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재즈의 계절’이라고 한다면 가을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진득한 관악기 소리가 구현하는 농익은 멜로디를 듣다 보면 “정말 이래서 그렇구나” 싶은데요. 그렇다고 모든 재즈 음악이 가을을 닮았다고 단정한다면 너무나 아쉬운 말입니다. 세상엔 다른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재즈도 아주 많기 때문이죠. 오늘은 그중에서도 봄을 닮은 음악을 꺼내보려 합니다. 중후함 대신 화사한 매력으로,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그 안에 꽃을 피울 재즈 앨범과 노래를 소개할게요. 재즈를 잘 몰라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입문자를 기준으로 준비했으니 올봄을 재즈로 함께 맞이할 분들을 환영합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Stone Flower]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브라질 태생의 작곡가이자 보컬,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보사노바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죠. 그래미상을 받은 앨범 [GETZ/GILBERTO]의 ‘The Girl from Ipanema’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솔로 앨범 [Stone Flower]는 첫 트랙 ‘Tereza My Love’부터 ‘Brazil’까지 살랑거리는 사운드로 가득합니다. 은근한 리듬과 여유로운 분위기는 마치 봄에 박자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게 해요. 차가운 겨울에서 뜨거운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 같은 음악, ‘Stone Flower’로 마음을 찬찬히 예열해 보세요.
팻 매스니 그룹
‘James’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더이상 비가 와도 춥지 않고 포근한 날이 찾아옵니다. 조빔의 노래가 ‘깨어나는 봄’과 같았다면 이번 곡은 차분한 ‘봄비’ 같습니다. 팻 매스니는 미국의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입니다. 세계 3대 재즈 기타리스트란 명성의 소유자이기도 하죠. 그의 노래 중 가장 친숙한 건 역시 찰리 헤이든과의 앨범 [Beyond The Missouri Sky] 속 영화 ‘시네마천국’ 타이틀인데요. 그의 감성적인 기타 사운드에서 매력을 느낀다면 ‘James’를 꼭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봄비가 내리는 늦은 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마음까지 촉촉하게 젖어 드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에디 히긴스 트리오
[A Lovely Way to Spend an Evening]
봄에는 역시 경쾌한 피아노 소리를 빼놓을 순 없죠. 에디 히긴스는 미국의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2009년 작고하기 전까지도 원로 연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는데요. 이 앨범 또한 무려 2007년에 발매했습니다. 이는 ‘로맨스 4부작’ 시리즈 중 두 번째로, 대표적인 재즈 러브 송 50곡이 4편에 나누어 담겼습니다. 워낙 유명한 노래들이 실린 만큼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특히 [A Lovely Way to Spend an Evening]에는 ‘April in Paris’를 비롯해 달콤하면서도 신나는 멜로디의 곡이 많습니다. 앨범 커버도 참 사랑스럽고요. 따뜻한 날, 전곡을 틀어두고 봄을 만끽할 것을 추천합니다.
스탄 게츠/주앙 질베르토
‘It Might As Well Be Spring’
봄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재즈 곡을 고르라면 ‘It Might As Well Be Spring’를 꼽는 분이 많을 겁니다. 프랭크 시나트라, 엘라 피츠제럴드, 빌 에반스 등 숱한 뮤지션들의 선택을 받은 명곡이죠. 그중 미국의 테너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와 브라질의 기타리스트 주앙 질베르토, 두 사람의 버전을 소개합니다. 둘의 만남은 앞서 언급한 조빔의 참여 앨범 [GETZ/GILBERTO]로 유명한데요. 이 곡은 둘이 함께 발매한 라이브 앨범에 수록되었습니다. 주앙의 아내인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나른한 보컬이 노래와 무척 어울리고, 악기 소리와도 잘 어우러집니다.
취향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처럼 보이는 것도 가이드일 뿐이죠. ‘봄의 재즈’라는 이름을 붙여보았지만 어떤 분께는 다른 계절의 이름이 더 와 닿을 수 있고, 전혀 다른 노래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마음 속 봄의 재즈가 궁금합니다. 함께 나누며 취향의 세계를 넓혀볼까요? 만물이 깨어나고 새싹이 움트는 이 계절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봄의 기운을 가득 빌려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