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손을 얼얼하게 만들고,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이 계절. 몸과 마음을 모두 얼어붙게 만드는 날씨 속에서도 소박한 따뜻함을 안겨주는 곳이 있어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아프리카의 햇살이 가득한 땅에서 온, 겨우 내에도 끊임없이 온기를 전하는 식물들이 모여 있는 ‘고어 플랜트 서울’. 이곳을 운영하는 안봉환 대표는 추운 이 계절에도 작은 식물 동화 속의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해 작은 위로와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함께한 ANTIEGG 기획 인터뷰 시리즈 속에서 그가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보시죠.
인터뷰어 김태현
인터뷰이 고어 플랜트 서울 대표 안봉환
사진 남솔지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삼각지에서 ‘고어 플랜트 서울’이라는 희귀 아프리카 식물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안봉환이라고 합니다.
‘고어 플랜트 서울’은 꽃을 다루는 보통의 매장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요.
고어 플랜트 서울은 ‘코덱스’를 취급하는 플랜트 스토어입니다. 코덱스는 몸통과 줄기, 뿌리가 한 덩어리로 팽창된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키보다는 몸이 뚱뚱하게 자라는 식물이에요. 아프리카, 남미, 중동 등과 같이 식물들이 자라기 힘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런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죠. 물이 부족하면 몸이 수축하고, 물을 흡수하면 다시 통통하게 몸이 커지는 게 특징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오밥 나무도 대표적인 코덱스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는 마다가스카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입해온 식물과 국내 농장에서 혹은 제가 직접 씨앗으로 재배한 식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많은 식물들 중에 코덱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예전부터 저는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것을 좋아하곤 했어요. 원래 패션을 전공해서 처음에는 패션 관련 일을 했었는데요. 이때에도 남들이 모르는 브랜드를 찾아 입고, 그 브랜드가 다시 유행이 되면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보곤 했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남들이 잘 듣지 않는 장르나 곡을 찾아 듣곤 했죠. 식물에 대한 관심도 있었기 때문에 흔하지 않던 것을 찾던 중 당시 우리나라에선 매우 생소한 코덱스라는 것을 알게 됐고, 기존의 식물 가게들과는 다른 느낌의 가게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어 플랜트 서울’을 열게 되었습니다.
코덱스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공간을 크게 차지 않는 점을 꼽을 수 있죠. 그래서 집 어디에든 작은 공간만 있다면 키울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고, 잘 죽지도 않아 처음 키우시는 분들도 쉽게 접근하실 수 있어요. 빨리 자라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도 있는데요. 일반 식물들보다 먼저 봄에 반응하며 1월 말에서 2월 초에 꽃이 피고, 물이 부족하면 바디가 수축되는 일련의 현상들이 재밌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점들 때문에 선물용으로도 구매를 많이 해주시는데요. 너무 크지 않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고, 공간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면서 희소성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죠.
‘고어’라는 단어가 식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다소 이질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코덱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될 때 뿌리가 큰 덩어리 식물의 모습 때문에 ‘덩어리 괴(塊)’, ‘뿌리 근(根)’을 써 ‘괴근 식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생김새 때문에 가게에 처음 방문하거나 행사장에서 처음 코덱스를 보시는 분들 중 종종 ‘징그럽다’, ‘이것도 식물이야?’라고 반응하시더군요. 그래서 ‘덩어리 괴(塊)’보다는 ‘괴이할 괴(怪)’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고심 끝에 ‘gor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매장에 오시는 손님들께서 이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해주실뿐더러 한 번 매장의 이름을 들으면 기억에 잘 남는다고 해주셔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운영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생소한 분야라 걱정의 시선이 많았을 것 같아요.
2020년 5월 오픈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이걸로 밥을 먹고 살수 있겠냐면서 걱정을 많이 하셨죠. 주변 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 비주류 식물들만 있는 거 아니냐며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몬스테라와 같은 관엽식물도 들여놓으라고 하더군요. 저도 이런 성화에 못 이겨 처음에는 몬스테라나 선인장류도 취급을 했었는데요. 그러다 어느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장 컨셉과 맞지 않은 식물들을 모두 과감하게 정리하고, 지금의 형태를 유지해왔습니다.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가격 정찰제’였습니다. 보통 꽃집에 꽃을 사러 가서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기가 민망할 때가 많았거든요.
