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새해 첫 글입니다. 새 노트 첫 장에 새겨 넣은 글씨처럼, 쓰는 이에게는 모든 획이 유별납니다. 곳곳에 순도 높은 마음이 범람하는 새해. 부러 순백의 희망을 말하고 싶지만, 어쩐지 적막한 어깨가 눈에 밟힙니다. 1월에는 설렘과 기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침과 피로, 때론 약간의 비애도 있습니다. 소란했던 연말을 통과한 시점에는 홀로 남겨진 이가 으레 그렇듯, 허전함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당신의 새해는 어떤 모습인가요. 밝고 당차게 내일 계획하고 있나요. 아니면 또 다른 출발선 앞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나요. 혼자라는 사실이 새삼 생경하게 다가오는 시기.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글을 선택한 당신을 상상합니다. 타인의 무심함에 번번이 실망하면서도, 내심 타인에게 곁을 주고 싶지 않았는지요. 믿고 싶어서, 믿어야 할 명분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대와 실망의 교차. 그럼에도 이 글을 찾은 이유는 언제나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 아닌가요.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보내며 감각하는 것 중 하나는 많은 이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납작하게 말하자면 삶을 관통하는 고민은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크기와 깊이로 고뇌할 뿐이죠. 그중 삶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관계’를 생각해 볼까요. 관계는 호불호의 영역이 아닙니다. 좋든 싫든 문명화된 도시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사회를 벗어나긴 어렵습니다. 알다시피 다른 인간과 어우러져 사는 일은 순탄치 않습니다. 우리가 제멋대로 모난 탓에, 필연적으로 원치 않는 상흔을 주고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타인을 불신하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무심해집니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차단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견고한 벽을 쌓아 올리기도 하지요. 이 문장에 기시감을 느끼는 만큼, 많은 이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바라봅니다. 외로움은 감추기 쉬운 마음입니다.
저는 오랜 시간 타인을 불신했습니다. 지쳐버린 타인이 휘두른 말과 행동에, 무심한 눈빛과 섣부른 판단에, 앞질러 나간 마음과 어긋난 기대에 손가락을 접어 내리듯 관계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때때로 좌절되는걸요. 불신에서 건져 올려진 계기는 희미한 기대였습니다. 당신이 아직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 작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선 타인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습니다. 타인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 우리라는 안락함, 크게만 느껴지는 나에게서 벗어나는 지름길을요.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태어나 홀로 죽는 게 인간이라지만, 사는 동안 ‘우리’를 믿을 수 있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마른 등을 연민하고, 끌어안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할 뿐, 비슷한 마음이라면요.
마음을 내어주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정한 사람은 타인이라는 날씨 같은 존재에 우산을 챙겨 다가가는 용감한 이들이고요. 당신이 뻗어낸 용기는 훗날 누군가의 세계를 바꿀 것입니다. 돌고 돌아 미래의 당신에게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죠. 우리가 서로의 나약함을 잊지 않길, 목적 없는 호감을 저버리지 않길, 서로에게 넉넉히 다정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