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추모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비극을 올바르게 기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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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빛’을 대변하는 듯한 전세계 연례 행복 이벤트와 정반대의 ‘기념’을 매해 치르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온 우리는 특정한 숫자로 구성된 날짜의 모양만 보더라도 곧장 공통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2020년 2월 19일, 2022년 10월 29일. 비참하고 끔찍한 일, ‘참사’.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확산,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날짜를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무수한 참사들이 1년을 촘촘히 메우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숫자가 함축한 끔찍한 일을 기억하며, 세상이 그 순간에 멈춰버린 듯한 먹먹함으로 날을 기린다.

어느덧 현대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무사히 태어나 무사히 살아가고 있음을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생일을 기념하지도 않는다. 특정 종교가 전 세계 사람들 사이에서 몇 안 되는 공통점이었던 시절은 지나갔고,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워 생일을 기념해야 했던 시절도 어느덧 옛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기념일을 환희와 멋쩍음, 안부와 축복을 나누기 위한 핑계의 수단으로 삼는다.

하지만, 매년 돌아오는 사회적 아픔의 순간을 ‘기억’하는 일은 달라야 한다. 특히 참사의 진통을 온 사회가 함께 겪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비극의 발생과 봉합의 과정을 되짚어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참사란 ‘그 사람’에게만 벌어진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얼마든지 나의 비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사를 회고하고 추모를 완성해야 하는 일의 필요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나? 국가가, 사회가, 이웃이 나를 지켜주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체감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각자도생을 도모하며 사회와 타인의 아픔에 필사적으로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간다. 위험한 일이다. 건강한 애도가 누락된 사회에는 반드시 비슷한 비극이 포개어지기 마련이다.


사회적 참사를 겪고 1주기, 2주기, 3주기가 돌아왔을 때 문득 자신의 감정이 마모되었음을 느낀 적 있는가? 참사 직후 제대로 된 애도를 표할 수 있는 여건조차 구비되지 않는 임시분향소를 방문하고,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애도를 표하는 SNS 인증을 올리는 것으로 진정한 추모를 하고 있다고 자위해도 될까? 1년이 지나 돌아오는 기일마다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을 묻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뒤에 숨어 ‘그들’과 나를 분리해 타자화하고, 참사의 기억이 시간에 침식되도록 방치하는 것이 살기 위한 최선일까? 사회의 아픔을 인지하고 추모하는 과정의 시작부터 추모가 필요한 이유까지 찬찬히 단계별로 짚어보자.


추모의 시작
: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

추모와 애도의 일상화를 꺼리는 태도는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 기반한다. 심리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인간은 무의식 안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계속 간직하고 있으며, 이를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한다고 말했다.

장례 문화의 변화

그렇다면 죽음과 가장 맞닿은 장소라 할 수 있는 장례식장이나 묘지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은 어느 정도일까. 관혼상제 관습에 맞춰 번잡한 장례 절차를 지키는 문화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그보다 고인의 가치관과 신념, 활동을 기리는 장례식이 의미 있는 장례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할매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 서무석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나머지 멤버들이 랩 공연을 펼친 모습. 이미지 출처: 뉴스1

