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시네마’를 아시나요? 메타 시네마는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말합니다. 지난 데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 <썸머 필름을 타고>, <파멜만스> 등 처럼 우리가 보는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가 존재하는 것인데요. 이러한 메타 시네마 영화는 무려 1924년에 처음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1895)이 만들어지고 약 30년 만인데요. 버스터 키튼은 영화 속에서 스크린 안으로 뛰어 들어간 최초의 감독입니다. 영화라는 매체를 사랑하다 못해, 온몸으로 사유한 버스터 키튼을 소개합니다.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감독
버스터 키튼
버스터 키튼은 무성 영화 시대의 대표 감독이자 슬랩스틱의 대가로, 찰리 채플린과 비견되어왔습니다. 하지만 키튼은 영화를 만들었던 당시보다 오늘날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보드빌 무대에 서서 몸 쓰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이후 영화계에서 항상 위험한 곡예와 스턴트 연기를 했는데요. 그는 주위에서 만류할 정도로 위험한 곡예 연기를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해냈습니다. 또한 키튼은 채플린보다 비교적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어 더 밝고 유쾌하고 활동적인, 낙관적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키튼은 영화라는 예술 앞에서 채플린보다 몇 배는 더 순수했습니다. 채플린은 무언가 말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키튼은 오로지 영화를 위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채플린과 다르게 키튼은 동시녹음이 시작된 유성 영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 했습니다. 그는 육체적 코미디와 마이크를 동시에 연기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졌는데요. 그는 독립제작을 중단하고 대형 영화사 MGM과 전속계약을 맺어 편집권까지 박탈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MGM에서도 해고를 당하게 되죠. 그렇게 키튼은 할리우드에서 잊혀져가며 가끔 ‘몰락한 배우’ 역으로 얼굴을 비췄고, 여러 수모를 겪은 키튼의 명성은 그가 죽은 후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내러티브의 부재
키튼의 영화는 언제나 사랑을 말합니다. 그는 항상 영화 속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데요. 사랑을 성취하고자 하는 그에겐 항상 온갖 어려움과 고난이 닥칩니다. 데이트를 하다가 비가 내리고, 여자의 가족들이 반대를 하고, 집이 무너지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열차 레일을 넘어가야만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되죠. 그리고 키튼은 언제나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노동자로 등장하는데요. <일주일>, <이웃>과 같은 영화에선 그가 지나가는 곳곳마다 다른 노동자, 이웃들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키튼의 영화는 채플린과 다르게 일관되고 단조로운 이야기 구조를 지니며, 주제와 메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키튼은 시각적인 코미디, 몸짓과 재미, 볼거리를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키튼은 이야기도, 캐릭터의 서사도 아닌, 오로지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그 당시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를 위해 연기했습니다.
“채플린이 왜 그렇게 사회적인 문제를 영화에 끌어들였는지 모르겠어요. 영화는 오락입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죠. 나의 대표적인 작품인 <장군>,<항해자>, 스팀보트 빌 주니어>는 별 볼일 없는 한 젊은이가 용기와 기지를 발휘해 마침내 사랑하는 여자를 얻는다는 단순한 내용이죠. 대신 신기한 볼거리를 채워 넣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예를 들면 <스팀보트 빌 주니어>에서 푹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돌연히 집이 무너지는 순간 내가 창으로 무사히 빠져 나오는 장면등이 있겠네요. 이런 놀랄만한 아크로바틱 액션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죠.”
