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도쿄 방랑기
고가 철도와 도시의 힘

복잡한 고가 철도에 드러난
도시의 서늘한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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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양평에서 잠깐 지냈던 4년의 시간을 제외하면 서울이 모든 생활의 중심지였는데요, 그중에서도 사대문은 생활 권역의 모든 분야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를 나가면 자연스레 서울과 비교하게 됩니다. 대형 빌딩과 회사가 밀집되어 있고, 주변에 기념비적인 문화재가 있으며, 서민 친화적인 식당들이 모여 있다면 ‘여긴 광화문이랑 비슷하구나’라는 식입니다. 이런 이유로 도쿄는 필자에게 최고의 여행지였습니다. 서울과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경험에 대입해 풍경을 해석하기에 용이했거든요. 미묘하게 다른 지점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풍경들은 서울과 너무 달라서 낯설었는데요, 지하철과 고가 철도 특히 그랬습니다. 도시의 서늘한 생명력이 가득했지요. 이번 아티클은 서울 토박이이자, 도쿄 여행 2회차인 필자의 시선으로 본 도쿄의 지하철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사진 지정현


휘청거리는 도시의 풍경

우에노역

이번 여행도 우에노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한국의 2호선처럼, 주요 지역을 오가는 야마노테선이 다니기도 하거니와, 도시의 느낌이 강북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우에노는 저녁에는 직장인들이 분주히 오가고, 밤이 깊어 질수록 골목에는 술집과 유흥 시설이 성황을 이룹니다. 주말에는 우에노 공원과 동물원을 찾는 인파들로 북적이는 곳이기도 하고요. 시간에 따라 풍경이 바뀌는 모습이 재밌는 동네였습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고가 철도 아래의 풍경들이었습니다. 도쿄의 전철은 밖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여러 노선이 교차하는 곳일수록, 교각 위로 철도가 뻗어 있고 그 아래에 저렴한 술집과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지요. 밤이 깊어지면 고가 철도 아래 풍경은 술에 취해 휘청 거리는 취객들로 떠들썩해 집니다. 날이 따듯해져서 도로에 상을 펼치고 잔을 부딪히고, 여기 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립니다. 도시 사람들이 봄을 즐기는 방법은 서울이나, 도쿄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용함과 겸손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긴다고 알고 있어 한국인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역으로 향하는 샐러리맨들이나, 시끄럽게 떠들며 거리를 배회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던 이유입니다. 물론 토킹 바 같은 업소 직원들이 버젓이 호객하는 모습은 놀라긴 했지만요. 이것도 서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상보다 적극적인 호객 행위에 당황해 얼른 골목을 나와 역으로 돌아갔습니다. 고가 철도마다 달라지는 모습들을 눈에 가득 담으면서요.


철도의 나라

고가 철도가 많은 이유

“도쿄 지하철 엄청 복잡해. 구글 지도 꼭 보고 다녀.” 일본 여행을 자주 가는 지인이 해준 조언입니다. 지인의 말대로 도쿄 지하철은 서울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컸습니다. 역만 해도 280개입니다. 가장 크고 복잡하다는 신주쿠역의 출구는 159개이고, 지나가는 JR 노선만 16개이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가시나요? 필자는 신주쿠역에선 출구 찾기를 포기하고, 구글 지도에 눈을 콕 박은 채 걸어 다녔습니다.

도쿄 지하철이 이렇게 복잡한 이유는 철도를 운영하는 주체가 각기 다르기 때문인데요, 가장 큰 JR그룹이 소유한 JR동일본 노선과 도쿄메트로, 그 이외의 사설 철도들이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마다 보유하고 있는 노선의 가짓수도 다양하고, 회사의 수도 노선의 이름만큼 있지요. 지인은 또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헷갈리면 네모랑 동그라미만 기억해.” 네모는 JR 노선이고, 동그라미는 사설 노선이니, 교통비 아끼려면 구분해서 타야 한다는 말이었지만, 쏟아지는 인파와 복잡한 출구를 헤매다 보면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도쿄의 고가 철도가 많아진 것도 사철의 확장과 연관이 깊다고 합니다. 사설 철도들이 점진적으로 철도 개발을 진행하면서 지하화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가 철도화를 선택하게 된 것이지요. 1960년대에는 일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도쿄 외곽의 개발도 박차를 가하게 됐고, 고가 철도 또한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빌딩 사이로 지하철이 달리는 이색적인 풍경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국내에서 고가 철도는 도시 미관을 해치고, 소음이 크기 때문에 선호되는 개발 방식은 아닙니다. 서울 지하철 대부분이 지하로 다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면, 도쿄에선 철도 바로 옆에 단독 주택이나 오피스텔이 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도쿄는 철도가 먼저 개발되고, 그 이후에 주변 도심이 확장되는 식으로 도시가 개발됐기 때문에 고가 철도와 소음이 큰 불편 요소는 아니라고 합니다. 사는 곳을 선택하는데 먼저 고려되는 옵션이 아닌 것이지요. 거주지에는 응당 있어야 하는 풍경이니까요.

