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인들이
미술을 소비하는 방법

작품 구매에 한정되지 않는
미술 소비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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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는 대형 전시, 아트페어 등의 미술 행사가 성행하면서 미술시장이 크게 성장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죠. 특히 문화적 가치와 경험을 높게 사며 투자에 관심이 많은 MZ 세대들이 미술품 주요 소비자로 등장했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습니다. 소비를 통해 문화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 ‘아트슈머(art+consumer)’가 등장하고, 이들의 소비패턴을 분석하는 연구나 분석 기사들도 쏟아졌습니다. ‘미술 소비자’들의 소비문화가 주목받고 있는 지금, 필자는 작품을 사고파는 것 외에도 미술을 소비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미술 소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미술 소비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소수의 소유에서 대중의 향유까지

미술품을 사고파는 거래는 굉장히 고전적인 소비 방법이지만, 자유롭게 미술품을 거래하는 미술시장이 형성되기 전에는 작가를 후원하는 방식의 체계가 견고했습니다.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미술은 사회경제적 권력의 도구로써 기능했죠. 교회나 왕, 귀족은 예술가에게 초상화나 벽화와 같은 작품을 주문했고, 작품을 그려내거나 조각하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형식으로 미술 생태계를 꾸려나갔습니다. 굉장히 소수의 주체만이 미술을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미지 출처: Pexels

이보다 조금 더 익숙한, 오늘날 미술시장의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17세기쯤 네덜란드에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뒤, 네덜란드에서는 미술의 용도와 목적이 변하기 시작하며 그림의 주제가 달라졌습니다. 예술가들은 종교나 권력자들의 관심사에 종속된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여 그림을 소비할 수 있게 된 시민계급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 그들이 원할 법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에 따라 개인의 심미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일례로 풍경화와 정물화가 많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미술시장에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컬렉터가 등장하고, 이들은 자신만의 수집품을 모아 전시를 하기 시작합니다. 본래 특정 계층만 향유하였던 미술품들이 대중들을 대상으로 공개되며 근대적인 미술관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당시 미술 전시는 계몽주의적 사상에 발맞춰 대중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적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미술을 경험하며 얻는 비물질적인 가치의 중요성이 확대됐고, 이는 미술 소비의 목적에 가까워졌습니다.


미술 감상이라는 소비

이미지 출처: Pexels

미술의 쓰임과 소비 방식이 변화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미술이 소비의 대상이 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미술이 물리적인 작품으로서 거래될 때, 소비자는 후원과 구매를 통해 예술가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고 작품을 직접 소유합니다. 하지만, 전시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술은 물리적으로만 거래되지 않습니다. 꼭 나만의 공간, 내 집에 걸어두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시를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며 소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에서, 갤러리에서, 어떤 장소에서든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는 문화예술을 경험하는 비물질적인 소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때 미술은 경험재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작품 감상을 통해 소비자는 관람객이라는 소비 주체가 되고 문화예술적 경험의 가치를 체화하는 것이죠.

오늘날 미술 작품은 사고팔거나 관람, 감상이라는 행위를 통해 소비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소유가 아닌 전시를 통한 미술 감상이 가능해지면서 미술을 소비하는 방법이 확대되었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미술 소비자의 범주도 확장되었습니다. 오늘날 미술 소비자는 우리를 포함해 ‘미술을 감상하는 모든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술 감상이 곧 미술 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감상의 대가(代價)

미술을 감상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게 소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 수도 있습니다. 소비라는 행위는 그만큼 물질적인 대상을 중심으로 행해져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술을 이해하고 향유하고자 우리는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하거나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술을 탐구하고 향유하는 데 어떤 것을 대가로 지불하거나 소모하는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혹시, 미술을 소비하는 것의 대가를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라는 미술 소비자는 무엇을 지불하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지 상기시키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1) 김정모, “시간-예술 거래소”

