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는 어떤 콘텐츠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몰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개 요소나 결말을 발설해 감상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을 말한다. 흔히 스포라는 줄임말로 사용한다. 우리는 스포 방지, 스포 주의라는 경고에 익숙하다. 작품의 핵심 내용 공유에 주의를 요청하는 문화는 당연한 에티켓이 된 것이다. 스포일러를 자제해야 하는 분야는 영화, 드라마, 게임, 소설, 만화 등 광범위하게 이른다. 하지만 ‘스포 주의’가 콘텐츠 감상 태도에 특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진 않을까? 혹시 ‘스포 주의’가 과잉되고 있진 않을까? 일상의 단어가 된 스포일러를 깊이 생각해보기를 통해 특히 영화를 보는 감상 방식에 대해 돌아보고자 한다.
스포일러의 양면성
비밀 보장 vs 결말 파악
콘텐츠를 대상으로 누설 발언이나 리뷰를 제한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든 정보가 넘치는 요즘에 보다 민감한 이슈가 됐다. SNS 게시물이나 포털 뉴스 등으로 인해 사전 정보에 노출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이야기의 극적인 재미를 누리기 위해 비밀을 보장받고자 한다.
영화는 이미지로 스토리텔링을 한다. 많은 관객은 스토리텔링에 방점을 찍고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가’에서 재미를 찾는다. 사건의 연쇄작용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개연성을 따져 일의 정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는 데 집중한다. 대체로 스포일러에 민감한 것도 이런 인과율에 따른 서사가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기는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얻게 되는 태도다. 추리, 스릴러, 공포 등 특정한 장르는 스포일러에 더욱 취약하다. 또는 장르적 요구가 아니더라도 방대한 이야기 구조가 켜켜이 쌓여서 결말이 가지는 폭발력을 기대하는 경우 수많은 관객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2019년에는 홍콩의 어느 극장에서 한 남성이 폭행을 당한 사건까지 있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예비 관객들을 향한 그의 ‘돌출 행동’이 화를 불렀다. 고조되는 감정선을 따라 스스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고자 한 관객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섣부름이 부른 파장이었다. 그만큼 주요 줄거리의 공개 여부가 관객 동원 성과에도 직결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영화 제작자가 나서서 스포일러 방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포일러에 다른 기능이 더해기도 했다. 스포일러가 빠른 줄거리 파악을 위해 이용된다. 비밀 보장을 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시간 대비 성능의 효율을 뜻하는 ‘시성비’ 개념을 제시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주목한 바에 따르면, “시간 사용의 밀도를 높이고자 하는” 경향 속에서 스포일러는 시간을 압축하는 역할을 한다. 주의를 필요로 한 문화가 오히려 콘텐츠를 소비하는 한 형식으로 부상한 셈이다. ‘스포 금지’라는 부정적 표현이 ‘스포 포함’ 혹은 ‘결말 포함’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변화한 점이 눈에 띈다.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결말을 얻고자 하는 강력한 수요는 각종 요약 콘텐츠를 쏟아내는 동력이 되고 있다.
영화를 다층적으로 바라보기
영화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예술이긴 하지만 그에만 깊은 관심을 두면 감상에 한계가 생긴다. 다시 말해 ‘사건의 흐름이 드러나는 일에 대한 지나친 경계’는 영화를 부분적으로만 흡수하는 제한선을 두고 만다. 이야기만이 즐길거리라는 인상을 남기기 때문. 한 편의 영화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의미는 서사 외 여러 기호에 의해 생성되기에 한 가지 접근 방식만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 간 조화와 충돌은 관객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의미를 수신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품은 진정한 완결을 이룬다.
1) 스토리와 플롯의 구분
영화를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인 서사 중심의 이해에서도,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를 인지하면 스포일러의 압박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스토리는 주로 표면적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인물(누구)이 어떤 행동을 일으키는지(무엇)를 사건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단선적, 선형적으로 흐른다.
