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영화관에는 여러 이름의 공포 영화가 걸립니다. 우리에게 낯선 ‘그것’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박스오피스에 이름을 기록하며 사람들을 끌어드립니다. 공포영화를 보는 이들, TV 예능 프로와 유튜브 콘텐츠에서 괴담을 찾아보는 사람들은 섬뜩한 ‘그것’을 궁금해합니다. 나는 그런 것은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새해에는 사주를 보고, ‘신기가 있다’는 점집의 일화를 흥미롭게 듣는 사람들, 임신한 부부에게 태몽을 묻는 이들도 결국은 ‘그것’을 궁금해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기괴하고 낯설어 궁금증을 자극하는 ‘그것’. 사람들은 왜 ‘그것’을 궁금해할까요? ‘그것’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것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그것’을 다루는 소설 4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괴하고 낯선
우리 곁의 ‘그것’
최근 온라인에는 ‘굿판’ 열풍이 벌어졌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바로 영화 <파묘> 이야기입니다. 영화 <파묘>는 한 가족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 무당의 제안으로 이장을 진행하게 되고, 파묘를 진행하면서 ‘험한 것’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대살굿’부터 빙의된 존재의 정체를 찾기 위해 진행한 ‘도깨비 놀이’까지, 한국 무속신앙의 다양한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 오컬트는 해외 오컬트와 비교할 때 크게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한국의 오컬트 작품은 무속신앙과 밀접하게 결합합니다. 영화 <곡성>, 드라마 <손더게스트>와 <방법> 등 오컬트 작품은 무속신앙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부적을 쓰거나 굿을 하는 모습 등이 자세히 묘사됩니다. 이 모든 것은 시청자가 무속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무속신앙이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일상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해외 오컬트 장르 작품의 다수는 오래된 집이나 물건을 우연히 습득해 ‘그것’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이를 ‘퇴마’하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어떤 ‘한’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는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몰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게 이야기 됩니다.
하지만 한국의 오컬트 작품은 ‘그것’이 왜 이승에 남아있는지, 어떤 ‘한’을 품었는지 집요하게 확인하고자 합니다. 무속인들은 망자와 산자를 연결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하며, 집요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는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삶을 대해야 하는지 등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자기반성 등이 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형 오컬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미지의 존재, 알 수 없는 ‘그것’들 틈에서 집요하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평 고시원 속 유령들
『고시원 기담』
어느 도시를 가든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시원입니다. 『고시원 기담』은 변두리 시장통에 위치한 ‘고문 고시원’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습니다. ‘고문 고시원’이라는 섬뜩한 이름은 원래 이름읜 ‘공문 고시원’에서 ‘ㅇ’ 자가 떨어져 나가며 ‘고문 고시원’이 되었습니다. 공부의 문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던 고시원의 이름이 변한 것처럼 고시원도 변했습니다. ‘건물이 저주를 받았다’는 소문처럼 고시원의 주인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으며,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고시원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 텅 빈 곳이 된 것입니다.
“아직도 그 고시원에 누군가 살아?”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래되고 텅 빈 곳,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여덟 명의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0년째 고시에 도전 중인 수험생부터 외국인 노동자, 히키코모리 등. 사회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 고문 고시원의 1평짜리 방에서 마치 유령처럼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으스스한 소문과 기묘한 일이 일어나는 ‘고문 고시원’을 누군가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평가합니다. 유령처럼 존재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꺾이지 않는 삶을 『고시원 기담』을 통해 한 번 만나보세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죽도록’ 시달리기
『사악한 무녀』
추리소설 작가 김민규는 언제부터가 이상한 악몽을 꿉니다. 악몽 속에서 거대한 불길에 온몸이 불타고 ‘재림(再臨)’이라는 두 글자만 남는 꿈을 반복해서 꾸는 김민규. 악몽에서 깨어난 후에도 끔찍한 일은 계속됩니다. 김민규는 위, 아래, 그리고 양옆 등 모든 곳에서 들리는 끔찍한 층간소음으로 괴로움에 시달립니다.
김민규는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지만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결국 정신과의 조언에 따라 ‘동신아파트’로 이사를 갑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도 잠시, 곧 무녀의 주문과 ‘장군’이 보이기까지 합니다. 결국 김민규는 위층에 사는 무녀를 찾아가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김민규가 겪던 모든 일은 사실 ‘신병’이었던 것입니다. 무녀는 김민규를 구하기 위해 ‘굿’을 제안합니다. 목차의 ‘죽도록 스스로에게 시달리기’, ‘죽도록 이웃에게 시달리기’, ‘죽도록 귀신에게 시달리기’, ‘죽도록 무당에게 시달리기’…. 모든 과정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오래된 재회를 기다리며
『만조를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우리는 죽어가고 있었다.
_조예은, 『만조를 기다리며』
섬찟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만조를 기다리며』는 두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정해는 소꿉친구 우영이 만조의 바다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영의 고향 미아도를 20년 만에 찾습니다. 섬 한 가운데는 죽은 자의 소지품이나 뼈를 묻으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오래된 전설이 내려오는 ‘영산’이 있습니다. 이 영산의 전설은 사이비 종교 ‘영산교’의 탄생과 확장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우영은 영산을 관리한 산지기 집안의 딸로 태어나, 사이비 종교에 깊게 빠진 채로 자랐습니다.
친구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정해는 영산교의 본거지로 불리는 미아도에서, 우영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영산교로 직접 뛰어듭니다. 사이비 종교, 20년이라는 시간, 바다와 섬. 두 친구를 감싼 ‘낯선 것’ 사이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비밀을 만나보세요.
이상한 규칙이 있는 연구소
『한밤의 시간표』
정보라 작가의 연작 소설 『한밤의 시간표』는 연구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묶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직원들은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순찰 근무를 진행하게 됩니다. 연구소에는 조금 특이한 안전 수칙이 있습니다. 연구실마다 일일이 들어가면 안 되고, 문이 잠겨 있는지 확인해도 복도에서 들리는 기척은 무시해야 하고, 뒤돌아보거나 말을 걸지 말라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여기까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연구소는 일반적인 연구소와 다릅니다. 귀신이 들린 물건 등 정체불명의 물건을 보관하는 환청과 환영이 들리는 괴담의 공간입니다. 으스스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삶’에 대해 역설하게 됩니다.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연구소로 떠나보세요.
드라마 <악귀>의 주인공 구산영은 가난한 가정환경,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아르바이트와 공무원 공부 등으로 지친 상태입니다. 그런 구산영의 마음에는 “지들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무슨 불만이 이렇게 많아” 라는 식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죠. ‘악귀’는 그런 구산영의 마음에 뿌리내리며 점차 구산영의 육체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산영은 아름다운 드라마가 아닌 자기의 삶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를 쓴 김은희 작가는 매체 인터뷰를 통해 귀신보다 사람이 더 잘 보이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죠.
이처럼 모든 오컬트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낯설고 기괴한 ‘그것’의 이야기에서, ‘그것’과도 맞서 싸우는 강렬한 삶의 의지와 용기를 얻고 싶어 오컬트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