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히 그러모은 순간들
싱어송라이터 92914

편안하고 수수한 멜로디로
일상의 반짝이는 조각을 노래하다
Edited by

화려하지 않아도 마음을 붙잡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일상과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풀어내는 싱어송라이터 듀오 92914의 노래가 그러한데요. ‘Okinawa’라는 곡으로 유튜브 누적 조회수 2,400만 뷰를 달성한 이들은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며 국내외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92914의 음악은 조미료 없이 수수하고 담백한 음식 같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머무는, 오래도록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음악 말이죠. 잔잔한 로파이 비트와 꾸밈없이 진솔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응어리진 근심도 깨끗히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습니다. 번잡한 나날에 쉼과 휴식을 선물하는 92914를 소개합니다.


고스란히 채집한
자연의 조각들, 노래가 되다

싱어송라이터 92914
이미지 출처: 92914 공식 인스타그램

92914는 권주평, 이준기로 이루어진 인디 듀오입니다. ‘92914’라는 그룹명은 처음 사용하던 작업실 주소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작곡은 함께하고 작사와 보컬은 이준기가 맡고 있죠. 둘은 교회에서 형 동생 사이로 처음 만났는데요. 13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이어주는 커다란 공통점은 음악에 대한 애정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이들은 ‘Sunset’, ‘Moonlight’, ‘Starlight’ 등의 노래로 특정 장면을 채집한 음악을 선보입니다. 따스한 노란빛으로 물드는 해 질 녘 풍경과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까지. 가만히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연의 심상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죠.

싱어송라이터 92914
이미지 출처: 92914 Bandcamp

이들은 미처 잊고 지냈던 일상의 반짝이는 조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푸른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지저귀는 새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소리 등. 음악이 시작되면 각자가 간직한 추억과 이야기가 평온한 리듬 위로 켜켜이 덧입혀집니다. 공원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유유자적 바라보던 순간, 지난 휴가에서 만난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같은 것들이 떠오르죠. 하루아침에 유행이 달라지고 빠름이 미덕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92914는 그들만의 태도를 견지합니다. 식물이 꽃을 피워내려고 조급해하지 않듯, 긴장을 풀고 계절의 흐름처럼 차근차근 나아갈 것을 제안합니다. 92914의 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요.


[Sunset]

싱어송라이터 92914 [Sunset]
이미지 출처: 벅스

2017년 발매된 EP [Sunset]은 92914의 첫 번째 앨범입니다. 타이틀곡 ‘Sunset’을 포함한 5개의 수록곡은 마치 한 곡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요. 일상을 채우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앨범 소개글처럼,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꺼내 들을 수 있는 포근한 음악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구성과 반복되는 가사는 불규칙한 호흡도 차분하게 만들어 주죠. 꿈결 같은 선율의 ‘Daydreaming’부터 허밍이 매력적인 ‘Room For Milk’까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앨범 커버 속 풍경처럼 늦은 오후 해 질 무렵의 나른한 공기를 닮은 앨범입니다.


[Sunset] 앨범 페이지


[Home]

싱어송라이터 92914 [Home]
이미지 출처: 벅스

2019년 발매된 [Home]은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미니앨범입니다. 연둣빛 초원 위 갓난아기들이 해맑은 미소로 두둥실 떠 있는 앨범 자켓처럼 싱그러운 기운으로 가득하죠. 이전보다 경쾌한 분위기와 리듬감 있는 기타 리프가 특징인데요. 너와 함께 천천히 걷고 싶다는 달콤한 가사가 돋보이는 사랑 노래 ‘Koh’, 고개를 까딱이게 만드는 흥겨운 ‘Gustavo’, 그리고 서정적인 여성 보컬 한민지가 함께한 비 온 뒤 맑게 갠 봄날의 하늘 같은 ‘Someday’까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에 느껴지는 설렘과 간질거리는 기분을 표현한 곡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Home] 앨범 페이지


[By The Calm Water]

싱어송라이터 92914 [By The Calm Water]
이미지 출처: 벅스

작년 8월 발매된 [By The Calm Water]은 92914의 첫 정규앨범입니다. 물속을 유영하는 듯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무드의 8곡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장마철 특유의 눅눅하고 나른한 정취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동화 같은 멜로디로 시작되는 ‘Neverland’부터 그리움의 정서가 느껴지는 ‘Miss The Time’, 그리고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을 어렴풋이 회상하는 ‘Summer’까지. 고요한 호수에 은은히 이는 파동처럼,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 좋은 앨범입니다.


[By The Calm Water] 앨범 페이지
INSTAGRAM : @at92914


하루하루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추억을 잊은 채로 살아갑니다. 해사하게 웃으며 수영하던 여름 바다, 은은한 달빛 아래 산책하던 어느 저녁, 일과를 마무리하는 길 보았던 붉게 타오르는 노을까지. 92914의 음악은 소중한 찰나를 잊지 말라고 다정하게 그러모아 우리를 그곳으로 다시 데려갑니다. 결국 일상을 지탱하는 건 화려하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 행복과 평화를 느낀 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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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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