니다. 사소한 관심 그리고 당연한 것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요. 여러분도 이 글을 읽고 탁유림 에디터의 글을 다시 보았을 때 그 따뜻한 시선을 더욱 또렷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