_버스터 키튼
버스터의 스턴트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들은 육성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감정과 이야기를 몸짓으로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특히 멜로, 갱스터 등 다른 장르보다 코미디 장르에선 더욱 몸 연기가 중요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채플린, 키튼처럼 무성 영화 시대 코미디 배우들은 몸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가 ‘버스터’라는 예명을 갖게 된 것도 넘어지고 떨어지고 돌진하는 그의 몸놀림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천부적 재능과 훈련으로 몸을 잘 다뤘던 키튼은 영화에서 몸이 닳도록 스턴트 연기를 했는데요. 건설 중인 다리와 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뛰고, 인간 도르래가 되어 거대한 선박의 갑판과 선실을 자유롭게 오갔으며, 아파트 1층에 놓인 전화를 받기 위해 높은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렸습니다. 또 자동차의 질주와 기차의 횡단, 바윗덩어리를 이용한 스턴트도 거뜬히 해냈습니다. 키튼은 마치 기계처럼 타이밍을 계산하고 정확히 몸을 움직였는데요. 이처럼 키튼은 관객에게 볼거리,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온 몸을 다했습니다. 어쩌면 그의 몸이 영화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죠.
“나는 단순한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연출된 장면 효과로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려 했어요. <제너럴>에서 추격전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내가 기관차에 탑재된 대포에 불을 붙여 적의 기관차를 겨냥하는데 이 순간 대포의 포신이 갑자기 주저앉아 오히려 내가 있는 기차를 겨냥하죠. 포탄이 발사되기 직전에 기관차는 커브에 접어들고, 수평으로 발사된 포탄은 정확하게 직선으로 날아가 적이 탄 기관차에 명중합니다. 다른 방향에서 내 의도를 따라오게 오게 하는 이러한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었습니다.”
_버스터 키튼
위대한 무표정
키튼은 그 어떠한 위험 속에도 무표정을 유지했습니다. 곡예와 스턴트를 하면서도 항상 무표정을 짓는데요. 그의 무표정은 주인공의 무감정을 의미합니다. 대사도 감정도 없고, 캐릭터도 없기에 관객은 오로지 그가 보여주는 곡예와 몸, 시각적인 것들에 주목하게 되죠. 그는 관객에게 오로지 희극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불우한 생 때문일까요? 어떤 고난이 온들 언제나 관조하고 덤덤한 그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오랜 무명 생활을 견뎌온 그의 의지, 그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을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해 온 영화에 대한 애정 또한 느껴집니다.
“나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섯 살 때부터 보드빌 쇼의 일원으로 있었죠. 그 거친 세계에서 일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유지할수록 웃음은 촉발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무표정은 나의 아크로바틱 액션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기계적 배열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행동과 사건의 배치는 모두 희극적이다”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_버스터 키튼
영화에 대한 영화
키튼은 영화와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매우 사랑했는데요. 그런 그답게 영화 그 자체가 주제가 된 작품이 있습니다. 1924년작 <셜록 2세>는 최초의 메타시네마 영화로, 키튼이 시골 극장 영사 기사로 등장합니다. 그는 좋아하는 여인과 사랑이 잘 풀리지 않던 중 영사실에서 잠이 드는데요. 꿈속에서 키튼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스크린 안으로 들어갑니다. 현실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키튼은 영화 안에선 유능한 탐정이 됩니다. 키튼은 어려운 문제들을 척척 풀어내며 사랑도 쟁취하는데요. 그리고 꿈에서 깨어 영화 밖으로 돌아온 키튼은 용기를 얻고 여인과 사랑하게 됩니다. <셜록 2세>에서 키튼은 우리의 삶, 관객에게 영화란 어떤 존재인지 주목합니다. 영화와 관객 사이에 간극이 있음에도 우리는 영화로부터 긍정과 낙관의 힘을 얻을 수 있음을. 키튼이 영화로부터 용기를 얻은 것처럼, 키튼의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또한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버스터 키튼은 영화를 위해 자신의 몸과 표정을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스크린 안에 몸을 던져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오랜 무명의 시간에도 위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영화 제작을 멈추지 않은 버스터 키튼. 그의 무한한 영화 사랑이 느껴지는데요.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사소한 몸짓, 움직임, 건물과 물건들 단 한가지도 키튼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키튼 뿐만 아니라 관객을 생각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영화인들이 있었기에 영화가 지금까지 현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대부분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한번 즐겨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