김정모, “시간-예술 거래소”(2022), 이미지 출처: 리움미술관

웨이팅, 즐기시나요? 김정모 작가는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거래소 공간을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하는 “시간-예술 거래소”를 선보였습니다. 거래소는 바깥에서 관찰할 수도, 엿볼 수도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 내부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죠. 이곳에 입장하길 희망하는 관람객은 번호표를 뽑고 거래소 문 앞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줄을 서야 합니다. 그날 전시장을 몇 명이 방문했는지, 몇 명이 거래소 입장을 원하는지에 따라서 웨이팅 시간은 달라지죠. 긴 기다림 끝, 거래소에 입장하게 되면 웨이팅 했던 시간만큼 거래할 수 있는 시간 양도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작성된 계약서는 거래소 내 비치된 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작품을 완성해 갑니다. 그리고 관람객은 시간을 양도함에 따라 해당 작품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내용의 계약 증명서를 소유하게 되죠.

줄 서기, 시간을 양도하는 계약서 작성하기, 작품의 일부를 나눠 갖는 증명서 받기. 김정모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개입하도록 하며 예술가-작품-관람객 간의 관계를 견고하게 쌓아가는데, 이 가운데 거래라는 방식을 도입합니다. 실제로 관람객이 갖는 것은 계약을 증명하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줄을 서고 대기하는 행위를 통해 시간을 양도했고 작품의 생산 과정에 참여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거래 경험은 예술 감상이 단순히 ‘보는’ 행위가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 시간을 소모하며 예술가 또는 작품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관람객이 작품을 웨이팅하며 소모한 시간을 인지시키며 예술과 예술을 향유하는 경험이 갖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2) 프레드 모튼&스테파노 하니 with 준 리, “블랙 숄스/블랙-숄즈”

프레드 모튼&스테파노 하니 with 준 리, “블랙 숄스/블랙-숄즈”(2024), 이미지 출처: 부산 비엔날레

“블랙 숄스(Black Shoals)/블랙-숄즈(Black- Scholes)”를 작업한 프레드 모튼, 스테파노 하니, 준 리는 예술가라는 직업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프레드 모튼은 이론가이자 교수, 스테파노 하니는 교사이자 작가이며 준 리는 의사이자 교육자이며 동시에 예술가인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이들은 공동작업을 통해 오늘날 예술계의 금융화, 더 나아가 증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 명의 작가는 예술을 생산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술계 바깥에서의 시선을 지니는 외부인 정체성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대화는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다양한 입장에서 예술계의 현 상황과 향후 우려되는 지점을 논합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예술 작품이 상품 또는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던 단계를 넘어섰고, 이제는 예술계가 증권화를 직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박물관과 미술관이 아닌 은행과 헤지펀드와 같은 주체들이 예술계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세 작가는 예술계가 생산하는 것, 예술적 노동과 가치 등 모든 것이 평가절하될 것이며 최종적으로는 예술계가 스스로의 비물질화를 자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세 사람의 대화 내용은 ‘공정한 가치’라는 대담집으로 만들어졌는데, 대담집을 소유하고 싶은 관람객은 일시적인 노동을 통해 값을 지불하고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해당 작품은 관람객이 원하는 만큼 절구에 쌀, 암염, 조개껍데기를 넣고 갈아내도록 합니다. 관람객은 딱딱하고 견고한 물건을 분쇄함으로써 물질을 비물질화하는 것을 경험하고, 그 결과물을 ‘공정한 가치’의 값으로 지불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람객은 자신이 대담집을 갖기 위해 소모한 시간과 노동력을 인지하게 되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온전히 ‘내 것’이어야만 했던 시기를 지나, 한 공간에서 모두 함께 작품을 감상하면서 나만의 감상으로 온전한 ‘내 것’을 만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미술을 소비하는 방식과 형태도 변모했고, 우리는 전시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며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대가를 지불하며 미술을 소비해 왔고, 각자의 문화예술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미술 소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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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비

막연히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예술을 나누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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