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의 공간 속
김수자의 성찰적 세계

김수자의 호흡으로
바라보는 자아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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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두 거인이 파리의 중심에서 만났습니다. 바로, 안도 타다오가 재건축한 공간인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에서 김수자의 대표작 “호흡 — 별자리(To Breathe — Constellation)”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피노 컬렉션은 김수자를 ‘라 꺄르트 블렁슈(La carte Blanche)’의 권한으로 초대하여 작가가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작가가 국제 무대에서 얼마나 높은 수준의 신뢰와 존중을 받고 있는지 체감하게 합니다. 다년간 여러 공간에서 선보여 온 “호흡”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적 탐구와 결합하여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마치 숨처럼 잡히지 않고 심연처럼 깊은 세계를 형상화하여, 상징적이고 성찰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공간의 감각적 변화와 완전한 몰입으로 존재에 대해 성찰하는 김수자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펼쳐진 모두의 우주
“호흡”

(좌) “호흡 — 거울 여인”, 2006. 이미지 출처: 김수자 공식사이트, (우) “호흡”, 2023. 이미지 출처: Galeries Lafayette
(좌) “호흡 — 거울 여인”, 2006. 이미지 출처: 김수자 공식사이트, (우) “호흡”, 2023. 이미지 출처: Galeries Lafayette

김수자는 주로 정체성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삼습니다. 특히 동양철학에서 영향을 받아 빛과 공기, 영적인 생각처럼 비물질적이고, 우리의 삶처럼 덧없는 것들을 표현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거울과 빛을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요.

2006년 마드리드 크리스탈 궁전(Palacio de Cristal)에서 선보인 “호흡 — 거울 여인(To Breathe — A Mirror Woman)”은 바닥 전체를 거울로 덮고, 건물의 유리창에 반투명한 회절 필름을 부착했습니다. 이로써 공간 전체에 빛의 반사와 화려한 스펙트럼을 만들어 냈습니다. 빛과 공간 그리고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작업이었지요. 건물이 거의 유리 구조로 되어있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며, 투명함과 역동적인 에너지가 증폭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작가 자신의 호흡소리를 녹음한 청각적 요소까지 더해져, 마치 공간과 내 몸이 일체화되어 더 큰 우주와 교감하는 듯한 경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2023년, 파리의 라파예트 갤러리(Galeries Lafayette)에서도 “호흡”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지극히 상업적이고 번화한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성찰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천장 돔을 통해 여과되는 자연광과 찬란한 빛의 스펙트럼에 방문객들은 금세 매료되었지요. 물론, 백화점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붐비는 인파와 소음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빛에 오롯이 집중하며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행위만으로도 작가가 의도한 명상적 경험, 바로 ‘호흡’을 하는 것이지요.

“호흡 — 별자리”, 2024. 동영상 출처: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작가는 이렇게 빛, 거울, 소리와 같은 단순한 요소들만을 사용하여 우리가 살아있음을 감각적으로 일깨워줍니다. 현재 파리 피노 컬렉션에서 세상의 격동과 격변을 주제로 한 ≪Le monde comme il va (흘러가는 대로의 세상)≫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미술관의 메인 원형 홀인 로통드(Rotonde)에서 김수자의 “호흡 — 별자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바닥을 덮고 있는 거울의 표면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단지 바닥에 거울만 깔았을 뿐인데, 유리 돔의 하늘이 마치 심연처럼 반전된 세계 가운데에서 우리는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둥둥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뾰족한 바늘처럼 서있는 것 같기도 하지요. 다만, 작가의 “호흡”이라는 과거 일련의 프로젝트를 모른다면, 거울과 호흡의 상관관계에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는 과거 전시에서 호흡 소리와 함께 감상한 적이 있다면, 이 공간에서는 몰입의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수자의 호흡이란 무위(無爲), 즉 무언가를 하려는 어떠한 의지나 의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라고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응축된 개인의 우주
“보따리”

보따리
이미지 출처: Magasin3

작가는 평면에 대한 물음으로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면서 우주적인 에너지를 느꼈다고 합니다. 손끝이 바늘 끝과 연결되고, 바늘은 이불보와 만나며, 이불보를 감싸는 실의 지속적인 움직임이 일종의 순환하는 우주처럼 다가왔다고 합니다. 또한, 이불보는 우리가 나고 사랑하고 때로는 고통받고 죽어가는 삶의 틀이라고 말합니다. 작가의 말처럼 이불보가 삶의 틀이라면, 삶이라는 평면 위에서 터벅터벅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의 모습은 바느질과 참 닮아있습니다.

