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인사를 쓰는 지금이 새삼스럽습니다.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지면과 묵묵히 읽어 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기쁨이 됩니다. 효율을 다그치는 세상에 글의 유익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요. 읽고 쓰는 직업을 가진 뒤로 발신하는 모든 글의 효용을 고민하지만, 이 지면에서만큼은 손가락 끝에 힘을 뺀 채 진솔하고 싶습니다. 때때로 어긋나고, 무용하고, 또 부족하겠지만, 이 불완전한 여정마저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줄 거라 믿습니다. 나의 글은 몇 년째 이토록 투박한 반면, 놀랍도록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이지요. 인간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인공지능은 재빠르게 완결된 글을 써냅니다. 심지어 인간의 창작물과 흡사한 형태로요. 인간을 묘사하는 기술에 맞서 창작자는 여전히 고유할 수 있을까요.
대범한 척하지만, 사실 두렵습니다. 특정 제품 소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여러 자료를 학습하고 쓰는 과정을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앞서 발행된 에세이를 챗GPT에게 학습시킨 뒤, 비슷한 주제의 에세이를 써 보라고 한다면 지금 이 글보다 더 근사한 글이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런데 이 글이 챗GPT로 쓰이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으신가요?). 진부한 말이지만, 인간의 창작과 노동을 대체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글은 물론 그림, 사진, 영상을 만들어 주는 것을 넘어 완전한 목소리로 ‘말’까지 만들어 주지요. 10년 후 사라질 직업과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기술이 경고등처럼 깜빡입니다. 많은 이가 고도화된 인공지능을 피할 수 없으니, 이를 ‘똑똑하게’ 활용하는 것의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편리함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잃어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기술은 정교해지고, 사람들은 어떤 번거로움을 기술에 이양합니다. 그 편리함에 길들여지다 보면, 비효율 속에서 얻게 되는 우연한 가르침을 잃게 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식을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행위가 ‘검색’으로 대체된 것처럼요. 이후에는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는 상태에 놓입니다. 키워드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게 됐지만, 현상의 맥락이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은 덜 사용하듯 말이죠. 기술의 고도화가 두려운 것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 기술에 기대어 비효율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고유함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분명한 것은 매끄러운 인과관계 속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별안간 솟아난 생각을 연결시키고, 변덕스럽게 분해하고, 때론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고유해지죠. 도리어 인간의 비정형성이 반짝이는 창작의 원료가 되는 거예요.
기계는 확신합니다. 자신에게 학습된 정보가 ‘참’이라고 생각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인공지능에 맞서야 한다면 기술이 묘사하지 않는 ‘불완전함’을 고집해야 해요. 우리는 기계보다 느리고 정보량도 턱없이 적은 수준이겠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연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이 기술의 발전을 상회하는 역량이라니. 무엇을 지켜내야 할지 선명해집니다. 비효율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길, 틀릴 수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길, 우리의 불완전함을 축복이라 여길 수 있길.
- 우리 자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각자 고유하고 특별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 시간 속을 이동하면서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다는 점일 것이다._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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