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있는 성장이란 불가능할까요? 더 나은 미래 혹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수록 우리 사회는 중요한 가치들을 잃어버리며 위태로워집니다. 풍요로움의 이면에 드리워진 그늘 속에 갈등과 불평등, 대립과 혐오가 만연해졌습니다. 그리고 환경 문제 또한 마치 빠른 성장의 종속절처럼 우리 사회의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이러한 현대사회에 아름다운 경고를 보내는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을 넌지시 펼쳐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에 직면한 불균형의 문제를 일깨워주며,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성찰하게 하는 국내외 현대미술 작품 3점을 소개합니다.
갈등의 경계에서 자유를 외치다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
대한민국에는 매일 밤 주민들이 점호를 받고, 새벽에는 통행이 금지되며, 땅을 소유할 수도 없는 믿기 힘든 마을이 있습니다. 바로 비무장지대(DMZ) 안에 위치한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죠. 이름은 자유를 외치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삶이 통제되는 모순적인 곳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군사적 충돌의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금이나 병역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지지만, 국방부의 허가 없이는 이주할 수 없고, 32세가 되면 이 마을에서 계속 살지 떠날지 정해야 합니다. 이 고립과 긴장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국내 아티스트 듀오 문경원과 전준호는 남북한의 경계에 존재하는 이 마을을 배경으로 가상 공간을 재구성했습니다.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은 평화와 갈등, 자유와 억압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보여 줍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이 작품은 등을 맞대고 대립하고 있는 두 이념을 상징하듯이, 두 개의 다른 영상이 스크린 양면에서 동시 재생되는 방식으로 전시되었습니다. 각 영상에서 각기 다른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각기 다른 두 인물은 하나는 과거에, 또 하나는 미래에 살고 있으며, 같은 장소이지만 다른 시간 속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들의 고립된 일상은 묘하게 닮아있으며,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에 두 인물이 다른 차원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위 장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경계는 흐려지고, 관객은 이념적 대립과 고립의 상징인 이 마을 속으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됩니다.
전준호 작가는 인간은 자유를 잃을 때 가장 불행해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유의 마을에는 아직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 풍경이 오히려 그 속에 숨겨진 극적인 불균형을 더욱 부각하는 듯합니다. 단순히 한 마을의 이야기를 넘어, 현대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예술의 눈으로 재조명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 전시 페이지
부서질 듯한 아름다움
Fragile Future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가 자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기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죠. 스튜디오 드리프트(Studio Drift)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첨단 기술과 공예를 결합한 설치 미술을 선보이는 네덜란드 아티스트 듀오입니다. 자연이 가진 섬세함과 복잡함을 기술로 재현하는 동시에, 인간과 기술, 자연의 상호작용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며 현대 사회의 균형과 불균형을 조명합니다.
약 1만 5천 개의 실제 민들레로 만든 “부서지기 쉬운 미래 (Fragile Future)”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들의 마을처럼 환상적입니다. 민들레 홀씨 한 가닥 한 가닥을 재조립하여 중심에 LED 전구를 감싸는 아주 정교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민들레 조명들이 모여 유기체와 같은 군락을 이룹니다. 멀리서 보자마자 홀린 듯이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데요. 재채기라도 한 번 하면, 민들레 홀씨들이 흩어져 이 마을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이 작품의 이름처럼 말이죠. 차갑고 딱딱한 기계장치 속에서 화려한 빛을 발산하는 민들레는 자연 위에 인류의 첨단 기술이 덧대어져 위태롭게 살아가는 지구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부서질 듯 날아갈 듯 위태로운 자연의 질서는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사람들이 환경과의 관계를 느끼고, 그 환경이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길 바란다.”
_스튜디오 드리프트
화려함 속의 불완전함
Crystal of Resistance
빛나고 화려한 것들은 종종 우리를 현혹하곤 하죠. 토마스 허쉬혼 (Thomas Hirschhorn)의 “저항의 크리스탈 (Crystal of Resistance)”은 바로 현혹된 시선을 꼬집습니다. 크리스탈이라는 물질은 고급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상징하지만, 그의 설치 작품 속에서 반짝임은 오히려 이면의 불완전함을 드러냅니다. 허쉬혼은 크리스탈 외에도 알루미늄 포일, 플라스틱, 합판 같은 저렴한 재료들을 덕지덕지 박스테이프로 마감해, 조악하고 즉흥적인 느낌을 극대화합니다. 설치 공간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거부하며,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죠.
그는 물질적 풍요가 결코 사회적 균형을 보장하지 않음을, 오히려 이면에 감춰진 불균형을 강렬하게 시각화합니다.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불완전함, 그리고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죠.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적 즐거움을 넘어서, 깊은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허쉬혼의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정제된 미적 기준에 대한 단순한 거부를 넘어 관객을 참여자로 만드는 점입니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그저 감상자가 아닌, 불편함을 느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존재가 됩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물질적 풍요와 이면의 불안정함을 마주하며, 우리는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성찰하게 되죠. 불편함은 단순한 미적 불만족을 넘어, 자본주의가 숨기고 있는 진실과 개인이 잃어가는 가치들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세 작품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불균형과 불안정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유를 향한 갈망, 자연과 기술의 공존, 그리고 물질적 풍요 뒤에 숨겨진 불안함,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다양한 층위입니다. 작품들이 내포한 메시지는 단순히 관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내면의 성찰을 끌어냅니다. 예술이 던지는 아름다운 경고에 우리는 이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