“보따리”, 2024. 이미지 출처: Pinault Collection
“보따리”, 2024. 이미지 출처: Pinault Collection

그의 이불보가 3차원화된 것이 바로 “보따리”입니다. 생활에 필수적인 살림살이를 이불보에 싸서 둥글게 감싼 형태가 보따리죠. 이는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보따리를 이고 가는 이주민이나 피난민들의 움직임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전통 문양이 그려진 보따리에서 왠지 모르게 느껴진 응어리는 이 전시장에서 필자와 같이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보따리 안에는 개인의 짐과 함께 한 시대의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기억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는 나의 짐이면서 동시에 같은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는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짐이기도 한 것이지요.

필자는 “호흡”을 펼쳐진 모두의 세계, “보따리”는 응축된 개인의 세계라고 일컫고 싶습니다. “호흡”은 우주의 중심에서 나를 인식하게 했다면, “보따리”는 내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깥에 놓이게 되죠. 결국 두 프로젝트의 차이는 ‘거대해진 우주를 안에서 내다보느냐, 작아진 우주를 밖에서 들여다보느냐’와 같이 시선의 방향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라는 우주를 발견하기 위한 성찰이라는 점은 같겠지요.


김수자와 안도 타다오의
합일된 우주

이미지 출처: Pinault Collection

영롱한 무지갯빛으로 가득한 공간 안에 있다면 잠시 현실을 잊고 진정으로 무아(無我)와 무위(無爲)의 상태에 빠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에 반해 프리즘 효과 없이 담백하게 표현된 피노 컬렉션의 “호흡”이 혹시 심심하게 느껴지시나요?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안도 타다오가 재건축한 로통드와 상호 공존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18세기에 건축되어 본래 상업 거래소였던 이곳의 현재 모습은 2017년 안도 타다오와 여러 건축 스튜디오가 함께 대대적인 재건축을 진행한 결과입니다.

메인 홀인 로통드에는 안도 타다오 특유의 절제와 단순함의 미학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원 안에 원을 그려 넣었습니다. 순환과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역사를 간직한 기존의 원형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안에 이후 역사를 계속 이어갈 새로운 원형 홀을 만들었죠. 그리고 유리 돔을 관통하는 태양 빛은 마치 우주의 순환 시계처럼 시간과 계절마다 다르게 변화하는 공간을 완성합니다.

안도 타다오의 공간 속 김수자의 호흡은 본디 하나의 우주였던 듯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무지갯빛 대신 자연 그대로의 태양 빛이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고 이내 바닥 아래 더 깊은 심연을 통과합니다. 우리는 그저 하늘과 심연 사이 가느다란 축으로서 존재한 채, 무한히 펼쳐진 공간과 나 자신을 인식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텅 비워진 공간은 시차를 둔 두 예술가의 비물질적인 대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눈은 앞을 바라보고 마음은 위를 지향하며 걷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두 발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곤 합니다. 김수자는 이런 우리에게 바닥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자아와 상실된 방향감각을 깨닫게 합니다. 이러나저러나 무한히 펼쳐진 우주 속에서 열심히 헤매며 살아 가지만, 때로는 겨우 한 보따리 크기의 공간을 우주라 믿으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무상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따리 안에서 걷는 이의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둥근 보따리 하나가 또 보이네요. 우리는 보따리 속을 걷는 존재일까요, 보따리를 이고 가는 존재일까요? 이것이 바로 김수자가 던지는 무한의 굴레와 같은 존재와 세상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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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

파리에서 방랑 중인 예술가.
단 하나의 색이 아닌 그라데이션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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