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퐁피두처럼 파업할 수 있나

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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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부터 파리 퐁피두 센터(이하 퐁피두)에서 피카소 드로잉 기획전이 열렸다. 그리고 같은 시기 퐁피두는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창문에 붙었고, 노조 조합원들이 방문객에게 지지 서명 전단지를 배포했다. 파업은 점차 확대되어 크리스마스 연휴부터 이듬해 연초까지 전면 폐쇄로 이어졌다. 폐쇄 소식을 몰랐던 필자는 피카소 전을 보러 향했으나 굳게 닫힌 건물 앞에서 허탕을 치고 말았다. 퐁피두와 같은 대형 국공립 미술관이 몇 달씩이나 파업한다는 사실이 다소 의아했다. 파리에 머물면서 한두 번 목격한 파업은 아니지만, 연간 회원권을 끊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관람할 권리가 있는 유료 회원으로서 합당한 혜택을 누릴 수 없음에 볼멘소리가 나와 버렸다.

그리고 일하지 않을 권리를 당당히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이내 부러웠다.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렇게 파업할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무지한 것일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전자라면 파업을 쉬이 용납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후자라면 문화기관의 현실에 대해 무지한 채 애호가랍시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누리기만 했던 자조의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향유하고 사랑하는 미술관을 노동환경으로써 바라보니, 그간 보이지 않던 노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토록 닮아 있는
전 세계 미술관 노동자들의 현실

1) 파업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유례없는 파업

이미지 출처: www.la-croix.com

아무리 파업의 나라 프랑스라고 하지만 약 100일 간 진행된 이번 파업은 퐁피두 설립 이래 유례없던 장기 파업이었다. 퐁피두는 2025년 여름부터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착수하여 5년간 폐관에 접어든다. 그간 내부적으로 공사가 논의될 때마다 폐쇄 기간에 약 1,000명의 직원이 어디로 어떻게 가게 될지 명확한 약속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파업은 그 고용 불안이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결과였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조합 CFDT는 문화부 장관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최근 수년간 증가한 단기 계약과 아웃소싱에 대한 불만, 더불어 부족한 예산 문제에 대한 환멸을 표했다. 문화기관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기이할 정도로 전 세계가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이다. 높은 교육 수준과 경력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이는 정부예산과 기부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예산 구조가 가장 큰 원인이다.

2) 국내 미술관은 어떠한가

이미지 출처: 서울대저널

국내 문화기관에도 노조가 존재하고, 파업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공무원노동조합, 국립현대미술관노동조합,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 등이 일선에서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투쟁하고 있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 공무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원인인 예산 구조를 바꾸고자 파업에 나섰다. 2021년에는 이건희 컬렉션이 연일 매진을 이어가던 와중에, 박물관 한 곳에서 최저임금 공무직 근로자가 1인 시위를 벌였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내부 갑질과 인사 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작년까지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지방박물관에는 약 1,000명 정도의 공무직이 있다. 그 중 거의 80%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근속 수당이 없어 4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똑같이 최저임금을 받는다. 대학원을 졸업하거나 전시기획을 하는 직군도 마찬가지이다.a)


한국에서 미술관 파업이
낯선 이유

국내에서도 열악한 현실에 맞서는 투쟁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미술관 파업이란 단어가 낯설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타깝지만 파업을 비롯한 쟁의 행위는 대중의 일상과 부딪히는 마찰음의 크기만큼 주목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퐁피두의 파업은 일반 관람객과 여행객을 포함해 하루 평균 9천 명 이상의 방문객의 발길을 돌리는 일이며, 경제적 손실 또한 막대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파업은 때로 과시적이다. 자연스레 언론과 여론의 주목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파업은 결국 주도권 싸움이다.

