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노는 왜
여성을 벗겼는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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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2024년 Spring 쿠튀르 컬렉션이 공개됐다. 이 런웨이는 외설적이다. 여성의 몸이 섹슈얼하게 나타났고, 에로틱하게 연출됐다. 투명한 쉬폰 소재의 드레스를 입어 몸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코르셋으로 허리를 잔뜩 조여 굴곡진 실루엣이 더욱 강조되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는 왜 이런 디자인을 선보였을까?


섹슈얼리티에 대한 찬양일까

마르지엘라 2024 Spring Couture 패션쇼에서 나타나는 여성 모델의 모습
마르지엘라 2024 Spring Couture 패션쇼에서 나타나는 여성 모델의 모습, 이미지 출처: Vogue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보임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보임, 이미지 출처: Vogue
마르지엘라 2024 Spring Couture 패션쇼의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그웬돌린 크리스티
마르지엘라 2024 Spring Couture 패션쇼의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그웬돌린 크리스티, 이미지 출처: Vogue

이번 마르지엘라 런웨이에는 여러 유형의 모델이 올랐다. 먼저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맨 남성 모델이 선두에 섰다. 갈비뼈 아래를 심하게 조여 남성의 신체에도 모래시계 모양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나타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음에는 투명한 드레스 너머로 가슴과 하체를 드러낸 여성들이 당당하게 등장했다. 일부는 스스로를 끌어안듯 팔로 가슴을 가리고 걸었는데, 선두에 코르셋으로 잘록한 허리가 나타났던 남성 모델로 인해 그들의 성별을 판단할 수 없었다. 또 일부는 모자를 쓰고 코트로 온몸을 동여매고 불안정한 걸음으로 나타나는 모델이 있었다. 이들은 성별을 판별할 수 없었다.

런웨이의 마지막은 배우 그웬돌린 크리스티(Gwendoline Christie)가 장식했는데, 그는 키가 191cm로 할리우드 여성 배우 중 최장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몸이 나타내는 거대함은 그의 여성성과 충돌한다. 거대한 몸은 여성과는 거리가 먼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런웨이에서 크리스티는 반투명한 PVC 재질의 상의를 입어 맨가슴이 비쳤고,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크리스티의 몸에서 거대함보다 섹슈얼리티가 더 강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 런웨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a)만이 개방되는 공간이었다. 남성적 신체는 숨겼고 여성적 신체는 거리낌 없이 드러냈으며, 심지어 남성의 몸에서도 여성적 체형을 구현했다. 어쩌면 갈리아노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순수히 찬양하는 디자이너일 수 있다. 그는 이상화된 날씬한 신체에서 벗어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현대의 런웨이에서 여성의 이상적인 몸은 마르고 가녀린 몸이란 점을 고려했을 때, 갈리아노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가감없이 개방한 것은 마른 몸에 국한된 여성의 이상적 신체를 확대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상에 갇힌 여성의 섹슈얼리티

킴 카다시안
킴 카다시안, 이미지 출처: Calveo

런웨이를 보는 동안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이 떠올랐다. 그의 잘록한 허리, 비현실적으로 큰 가슴과 엉덩이는 이번 마르지엘라 런웨이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몸과 일치한다. 흔히 ‘모래시계 실루엣’이라고 불리는 몸의 형태다. 이러한 몸은 디올의 뉴룩을 비롯해 오랫동안 이상화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카다시안뿐만 아니라 카일리 제너, 비욘세 등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화되었다. 해시태그로 #curvy, #thick, #slimthick 등의 단어가 함께 적히며 이러한 신체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

이 몸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몸이다. 가슴이나 엉덩이는 부풀리고, 허리는 좁게 만들어 기형적으로 몸의 형태를 조성했다. 즉,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몸이다. 코르셋을 입지 않았음에도 코르셋을 흡수한 상태로, 부자연스러움을 전제한다. 물론 큰 엉덩이나 허벅지처럼 일부 몸의 지방에 대해 긍정한다는 점에서 ‘자기 몸 긍정주의’로 연결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위 해시태그에서 여성의 몸을 곡선(curvy)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국 좁은 허리의 강조로 이어진다. 이는 날씬함에 갇힌 여성의 몸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며,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또 다른 제한을 추가하는 것이다. 해시태그 중 “slimthick”이라는 표현이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두껍되 날씬해야 한다는 이 역설적인 말은 여성이 풍만함과 마름 사이에서 양가적인 압박을 받고 있음을 뜻한다.

문제는 이상이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규정하는 이상은 신체에 대한 제한과 통제로 이어진다. 날씬함에 대한 강박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를 충분히 갖춰야한다는 인식 또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된다. 성형 수술을 생각해보면 지방 흡입뿐만이 아니라 가슴 성형, 골반 필러나 힙업 성형 등 현대 여성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섹슈얼리티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르지엘라 런웨이에 나타난 여성의 몸은 섹슈얼리티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몸이다. 날씬함과 풍만함이 중첩된 몸은 협소하고 비현실적인 기준 위에 서 있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마치 이 런웨이에서 모델들이 걷는 모습처럼.


여성의 몸은
대상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르지엘라 2024 Spring Couture 패션쇼의 한 장면
마르지엘라 2024 Spring Couture 패션쇼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style-republik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갈리아노는 왜 고전적인 방법으로 코르셋을 되살렸는가? 코르셋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물건이 아닌가. 그가 코르셋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코르셋을 이용했던 것은 코르셋으로 나타낼 수 있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그에게 중요했을 수도 있고, 더 긍정적으로 유추해보자면 ‘기괴하게 만들어진 몸’, ‘인형과 같은 메이크업과 부자연스러운 동작’ 등을 통해 모래시계 실루엣이 가진 비현실성을 폭로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갈리아노는 여성의 몸에 대한 과장된 이상과, 그 이상이 가진 불안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 상품화에 익숙해진 사회적 시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갈리아노의 작품 속 여성은 성적인 부분이 도드라진 채 관객의 시각 속에서 대상화된다. 코르셋과 굴곡진 허리는 남성 모델의 몸에서도 맨 처음 등장했음에도 연이은 여성 모델의 노출에 잊혀진다. 이들의 몸은 섹슈얼리티가 드러났기에 시선을 끌고, 섹슈얼한 대상으로 한정된다. 이 런웨이에서 갈리아노가 만들어낸 섹슈얼리티는 이상적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현실에서 분리되는 이상은 현실의 주체와 거리가 먼 존재이기 때문에 타자화되기 쉽다. 신화가 된 육체는 결국 대상화된다.

갈리아노는 사진작가 브라사이(Brassaï)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브라사이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1930년대 파리의 성 노동자와 도박꾼을 지목한다. 만약 갈리아노가 성 노동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여성 모델을 연출했다면, 그래서 여성 모델의 몸을 런웨이에서 노출한 거라면, 과연 갈리아노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긍정하고 지나친 이상을 폭로한 것이 맞는가? 그는 겹겹이 이상화된 여성의 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이 런웨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싶은가? 갈리아노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개방하고 찬양하려는 것인지, 또는 여성의 성을 이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필자의 해석은 주관적이지만, 그의 런웨이가 짚어내는 의문점은 선명하게 남는다. 여성의 몸은 이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대상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김희량

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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