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중 슈투트가르트 일정을 집어넣기로 한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다름 아닌 한 도서관이었어요. 독일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필자가 슈투트가르트를 혼자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면 ‘거기를 왜 갔어?’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합니다. 관광객이 시간 내어 가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또 할 게 없어 보이는 도시가 바로 슈투트가르트이니까요. 그럼에도 필자는 그저 독일 남부에 있는 이 도서관이 너무 궁금해 다녀왔고, 어쩌면 여러분이 한 번쯤은 사진으로 접했을 법한 이 건물에서 무얼 느꼈는지 여러분께 전달해보고자 해요.
오늘 소개해드릴 곳은 한국인 건축가 이은영이 설계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유명해진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Stadtbibliothek Stuttgart)’ 입니다. 1999년 슈투트가르트시에서 주관한 설계 공모전에서 채택된 이은영 건축가의 설계는 유럽인들의 심리를 잘 파악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1년 개관했고, 2013년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7선에 선정되었어요. 이 도서관이 방문객에게 어떤 경험과 영감을 주는지 필자와 함께 도서관을 거닐며 느껴보도록 해요.
사진 유니
한글이 쓰여진 독일 도서관
슈투트가르트의 중심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큐브형 건물은 그 주변이 한적한 덕분에 날이 좋으면 해를 가득 받아 밝게 빛납니다. 커다란 정육면체의 형태를 띄는 구조에 온통 정사각형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외벽 때문에 자칫하면 단조롭거나 감옥 같다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는 설계인데도 해를 받은 콘크리트의 색은 미색을 띄어서 오히려 따뜻한 이미지를 주더라고요.
이 도서관의 네 외벽에는 네 가지 언어로 ‘도서관’이 써있는데, 독일어, 영어, 아랍어 그리고 한국어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은영 건축가가 한국어를 포함시키자고 설득했다고 하는데, 외벽의 칸을 따라 한 글자씩, 세 칸에 알맞게 쓰여진 모습이 꼭 원고지에 쓰인 한글을 보는 것 같아 도서관이라는 의미에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의 심장 (Das Herz)
도서관에 입장해 가운데의 문으로 한 번 더 들어가면 이런 정육면체의 신기한 공간을 만날 수 있어요. 심장(Das Herz)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정육면체 안에 또 다른 작은 정육면체가 들어가있는 형태인데요, 자연스럽게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게 되니 순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종교적인 건축물이라는 감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은영 건축가는 이 형태를 이용객들이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정하고, 로마의 판테온에서 영감받아 설계했다고 해요. 과거에 교회가 했던 역할, 사람들이 모이고 성경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현대에는 도서관이 한다고 정의내린 것이죠. 천장 가운데의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네 개의 문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 이 네 개의 문은 벽과 벽 사이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품고 있습니다.
현대의 멀티미디어 도서관
도서관은 아주 깔끔하게 층별로 장르가 나뉘어 있는데요, 그 덕에 더 많은 종류의 자료를 담을 뿐만아니라 시끄러운 층과 그렇지 않은 층을 분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층이 따로 있고, 음악이나 영상은 책에서 끝나지 않고 CD나 DVD등 멀티미디어실처럼 구비되어 있는데 직접 보거나 들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어요. 또한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된 자료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슈투트가르트의 시민들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이죠. 한국 도서 코너도 따로 있고, 최근에는 서울 노원시에서 해당 코너에 책 200권을 기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슈투트가르트시 측에서 원한 도서관은 ‘자아성찰의 기능을 가진, 현대의 멀티미디어 도서관’ 이었는데 그 기능을 정확히 수행한다고 할 수 있겠죠. 필자는 이 공간을 도서관에 문화센터를 한 방울 떨어뜨린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라고 느꼈습니다.
앞으로 보여드릴 도서관의 하이라이트를 여러분께 더 와닿게 하기 위해 도면을 가져와 봤어요. 4층까지는 가운데에 심장을 비워 둔, 모두 똑같은 네모 도넛 모양의 형태를 띄었다면 5층부터는 층별로 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면서 도면상으로는 역삼각형 형태의 빈 공간을 가지게 되는 특이한 구조를 띄는데요, 이 도서관의 8층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면 아래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나선형의 계단이 잇는 책의 광장
도서관의 하이라이트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위층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빈 공간 덕에 8층에서는 5층의 시작점까지 모두 내려다볼 수 있어요. 이 모든 층들은 아래의 층들과 동일하게 층별로 장르가 나뉘어 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형태로 모두 계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반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는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위층의 책장들을 모두 밝히고 5층 바닥에 뚫린 창을 통해 도서관의 심장까지 밝혀줍니다.
보통 도서관에서는 창문 앞에 앉아 눈이 아플 때마다 중간중간 밖을 볼 텐데, 이 도서관은 아래위로 고개면 돌려도 피로가 풀릴 것 같지 않나요? 딱딱하고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정육면체 덩어리 같았던 이 도서관의 내면은 이렇게나 탁 트이고 자유로워요. 1층에서는 빈 공간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면, 여기서는 탁 트인 공간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죠.
백색의 캔버스
도서관 측에서는 책장과 인테리어까지 모두 건축가에게 맡겼다고 하는데요, 이은영 건축가는 모든 요소를 순백색으로 두고 오직 책과 사람만이 색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해요. 위의 사진에서 책과 사람, 사람이 앉는 소파를 뺀다면 정말 하얀색의 도화지와 같겠죠. 오직 정보와 사람만이 도서관의 색깔이자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필자는 스스로가 조금 더 특별해지는 기분까지 느꼈답니다. 건축가와 이 설계를 선택한 슈투트가르트시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나요?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은 건축과 도시디자인을 통해 스스로를 재미있고 흥미로운 공간으로 변모시켜 ‘책 보러 가는 곳’에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흔히 ‘정보의 보고’라고 불리는 것이 도서관인데 사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또 소통을 일으킴으로써 더 많은 정보가 모이고 퍼져나가는 것이 도서관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 슈투트가르트의 도서관 건축가 이은영 인터뷰_2009년 7월 쾰른 Yi Architects _ 박선영
- 세게 도서관 랜선 투어,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 _ 국립중앙도서관
- 공공예술로서의 도서관을 찬미하다 _ 네딸랜드
- 노원구, 독일 슈투트가르트시립도서간에 책 200권 기증 _ 이선욱(세이프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