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이제 좀 따듯해져야 되지 않나?’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바람이 좀 식었다 싶어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몸을 어떻게 더 구겨야 추위를 피할 수 있을지 실험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필자는 수시로 절기를 체크하고, 낮이 얼마나 길어졌는지 하늘과 눈씨름을 하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머릿속에는 가볍게 걸칠 만한 재킷도 하나씩 고르고 있지요.
필자의 옷장은 꽤 칙칙한 편입니다. 카키, 올리브, 네이비. 담배 냄새도 살짝 배여 있어서 눅눅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올해 봄에는 한껏 채도를 올려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늘 안정적이거나, 어두운 피부 톤에 맞춰서 옷을 고르던 습관도 패딩과 함께 방 한편에 꾸겨 놓고, 채도를 확 올린 재킷을 걸치고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봄이 더욱 기다려지거든요.
화사한 봄을 상상하면서 고른 재킷을 소개합니다. 주머니 사정, 겨울 동안 한껏 먹어 찌운 살도 잊고 골랐습니다. 봄뿐만 아니라 간절기에도 유용하게 입을 수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로요. 왜 아웃도어냐고요. 날씨가 좋아지면, 아무래도 밖에 나가야 하니까요. 이 중에서 하나만 사도 성공이겠지만, 일단 보는 것만으로도 봄을 고대하게 됩니다.
파타고니아,
쉘드 신칠라
파타고니아의 옷들은 오묘한 색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유치하거나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컬러도 절묘한 선에서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브랜드입니다. 그래서 스트리트, 캐주얼, 아웃도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활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한 건 파타고니아 봄버라고도 불리는 ‘쉘드 신칠라’입니다. 작년부터 빈티지 시장에서 특유의 빛 바랜 컬러와 크롭한 핏으로 주목받고 있는 재킷입니다. 기무라 다쿠야가 젊었을 적 <뷰티풀 라이프>에서 입었던 것으로 유명한 옷이기도 하죠. 비교적 친숙한 ‘신칠라’라는 네이밍에서 알 수 있듯 안감은 플리스 소재입니다. 겉감은 나일론 소재로 되어있습니다. 이 두 소재의 컬러 배색을 다르게 사용하는 점도 재밌는 옷입니다. 겉으로 봤을 땐 점잖은 네이비인데, 카라를 접으면 민트색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지요.
따듯한 봄에는 입기엔 조금 무거운 옷일 수도 있습니다. 껴입는다면 겨울도 너끈히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든든한 재킷이거든요. 반대로 생각하면 가볍게 입을 때 이만한 옷이 없습니다. 특히 일교차가 심한 간절기, 긴팔 티셔츠에 쉘드 신칠라 한 벌이면 멋도, 온기도 챙길 수 있습니다.
케일,
라이트 쉴드 자켓
고프코어 룩이 부상하면서 아웃도어를 표방하는 다양한 국내 브랜드가 생겼는데요. 그중에서도 자신들만의 헤리티지를 묵묵히 쌓아가고 있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케일입니다. 그들의 옷에선 ‘아웃도어 스타일’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웃도어 문화를 사랑해야만 드러낼 수 있는 진심이 묻어 있습니다.
라이트 쉴드 재킷은 탁월한 투습 기능을 가진 얇은 바람막이입니다. 활동성을 위해 안감은 부드러운 3중 원단을 채택했고, 폭우에도 끄떡없는 소재를 사용했지요. 의도한 환경에서 필요한 모든 기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사양과 기능을 듣다 보면 당장 산으로 향하고 싶지 않나요? 그렇다고 튀는 디자인도 아닙니다. ‘고프코어’하면 생각나는 큼지막한 주머니, 여기저기 달린 지퍼와 같은 과한 디테일도 없습니다. 딱 필요한 기능만 살린 절제된 디자인이 매력적인 재킷입니다. 테크니컬 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테크를 지향한다는 게 한 번에 느껴지죠.
욕심내지 않고 의도한 정도의 멋만 낸 아웃핏. 수묵화를 연상하는 그레이, 블랙, 베이지의 컬러. 특정 브랜드에 국가적인 이미지를 투영해 감상을 말하는 것만큼 고루한 것도 없습니다만, 수묵화를 연상하는 그레이, 블랙, 베이지의 컬러네이션. 부담스럽지 않게 나에게 스며들 수 있는 봄 재킷을 고르라면 케일의 라이트 쉴드입니다.
노스페이스 퍼플라벨,
마운틴 재킷
나나미카는 테크니컬 라이프 웨어를 지향하는 일본 브랜드입니다. 일상적으로 입는 옷에 아웃도어에서 쓰일 법한 고사양의 원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나나미카가 전개하는 노스페이스 퍼플라벨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노스페이스 화이트라벨처럼, 노스페이스라는 IP에 나나미카가 지향점을 담은 옷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요.
마운틴 파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고안되어 아웃도어로 스며든 역사가 깊은 옷입니다. 그만큼 클래식한 파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원형은 유지하면서 리디자인하는 것이 주요한 파카입니다. 노스페이스 퍼플 라벨은 일본 브랜드 특유의 유려하고 풍성한 실루엣을 구현했습니다. 부드러운 원단 결로 착용감을 높이고 가볍게 만들어 레이어링의 마지막 단계로 활용하기 좋지요. 시즌 별로 나오는 다채로운 컬러네이션으로 선택의 폭도 넓습니다. 아웃도어 브랜드답게 발수 기능도 있고요.
사실 현대인들은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웃도어입니다. 회색 빌딩들을 산봉우리처럼 우뚝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정글보다 무서운 출근길 대중교통을 뚫어야 하잖아요? 그럴 때 사회적 체면을 위해 정갈히 차려입은 출근복 위에 퍼플라벨의 마운틴 파카를 걸치는 겁니다. 가능하다면 쨍한 원색으로요. 어떤 고난도 이기고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지하철에 자리가 나면 왠지 뻔뻔하게 앉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마침 본 아티클이 발행될 때가 ‘우수(雨水)’라고 합니다. 추위가 풀리고, 얼음과 눈이 녹는 시기라고 하는데요. ‘한반도의 제멋대로인 날씨엔 얼음이 녹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비관적인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절기를 차근차근 지나면 봄이 오겠지요.
다 쓰고 나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겨우내 찌운 살부터 걷어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래서야 패딩을 입고 있는 거나 다름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