고가 철도가 가지는 이점도 있습니다. 도쿄는 서울보다 도로 사정이 복잡해 지하철 다음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버스가 아닌 자전거인데, 철도 아래 공간에 자전거 보관소나 공영 주차장을 설치해 부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이용자는 좀 더 편리하게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주거지 근처 고가 철도에는 자전거 보관소, 업무 지역이나 유흥 거리 고가 철도에는 저렴한 술집이나 식당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도시가 발전하는 방법에 따라 고가 철도 아래 공터 활용 방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도시의 부산물이 떨어진 자리

우구이스다니역

지하철은 도시가 사람들의 보여주는 광경과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논리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도시의 지하철은 평일 아침엔 주거 지역에서 업무 지역으로 직장인들을 운송하고, 점심에는 여행객들을 싣고 관광지로 달립니다. 저녁에는 도시의 밤을 빛내는 중심지로 사람들을 데려다주고요. 주말엔 도시의 외곽으로까지 뻗어 나가 위성 도시까지 영향력을 끼칩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지하철이 발달한 정도가 해당 도시의 생활 양식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처음 도쿄에 떨어져 우에노역에 도착했을 때, 머리 위로 뻗은 고가 철도가 신기했습니다. 옛 청계천에 있던 고가 도로나, 성수동의 상징과도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의 고가 도로는 하나의 객체인, 개별의 자동차들이 지나가지만, 도쿄의 고가 철도는 지하철이란 응집된 힘이 흘러가는 것이니, 더욱 거대한 존재처럼 다가왔습니다.

도시의 지하철은 어디로든 뻗어 있습니다. 도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업무 중심지와 관광지, 대학생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 명품 브랜드가 늘어서 있는 쇼핑 거리 등등… 그리고 도시의 외곽으로 물러난 소득이 적은 지역으로도 지하철은 달립니다. 그곳으로 가는 여정에는 조그마한 거주 지역들도 있는데, 이번 역은 부유하더라도, 다음 역은 가난하곤 합니다. 지하철에 올라 역을 지나치는 건, 도시의 물질적인 고저 차를 체감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에 묵은 숙소는 우구이스다니 역 근처로, 주변엔 러브호텔촌이 있고, 사람들이 걷는 도로 옆으로 철도가 달리는 동네였습니다. 치안이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라, 밤만 되면 경찰들이 방범봉을 들고 돌아다니고, 노숙자들이 먹다 남긴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오줌 지린내도 났습니다. 도쿄 중심지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오래된 구도심이 가진 스산한 분위기도 풍겼습니다.

도쿄의 중심지 밖에 위치한 고가 철도 아래에는 도시의 부산물이 부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심지로 가지 못한 처연한 흔적들이 철도 아래 모여 굴러다니는 것이지요. 우에노역에서 느낀 힘과는 전혀 다른, 음울함이었습니다. 생기가 넘치기보다는 생활의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여행자에게도 현실 감각을 되살리게 했거든요. 도시의 부유물은 서울에도 존재합니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1호선’이라는 말에 눌어붙어 있는 퀴퀴한 냄새가 그것이 아닐지 생각했습니다. 도쿄의 고가 철도는 그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노출되어 있는 힘

오차노미즈역과 히지리바시

서울 시내에도 고가 철도가 존재합니다. 경인선의 몇몇 구간이나 2호선의 당산역, 3호선 옥수역 등이 떠오르는데요. 그런 곳들을 제외하면 서울의 지하철들은 모두 지하로 달립니다. 도쿄에 비하면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요. 그래서 서울의 지하철은 조용하고, 외관상 깔끔합니다. 이따금 한강 위로 달리는 철도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지요.