어렸을 때 저도 농장이나 화원에 가면 사장님들이 항상 ‘얼마까지 해줄게요’라고들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때로는 제가 키우고 싶지 않은 다른 식물을 선심 쓰듯 끼워주면서 말이죠. 같은 식물이라도 누가 사느냐에 따라 금액이 다르게 책정되는 것이 저는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매장을 오픈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모두 금액을 정확하게 기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물어보기 전에 가격을 알 수 있고, 또 누구든 같은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요. 처음에는 이런 저를 두고 한편에선 가격을 다 흩트려놓고 있다는 식으로 지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방식이 소비자들에게 좀 더 진실되고 투명하게 다가가는 기회가 돼 만족도가 높아지자 저에게 싫은 소리 했던 분들도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요.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대표님이 흙에 대해 굉장히 고심하신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식물을 구매해서 키우는 사람들은 농장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가정집에서 키우게 되잖아요. 농장에 비해 통풍이 덜 되고, 햇빛도 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것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새로운 흙 배합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식물 종류마다 조금씩 변주도 필요하고요. 흙뿐만 아니라 화분의 크기도 농장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저는 좀 더 작은 크기의 화분을 권장 드립니다. 농장에서는 일정 기간에 반드시 출하를 해야 하니 크게 크게 빨리빨리 키우는 게 중요하지만 가정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죠. 그리고 화분이 작을수록 물이 더 잘 빠져 과습의 우려도 덜어주고, 자리도 덜 차지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코덱스가 아닌 일반적인 관엽을 구매하시더라도 조금 사이즈를 좀 더 작게 심으라고 얘기를 많이 해요. 시중에선 작은 화분을 구하기가 어려워 직접 제작도 하고 해외에서 수입을 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시고 계신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선 일본 아마존 가드닝 1위를 차지하고, ‘괴근 식물의 바이블’로 불리는 <비자르 플랜츠>의 첫 공식 한국어판의 감수를 맡아 작년에 출판이 됐구요. 원소주 라벨 제작으로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남무’ 작가, 부산을 대표하는 서브컬처 편집샵 브랜드 ‘발란사’ 등 다양한 곳과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활동을 병행하는 이유는 ‘고어 플랜트 서울’의 브랜딩을 위해서인데요. 일본의 경우 저처럼 그렇게 크지 않은 매장들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오랜 기간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같이 공통점을 살펴보자면 작은 브랜드임에도 자신만의 철학과 색깔을 뚜렷하게 갖추고 있더라고요.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외연을 확장하면서 지속 가능한 제품과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려 합니다. 차별화된 브랜딩으로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상호 작용을 하고 싶어요.
브랜딩을 통해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고 싶으신가요?
아이러니하게도 희귀 식물을 판매하면서도 너무 매니아틱한 모습으로 비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만 원에서 이만 원대의 식물을 준비한 이유도 10만 원 이상의 고가의 식물 위주로 판매하는 곳과는 다르게 손쉽게 입문을 도와드리기 위해서인데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흥미가 생기고, 코덱스를 비롯한 다양한 희귀 식물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코덱스를 경험해 보는 걸 바라면서도 한 순간에 너무 빠르게 알려지는 것 역시 경계하고 있어요. 너무 트렌드에 휩싸여버리면 금방 휘발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점을 가장 주의하고 본질에 충실해서 느리지만 탄탄하게 성장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간’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예전에 ‘삼시 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어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는데요. 그곳에서 유해진 배우가 구석진 바위 위에 테이블을 놓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바쁜 촬영 한가운데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죠. 코로나를 겪으면서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내 집’, ‘내 공간’에 집중하게 됐고, 자연스레 ‘홈 가드닝’도 관심이 많아졌죠. 저희 매장은 다른 곳과는 좀 다르게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의 남자 고객이 많은 편인데요. 이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남들과 공유하는 공간이 아닌 나만의 특별한 장소에서 온전히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시더라고요. 과거에는 주로 피규어나 인센스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식물도 하나의 대상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코덱스가 이런 쪽으로 좀 더 선호되는 것 같아요. 아직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방 한 편에 조그마한 렉이나 테이블이라도 좋으니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내가 좀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조금씩 놓아두라고 말씀드려요. 이렇게 하면서 짧게나마 그 시간에 집중하게 되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고객분들과의 소통에서 큰 보람을 느껴요. 코덱스를 구매하신 뒤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저에게 많이 공유해 주시는데요. 식물에 관심을 쏟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편해지고, 일상 속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십니다. 또한 계절마다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 시간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는데, 이럴 때마다 보람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오랜만에 분갈이를 하러 오시는 고객을 만날 때나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근처에 지나가다가 들리시는 고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도 좋은 기운을 느끼고요. 오프라인 행사에 응원하러 와주시는 분들, 인스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 모두에게 늘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코덱스를 하나의 식물로 접근하기보다는 오브제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식물을 오브제로서 바라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인테리어 소품, 누군가에게는 럭셔리 사치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식물을 판매하면서 ‘자연’이라는 표현을 강조하지 않고, 공기를 정화하는 등의 기능적인 면을 설명하지 않아요.
그리 저는 손님들 중에서 어떤 식물을 키우면 좋을지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겉모습을 보고 고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 공간에 놓을 대상이기 때문에 우선 자신의 눈에 예뻐야 관심이 가고 오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살아있는 피규어’라고 말씀하시며 컬렉팅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저는 이러한 생각을 굉장히 존중합니다.
마지막으로 2024년 새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미 계획된 크고 작은 콜라보 일정이 있어요. 봄에는 무신사에 입점되어 있는 의류 브랜드와 협업 예정이고, 컨템포러리 아트 분야에서 유명한 일본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준비 중입니다. 9월에는 일본의 피규어 아티스트와의 작업도 예정되어 있고요. 그리고 늘 그래왔듯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식물들을 꾸준히 소개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고객과 기존의 고객 모두가 즐거워할 만한 다양한 식물들을 말이죠.
안봉환 대표가 소개하는 ‘고어 플랜트 서울’은 그저 식물을 판매하는 스토어를 넘어 나만의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섬세한 눈으로 고른 식물들은 마치 하나의 작품이 되어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마음에 평안을 안겨줍니다. 코덱스를 키우며 공간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우리 삶에 특별한 녹음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요? 이 작은 식물 한 그루에서 새로운 봄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WEBSITE : 고어 플랜트 서울
INSTAGRAM : @goreplant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