1) 정면 대결에 익숙한 프랑스

이미지 출처: Unsplash

프랑스 신임 문화부 장관 라치다 다티(Rachida Dati)는 퐁피두의 파업 문제가 취임 후 제일 해결하고 싶었던 안건이라고 언급했으며, 취임 직후 지난 1월 29일 노조와 협상을 마무리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퐁피두 노조가 3개월간의 투쟁 끝에 결국 승리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허점이 존재한 협상이었지만(일부 노조는 협상 단계에서 소외되는 등), 어쨌든 노사 간에 발생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

프랑스가 파업의 나라로 불리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에게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 아닌 노동자가 언제든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행위로써 파업권을 법적으로 보장한다. 한국에서는 노동자가 파업하기 위해 교섭과 조정 및 중재를 거치고, 그래도 안 되면 노조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을 받아야 파업을 개시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노조가 아닌 개인도 자유롭게 파업을 선언할 수 있다. 그러나 노조의 틀 안에서 더욱 단단한 힘을 갖추고 함께 투쟁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쨌든 노동자들이 노무 제공을 거부하고 파업을 시작하면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된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적절한 힘의 균형이 존재한다.

2) 어지간한 파업은 불법이 되는 대한민국

이미지 출처: Unsplash

앞서 말했듯이 한국에서는 파업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또 다른 갈등이 줄곧 발생한다. 헌법 33조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업무방해나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를 무력화시킨다. 게다가,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하는 파업은 애초에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어찌 보면 사용자에게는 가만히 앉아 떡이나 먹으며 이들이 불법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도 이기는 승부이다. 요구와 협상이라는 본질적 내용보다는 파업의 형태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가르는 데로 사건의 중심을 옮기며 문제 해결에서 멀어지고 만다. 파업을 불법으로 고발할 수 있는 유리한 법 조항이 담긴 파업 대응 매뉴얼과 이에 맞서 합법적인 파업을 위한 안내서가 존재할 정도이다.


동의하지는 않아도
당신의 권리를 존중한다

이미지 출처: DG / actu Paris

프랑스에 파업문화가 자리 잡은 배경에는 노동자의 권익도 공정하게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 외에 또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솔리다리테(Solidarité)’이다. 한국어로 ‘연대 의식’이라고 번역하지만, 맥락적 차이가 있다. 연대 의식은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결속하는 정신에 가깝다. 그러나 솔리다리테는 한 구성원이 직면한 문제를 집단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책임을 느끼는 정신이다. 공동체 내에서 모든 구성원은 각기 다른 권리를 주장하고, 행동할 수 있다. 즉, 타인의 가치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인식한다. 나의 권익만큼 타인의 권익도 보장한다. 나의 갈 길을 방해하는 누군가의 파업을 묵묵히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나 또한 외침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0년 파업에 나섰던 국립중앙박물관 공무직 노동자들은 당시 최소한 일자리는 안정적인 자신들이 파업해도 되는지 걱정을 표했다. 모두가 힘든 팬데믹 시기에 파업이라니 너무 이기적이라는 날 선 반응도 받았다.b) 그러나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 제3자에게서 타당성을 얻을 필요가 있는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이타적일 수 없다. 그런데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나의 권리는 곧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권리이기도 하며, 나의 일자리를 이어받게 될 미래세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는 시선이 오히려 공동체의 성장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고백하건대, 이 글을 결론까지 이끌어가는 동안 여러 질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문화예술계의 파업만을 특별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가 있는가? 게다가 안티에그가 노동언론도 아닌데, 파업이라는 주제를 전면적으로 다루어도 괜찮은가? 모든 산업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난한 회복기를 견뎌내고 있고, 노동권과 파업은 비단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몸을 담고 애정하는 산업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테다. 그렇다면 과연 필자는 에디터로서 더 현명하거나 창의적인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느냐? 이 또한 아니다. 단지 이방인의 시선으로 사뭇 낯선 풍경을 포착했을 때, ‘한국은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자문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진동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일과 내가 있을 곳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개인이 되고 때로는 함께 뭉치며, 언젠가 노동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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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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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크리에이터 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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