달리 말하면, 서울의 힘은 우리 생각보다 아주 조용하게 뻗어 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을 품은 채 우리의 발밑에서 은밀하게 모이고 다시 흩어집니다. 전철에 몸을 실어도 하나의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전자 노선도 위에 번쩍이는 불빛처럼, 점과 점 사이를 오고 가고 있다는 이동의 감각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반면 도쿄는 그 힘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오차노미즈에서 아키하바라로 걸어가는 길에 맞이한 히지리바시 다리는 <스즈메의 문단속>의 하이라이트 신에 나왔던 곳으로, 마루노우치선과 츄오선 2개 노선이 교차하는 풍경으로 유명합니다. 강 위로 뻗어 있는 교각들은 고가 철도를 단단히 받치고 있고, 그 사이에 플랫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플랫폼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위로 다른 고가 철도가 있어 철도가 얽혀 있고, 아래로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나온 검은 터널이 금방이라도 전철을 뱉을 듯이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는 탑승객들과 철도, 그걸 받치고 있는 역 건물에서 뻗어 나온 교각과 터널.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도시의 힘을 목도한 것 같았습니다. 그 힘이 너무나 생생해 압도당했죠. 지하에 몸을 숨긴 채 점과 점 사이를 헤아릴 뿐이던, 서울 사람에게 여기저기서 뻗어 나와 묶여 있는 고가 철도는 생경한 모습이었을뿐더러, 도시가 숨긴 힘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 교각과 건물 사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전철에 오르고, 전철은 철도를 따라 벨을 울리며 출발합니다. 그 아래 다른 노선의 전철이 쌩 하고 지나가고요, 또 그 아래 철도에선 전철이 가로 질러 달립니다. 철도와 전철의 교차점에서 건질 수 있는 건, 사람을 싣고 나르는 도시의 물리적인 힘 뿐이었습니다. 그 힘 앞에선 사람은 너무나 무력해지고요. 스스로 만든 힘에 제압 당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의 지하철도 땅에서 드러내 지상으로 올린다면 이런 풍경일까요. 그렇다면, 저는 되도록 지하철이 땅에 묻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은 터널은 언제라도 비명을 지를 것처럼 짙은 어둠을 토해내고 있고, 시커먼 강물 위로 철로와 교각이 뒤엉켜 있는 풍경은 도시가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무형의 폭력 같았거든요. 누군가는 질서 정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고가 철도 아래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풍경에선 도시의 손아귀에 사람들이 꽉 붙들려 있다는 상상을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서울도 발아래 묻혀 있을 뿐 똑같을 겁니다.


도시는 하나의 객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고도 하고요. 그러나 ‘도시는 객체이며, 생명이다’라는 명제는 가끔 도시인의 서사를 지워 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용이하기도 합니다. 개발과 발전을 위해선 도시를 큰 단위로 보는 게 이론을 적용하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도시에 존재합니다. 전철에 올라타 서로 몸을 부대끼며 도시를 움직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도쿄의 고가 철도가 보여준 풍경들은 필자가 외면한 서사였습니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구조물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전철의 모습은 징그럽도록 생생한 생명력을 내뿜었습니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인디밴드 쏜애플(Thornapple)의 노래 ‘서울’ 속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수없이 나를 스쳐 간 어떤 이에게도 먼저 손을 뻗어 준 적이 없었네. 우리는 결국 한 번도 서로 체온을 나누며 인사를 한 적이 없었네’.

이 가사를 곱씹고 나니, 마음 한편에 ‘우리는 도시에게 힘을 빌리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한다’는 감상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하철을 탈 때, 지상을 떠올립니다.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고, 어떤 논리로 흘러가고 있는지 천천히 되뇌게 됐습니다. 도시의 힘은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는 걸까요. 그건 스스로 만든 구속일까요, 결집일까요. 아니면, 파편화 일까요. 하여튼 필자는 오늘도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출근은 해야 하잖아요.


Picture of 지정현

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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