얼마 전 10월, 서무석 할머니의 장례식에서는 힙합 복장을 한 할머니들이 랩 공연을 선보였다. 지난해 8월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 거주하는 할머니 8명으로 구성되어 ‘K-할매’로 주목받은 ‘수니와 칠공주’ 멤버들이다. 혈액암 3기 진단을 받고도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매주 두 번씩 연습에 매진할정도로 랩을 사랑한 할머니를 기리는 의미 있는 장례였다. 영화 ‘써니’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광경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무조건 곡하고 슬피 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장례에서 즐겁게 웃고 고인을 추억하는 장례로 변하고 있는 긍정적 사례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장례식장 문화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웰다잉’(Well-Dying)문화가 확산 중이다. 원하는 장례식을 컨설팅 및 시뮬레이션 해주는 업체가 늘어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자기 개발서가 스테디셀러 자리를 차지한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곧 삶의 태도를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노후를 준비하는 장년층 사이에서는 품위 있고 존엄하게, 주체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문화에 대한 대화가 오간다. 삶의 마지막 모습 또한 주체적으로 설계하려는 의지의 확장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죽음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의식 발전’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자기 죽음마저 그럴 듯하게 보여주기 위한 발로로 ‘장례식 꾸미기’를 구상한다는 것이다. 모든 삶을 전시하는 SNS 중독의 폐해의 산물이라는 비판이다. 그 주장의 근거는 장례 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와 비례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공동 묘지, 화장장, 분향소 등 죽음과 관련된 시설은 철저히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시민 의식을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물론 장례 문화의 다양화와 화장장, 공동묘지 등의 시설을 ‘혐오 시설’로 여기는 님비(NIMBY)현상을 완전히 결부시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죽음을 일상의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들인 타문화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삶과 죽음을 먼 곳으로 떨어뜨려 놓으면서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죽음을 일상으로 초대하기

묘비 앞에 초상화와 인형 지하철표 등을 놓으며 마음을 표현하는 참배객들.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조미영

일본에서는 가족과 조상을 기리는 작은 불단이나 신단을 집 안에 차린다. 단에 놓인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일상 대화를 나누거나 기도하는 모습은 일본 드라마,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등장한다. 일본인들은 고인이 일상에서 함께 하고 있다고 여기기에, 그들에게 동네 납골당은 귀신이 모여 있는 공포의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을 지켜주는 조상신이 있는 영험한 장소다. 유럽의 공동묘지는 어떨까. 우리나라 산 속 묘지처럼 일상과 먼 곳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생활의 중심, 마을 중심에 자리한다. 번화가에 번듯이 자리한 공동묘지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마을의 중심에서 산 자는 고인의 죽음을 일상적으로 기릴 수 있다. 들꽃, 돌멩이, 작은 소지품을 놓아 추모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포스트, ‘스웨덴 사람의 인식을 단번에 바꿔버린 장소’

스웨덴 최초의 화장 묘지인 스톡홀름 숲의 화장터는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설계한 훌륭한 사례다. 화장터인 ‘숲의 묘지’를 설계한 군나르 아스플룬드는 스웨덴 사람들의 화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사람이 죽은 뒤 숲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사관을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형상화하고자 했고, 소나무 숲속에 죽은 자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공간에도 ‘숲의 묘지’라는 이름을 붙여 화장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줄이고자 했다. 고인을 만나러 보드라운 잔디 위를 지나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을 걸어가는 동안, 유족들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돌아가게 되는 태고의 자연을 온 몸으로 감각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스웨덴 사람들이 지닌 화장과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점차 완화되었다. 한 나라가 지닌 죽음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데 건축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죽음과 상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과 추모 방식의 다양성을 돌아보는 것은, 죽음을 건강하게 기리기 위한 출발의 최초 지점쯤에 위치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실제적인 사례로 접근해 보자. 단순한 죽음만이 아니라 비참하고 가슴 아픈 ‘참사’로 빚어진 죽음은 어떻게 일상에 녹아 들어야 할까?


추모의 건축

1)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이미지 출처: Studio Libeskind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유대인 박물관은 홀로코스트 역사와 독일에서의 유대인 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강렬한 외형과 독특한 설계로 극찬받는 곳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목표 지점이 보이지 않는 지그재그형 통로, 중심이 위태로운 기울어진 바닥이 관람객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외벽과 실내에는 찢긴 상처 같은 사선이 가득해 긴장감을 유발한다. 난방이 되지 않는 차가운 보이드에서는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오직 휘몰아치는 외부 바람 소리만 들린다. 나가는 문고리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순간 ‘갇혔다’는 두려움과 냉기에 몸을 떨게 된다.

