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지속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 건축에 대하여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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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여의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한강, 공원, 고층빌딩 등 다양한 요소가 연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의도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국회의사당이라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에메랄드빛의 둥근 돔 지붕으로 덮인 이 건물은 한강 변의 경관에서 중요한 조망점 역할을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민주주의의 시작과 지속을 알리는 국가적 정체성이 담긴 기념비적 건축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건축계 전문가들에게는 최악의 건물로 꾸준하게 혹평받는 오명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그 이유에는 폐쇄적인 입지, 한국적이지 않은 외관 등 다양한 문제가 거론되며, 이는 당시 정치권력의 강압적인 의견이 투영된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국회의사당은 어떤 형태와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을까요? 해외의 우수한 국회의사당 건축을 함께 만나보시죠.


노먼 포스터
– 베를린 국회의사당

독일이 처음 통일된 1871년 이후에 국회의사당 건립이 추진되었습니다. 여러 절차를 걸쳐서 최초의 국회의사당은 1894년에 완공되었고, 이는 당시 독일제국의 위엄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죠.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고, 국회의사당 또한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재통일 이후 국회의사당 재건이 이루어졌고, 199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었죠.

베를린 국회의사당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설계는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하이테크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르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죠. 그가 국회의사당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은 ‘개방성’입니다. 시민에게 항상 열려있는 의회를 상상하며 말이죠. 그는 기존의 육중하고 권위적인 형태로 구성된 돔을 투명한 유리 돔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 돔을 따라 계획된 나선형의 전망대를 통해 시민들이 베를린의 360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죠. 즉, 유리 돔을 통해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국회의사당
이미지 출처: fosterandpartners

전망대의 역할을 하는 돔의 하부에는 회의장이 위치하고, 돔과 회의장 사이는 투명한 유리로 마감되어 서로 시각적인 교류가 가능합니다. 이 또한 개방성을 중시한 건축가의 중요한 설계 요소이지요. 개방된 회의장을 통해 정치의 투명함, 공정함을 보여주게 됩니다. 회의장 상부에 시민들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국민이 정부 위에 있으면서 이를 내려다보는 개방된 민주주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베를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국회의사당은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중요한 여행지로 자리 잡으며 관광의 효과도 함께 얻게 되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 찬디가르 국회의사당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찬디가르에 현대적인 도시를 건립할 계획을 세웁니다. 도시의 마스터플랜은 세계적인 건축가로 활동하던 르 코르뷔지에가 맡게 되었죠. 당시 인도의 초대 수상이었던 네루는 인도를 상징할 수 있는 도시와 건축물을 설계할 것을 요청합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국회의사당을 포함하여 대법원, 예술학교, 미술관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 할 수 있게 되었죠. 특히, 해당 시기에 그는 도시계획에 관한 높은 관심으로 많은 이론과 설계를 연구하던 중이었기에 그의 건축적 역량을 마음껏 뽐낼 기회였습니다. 특히, 국회의사당은 찬디가르 도시계획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로 꼽힙니다.

찬디가르 국회의사당
이미지 출처: flickr

르 코르뷔지에는 국회의사당을 설계할 때 ‘상징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건물이 들어서는 신도시개발 프로젝트에서 국회의사당이 취해야 할 형태는 더욱 상징적인 형태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그는 독특한 조형을 통해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러한 시각적 인식은 곧 시민에게 공공성으로 연결지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후반부에 더욱 과감하고 조형적인 이른바 탈모더니즘의 양상이 보이는데,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그러한 성향을 더욱 강하게 표현할 수 있었죠.

찬디가르 국회의사당
이미지 출처: dezeen

정사각형에 가까운 평면이 만들어낸 외벽은 반복적인 형태로 체계를 갖춘 형식을 보이지만, 그 내부는 자유로운 동선과 공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가 꾸준히 주장해 온 ‘건축적 산책’이라는 개념 역시 반영되었고, 의원들이 자유롭게 걷다가 마주치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하죠. 유기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내부공간은 마치 숲 속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지붕 상부로 돌출된 공간의 내부는 회의장입니다. 독특한 형태로 감싸진 회의장은 웅장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렇듯 그는 기존의 딱딱하고 경직된 국회의사당이 아닌, 형태적으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국회의사당을 탄생시켰습니다.


루이스 칸
– 다카 국회의사당

방글라데시의 국회의사당은 수도인 다카에 위치하며, 다카 국회의사당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의 대표작이자 유작이기 때문이죠. 이 건물은 설계부터 준공까지 무려 20년가량이 소요된 대형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빛의 건축가라 불리는 그의 명성에 맞게 자연광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는 방식과 그에 따른 공간의 분위기가 매우 독특하면서도 아름답죠. 또한, 기하학적 요소를 통한 디자인을 선호하던 그가 미국에서는 좀처럼 선보일 수 없었던 그의 철학을 온전히 담아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의뢰를 했지만, 그는 바쁜 일정 탓에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루이스 칸이 설계를 맡게 된 일화도 있습니다.

다카 국회의사당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다카 국회의사당의 가장 특징적인 공간은 기도실(모스크)입니다. 루이스 칸은 의회건물에 종교시설인 기도실을 함께 계획하였습니다. 그는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종교적인 생활방식을 살펴보고 이를 공공기관인 의회에 녹여내기로 한 것이지요. 의회라는 단어에 국민의 사회적 참여가 적용될 때에 비로소 정신적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깨달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하학과 빛을 이용하는 그의 디자인 방식은 기도실과 의회가 혼합된 독특한 용도와 만나서 더욱 새롭고 경이로운 공간을 탄생시킨 셈입니다.

다카 국회의사당
이미지 출처: archdaily

내부는 기둥 대신 조형적인 벽체가 구조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삼각형과 원형 등 다양한 도형의 형태가 삽입된 벽체의 병치는 그 자체로 생경한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압도적인 규모는 국회의 위엄을 상징하기에 적합하지요. 특히, 벽체의 사이로 불규칙하게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가 연출하는 공간은 건축가의 의도를 더욱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다소 거대하게 설계된 구조물은 단순히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나 공간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방글라데시의 뜨거운 일사량, 우기시의 강우량 등을 세심하게 고려한 결과이지요. 당시 만연한 모더니즘 건축은 세계적인 보편성을 강조하였고, 이에 반대하여 지역의 기후적 특징을 반영하였다는 것도 주목할 점입니다.


국회의사당은 의원의 활동과 의회의 기능을 수용하는 시설입니다. 의원은 국민을 대표하여 다양한 의정활동을 펼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국가의 민주주의와 민권이 지속됨을 상징하는 건축입니다. 그만큼 국가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은 건축이라는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국회의사당이 비판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건립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의 정치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사당 건립을 추진하는 시점에서 최초의 계획은 남산에 자리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사쿠데타 등의 이유로 무산되었고 이후에 경복궁, 종묘, 삼각지 등 수많은 입지 후보가 거론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주요한 과제였던 여의도 개발과 맞물려 최종적으로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재의 모습은 건축가의 초기 계획안과는 상당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정치계 인사의 입김이 과도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건축가의 디자인을 비판하며, 서양식의 돔을 얹고, 규모를 더 키우도록 압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체성이 모호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듯한 건축양식을 띤 형태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지금의 국회의사당이 아름답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의도와 더 어우러지고, 우리나라를 상징하기에 더 적합한 모습은 어떤 것일지 한 번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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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글을 짓고, 집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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