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께 단상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자리에 앉아 타이핑을 시작하기 전까지 무작정 걸었습니다. 오늘은 볕이 더 뜨겁더군요. 높아져만 가는 도심의 낮 기온. 도로 곳곳을 채운 나무들은 기지개 켜듯 가지를 뻗고 잎을 펼쳤습니다. 멀리 서 본 나무는 활엽수의 넓고 뾰족한 잎처럼 단정하게 자라나 있습니다. 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지를 뻗는 숲속의 나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요. 제게 쏟아지는 빛을 온전히 받아내는 가로수와 숲속의 나무 중 어떤 생명이 생존과 성장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언젠가 숲을 이뤘을 ‘선택받은’ 소수의 나무가 듬성듬성 거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허락된 일정 부분의 대지와 충분한 광합성을 통한 양분, 경쟁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까지. 가로수야말로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이죠. 그런데 이 나무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딘가 생기 잃은 표정이 눈에 띕니다. 건물 벽면과 맞닿은 나무는 숭덩숭덩 잘려 네모난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고 수피는 메말라 있습니다. 반면 숲에 사는 나무는 어떨까요. 다양한 나무 종이 뒤섞여 살아가는 만큼 도심에 비해 경쟁이 치열한 편입니다. 큰 나무 아래 사는 작은 나무들은 그늘을 견뎌야 하고, 한정된 땅의 양분을 나눠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환경은 제약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숲에 사는 나무의 지혜가 됩니다. 이들은 번성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함께하길 선택했습니다. 홀로 생존하는 것보다 함께했을 때의 이점을 알기 때문이에요. 나무가 군락을 이루면, 상당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습기를 유지해 변화무쌍한 기후에도 대비할 수 있지요. 뿌리로 연결된 나무들의 커뮤니티에 다양한 메시지가 오가고, 생존에 필요한 정보가 누적됩니다. 심지어 이웃 나무가 아프거나 굶주릴 때면 자신의 양분을 나눠준다고 해요. 내 곁을 채운 나무의 안녕이 나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음을 수 세대에 걸쳐 학습한 거예요.


반면 인류는 어떤가요. 나의 영역을 확보하고 지켜내는 것에 급급하지 않던가요. 목적 없는 친절과 다정이 낯선 가치가 된 시대. 사람들은 무례한 타인 앞에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페르소나를 덧입습니다. 누군가는 다정을 얕잡아 보며, 친절에 냉소하지요. “그렇게 살다간 모두 너를 이용하려 할 거야.” 괴담 같은 말이 너울댑니다. 부드러운 것은 약하지 않습니다. 잘 휘어져도 쉽게 부러지지는 않죠. 오히려 이리저리 구부러져 무엇이든 동그랗게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이 ‘포용’은 나무처럼 생존에 유리하고요. 믿지 못하겠다면 당신의 현재를 떠올려 보세요. 그 누구의 현재도 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성과를 만들었건, 어떤 행복을 누리건. 홀로 완전함을 일구는 것은 불가합니다. 애초에 내 몫의 양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이웃한 나무가 나의 성장을 도와 자라나듯, 미처 헤아리지 못한 개입이 현재라는 기적을 만듭니다. 이제 행운처럼 주어진 에너지를 다시 사용할 때입니다. 오직 나를 위해 사용할 건가요. 아니면 공생을 택할 건가요?


최근 제게 일생일대의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개인 작업물을 소재로 전시를 기획한 것이었죠.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아득히 두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전시를 앞둔 며칠간 정신과 신체 모두 혼란한 저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어요. 모든 것을 혼자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컸지요. 그때 동료는 제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우리가 커버해 줄게.” 서로 다른 필체의 손글씨 안내문을 내려다보며 누군가 곁에 있다는 감각을 깨닫습니다. 그 전시는 물론, 나의 현재 역시 온전히 홀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럴 테죠. 냉소보다 친절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자명합니다.


  •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_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ANTIEGG에서
예진 드림.
Feel the Vibration!

진정한 문화예술 경험에서 오는 전율,
규격화된 세상에 타격을 가하며 느껴지는 진동.

ANTIEGG에서 지금 바로 느껴보세요!
ANTIEGG
editor@antiegg.kr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100-76 

Picture of 현예진

현예진

비틀리고 왜곡된 것들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