학살된 유대인들을 연상시키는 박물관 내 공간 ‘기억의 공백’. 좁고 긴 창문으로 빛을 조절한다. 아무리 조심히 걸어도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이미지 출처: nomadasaurus.com

얼굴 형상의 조형물이 가득 깔린 방에서 걷노라면 조형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는데, 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학살된 유대인들의 비명소리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모든 공간 구성과 디테일은 학살되고 망명하던 유대인들의 기억을 거대한 공간으로 재현시킨 산물이다. 관람객은 대학살의 현장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참사의 기록에서 희생자를 ‘유대인’이라는 집단으로만 인지했던 사람들은, 개개인의 유품과 기록을 감상하며 참사라는 이름 뒤 존재하는 개개인의 상실과 고통을 비로소 내재화하게 된다.

‘추방의 정원’. 경사진 미로에서는 균형을 잡기도 힘들고, 출구를 찾기도 어렵다. 고개를 들면 무성한 나무가 하늘을 가린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홀로코스트 정체성을 갖고 태어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유대인의 아픔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작품과 공간을 기반으로 관람객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지하도록 설계했다. 과거를 잊지 않도록 뒤를 돌아볼 뿐 아니라 ‘새로운 이해’라는 희망을 구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박물관 내부의 ‘추방의 정원’은 추모 건축의 정수다. 이곳은 가로세로 일곱 개씩 배열된 콘크리트 기둥으로 구성되었다. 안에서는 그저 좁고 기울어진 미로로 느껴지지만, 박물관 밖으로 나와 바라본 조형물의 모양은 다르다. 콘크리트 사각기둥 위에 무성히 자리한 나무는 추모의 기념비를 딛고 뻗어가는 유대인의 희망과 미래를 연상시킨다. 관람객들은 박물관 내부에서 경험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실낱같은 구멍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리던 유대인들의 감정을 불현듯 떠올리며 감격하게 된다. 그렇게 유대인 박물관은 참사의 아픔은 고스란히 재현하면서도 그를 기반으로 ‘나아감’의 단계로 확장하는 진정한 추모를 돕는 예술 건축 작품으로 존재하고 있다.

2) 9.11테러를 기억하는 추모 공간 ‘부재의 반추’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

2001년 9월 11일, 두 개의 여객기가 뉴욕 110층 건물을 들이받으며 3,000명에 가까운 인명 피해와 최대 25,000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빌딩이 무너진 후, 이곳을 추모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현상설계 공모에서 앞서 소개한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한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마스터플랜이 당선되었다. 이듬해에는 마이클 어래드와 피터 워커가 ‘부재의 반추’라는 추모 시설을 설계해, 2011년 추모 공간이 완성된다.

이들은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사각형 풀을 설치한다. 희생자들의 빈자리를 기억하며 남겨진 자들이 흘리는 눈물을 상징하듯, 사각형 모서리에 폭포가 설치되어 약 9미터 아래로 물이 계속 떨어진다. 테두리에는 희생된 3,000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졌다. 공간을 설계한 어래드는 그 이름을 알파벳순, 혹은 임의로 배치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에게 물어 생전에 알고 지낸 동료, 친구, 가족들의 이름과 나란히 새긴다. 사랑하는 이들과 나란히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은 낮에는 밝은 곳에서 햇빛을 받아, 밤에는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아 반짝인다.

모서리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 이미지 출처: 아시아경제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부와 경제 중심지에 거대한 규모의 추모 공간을 만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반대는 극심했다. 하지만 갖가지 논란을 극복하고 완성되어, 현재 하루 평균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뼈 아픈 참사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아픔을 기리는 건강한 추모 방법을 학습한다.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

3) UTA항공 772편 추모비

이미지 출처: Atlas Obscura

추모의 건축은 반드시 국가나 지자체, 혹은 거대 기업의 주도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1989년 9월 19일, 콩고공화국 수도에서 차드를 경유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여객기가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전체 156명이 즉사한다. 화물칸 여행 가방에 은닉돼 있던 폭탄이 폭발하면서 여객기가 완전히 공중 분해된 것이다. 프랑스가 1978년 이후 리비아와 차드 사이의 분쟁에서 차드 편을 들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저지른 테러였다.