한편 플롯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재배열하고 꾸며진 이야기다. 사건의 중요도를 판별하고 취사선택을 통해 전시할 이미지를 엮고 장식해 완성한다. 이야기꾼은 의도 혹은 목적을 갖고 순서를 만든다. 이에 플롯에는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이 생기고 그 공백은 관객이 추론할 여지를 준다. 같은 스토리를 두고도 플롯은 무궁무진해진다. 어떤 감상 환경에서도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서 생긴다.
물론 플롯에도 일정한 관습이 존재한다고 반문할 수 있다. 여기선 관습적 형식을 따르지 않는 영화 계통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응할 수 있다. 전형적이고 익숙한 전개 방식이 아닌 대안적 영화는 새로운 영감을 자극하는 의미를 마주하게 만든다. 대안적 형식의 조건은 주로 “다수의 그리고/또는 수동적인 주인공, 외부보다는 주로 내면에서 오는 갈등, 인과율에 따르지 않는 사실성, 연속적이지 않은 시간의 진행, 열린 결말 등”으로 설명된다.
2) 영화 속 기호들
영화는 여러 기호를 담고 있다. 감상자는 촬영, 편집, 사운드 등이 결합하는 방식을 본다. 그 사이 자신의 경험 혹은 개성에 따른 해석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작품의 가치는 저마다 다른 무게를 가지게 된다.
우선 카메라는 피사체의 크기를 얼마나 작고 크게 담는지, 앵글이 위에서 내려다보는지, 아래서 올려다보는지, 고정된 자리에서 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움직이는 대상을 따라 트래킹하는지 등이 빚어내는 의미가 있다. 카메라의 깊이감이 발화자의 의도를 담기도 한다. 이런 카메라의 쓰임은 일상적인 시각 체험에 닿기 위한 수단이자 새로운 경험의 도구가 되기도, 상징적인 메시지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편집에서도 뜻이 생겨난다. 관객으로 하여금 편집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도록 일정한 법칙에 따라 연속 편집을 하는 건 사실성을 전달하는 데 기여한다. 서사나 감정선을 매끄럽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된다. 반면에 편집 과정에서 불연속적인 컷을 선택해 편집이 튀어보이도록 하며 의미를 창조하는 시도도 있다. 특정한 주제를 강조하거나 형식적인 실험을 지향한다면, 결코 스토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감각적 체험을 마주하게 만든다.
사운드 역시 마찬가지. 대사, 음향효과와 영화 음악으로 이뤄지는 영화의 사운드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미지와의 의도적인 불협화음을 통해 도드라지는 메시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처럼 코드화된 형식에 천착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바라보는 다층적인 관점이 서로 다른 연상 작용을 불러오기도 한다. 영화가 세계를 향한 창문 혹은 틀로서 작동하는지, 물질적 경계인 스크린으로 치환되는 영화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객을 숨기거나 보호하는 동시에 공개하고 반영하는지, 마치 거울에 비친듯 그 자신을 동일시하는지 혹은 타인이 바라보는 객체로서 거리를 두고 낯설게 하는지 등 영화라는 예술을 이해하는 관점은 감상 태도의 변주를 허용한다.
콘텐츠를 누리는 태도에 단일한 원칙은 없다. 우리는 성숙한 감상자로서의 예의는 갖추되 스포일러라는 단어에는 매몰되지 않을 계기를 한 번쯤 마련해봐야 한다. ‘스포 주의’에 대한 압박감 또는 ‘스포 포함’에 대한 기대가 알게 모르게 감상의 갈래를 축소시키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 보자. 감상 태도의 일방향성을 경계해보는 것이다. 유연함은 넓은 시야를 선사할 테다. 여러 방면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관객에 의해 영화는 생동한다.
- 문관규·유양근·이명자·함춘성, 『초보자를 위한 시네 클래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 토마스엘새서·말테하게너,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 김난도 외 9명, 『트렌드 코리아 2024』, 미래의창,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