희생자의 유가족인 기욤 드누아 드 생 마르크는 카다피의 아들이 참석한 한 회의장에서 소리치며 사건을 거론하고, 공개 사과를 받을 것이 불가능할 것 같으니 합당한 보상금이라도 받기 위해 협상을 끌어낸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사고 잔해가 있는 현장을 방문한 생 마르크는 오래 전 과거에 세워진 추모비를 발견하는데, 피해자들 중 특정 기업 소속인 직원을 기리고자 동료들이 세운 명판이었다. 그는 사고기의 오른쪽 날개에 붙어 있는 이 명판을 일으키고, 반대쪽 면에 전체 희생자들 이름이 새겨진 명판을 부착해 추모비로 만든다. 그리고 사막 모래에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바닥을 파서 콘크리트 기초를 만들어 세웠다.

이미지 출처: zengarage

추모비는 사라져 버린 비행기의 크기와 동일한 크기로 제작된 원형 조형물 앞에 놓였다. ‘부재’를 상징하는 이 거대한 원형 조형물의 외곽에는 170개의 깨진 거울이 설치되었는데, 170명의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뜻을 담았다. 추락 지점의 신성함을 지키면서도 세상이 희생자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던 유가족들의 바람대로, 상공을 지나는 여객기는 반짝거리는 추모비를 바라보며 참사의 슬픔을 함께 공유한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모래가 조형물을 덮어 새로운 광경을 만들고 있다.

4)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일상의 추념’

이미지 출처: 에이플랫폼

우리나라에도 상징적인 기념비가 있다. 매헌시민의 숲에 자리한 ‘일상의 추념’이라는 이름의 기념비는 2011년 우면산 등지 산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가로 2.35미터, 세로 1.35미터의 사각 바닥 위에 세워진 15개의 기둥은 15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며, 기둥은 희생자 유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구현한 재료인 하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기둥 윗면은 경사지면서도 거칠게 처리해 비극을 불러온 산사태를 나타냈다. 우면산, 청계산, 구룡산 등 여러 산이 무너지는 참사의 모습을 함축하는 듯한 형태다.

이 기념비적인 추모 공간이 설립되기까지 우여곡절이 극심했다. 사고 지점인 우면산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아픈 기억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느냐”며 격렬히 반발한 것이다. 집값 하락을 우려하며 설치 반대에 앞장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사리 통과된 기념비는 협의 끝에 당초 사고 현장이 아닌 매헌시민의 숲에 자리하게 되었다.

씁쓸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점이 있다. 이 작품은 건축가가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고 의견을 취합해 나온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어떤 형태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데 가장 효과적일지 함께 고민하며 만든 기념비였다. ‘일상의 추념’이라는 작품 이름대로, 이 조형물은 추모라는 개념이 일상으로 녹아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상징적 추모 신문물이 되었다. 참사의 기억과 추모의 현장이 분향소, 묘지, 딱딱한 탑, 장송곡처럼 어둡고 형식적인 형태로만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추모의 강탈
: 올바른 애도의 형성을 막는 손

애도는 사회 환경, 상황, 조건과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재구성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애도 수준은 사회 시스템과 권력의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그 사회가 어떤 애도 윤리를 가졌는지에 따라 애도의 행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산 자가 결코 동일하게 체험할 수 없는 죽은 자의 ‘죽음’에 다가가면서 얽히는 공동 애도는, 수천만 가지 고유한 경험이 모여 하나의 마음을 이루려는 대단히 어려운 시도다. 함께 경험한 참사를 매개로 어렵사리 하나의 사회를 인지하고, 꿈꾸며, 체험하는 과정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함께 하는 애도는 우리 시대 공동체가 지닌 결여와 비관을 용기 있게 대면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는 동기가 된다.

이태원 참사, 강탈당한 애도의 기회

2022년 10월 29일 참사 며칠 후 11월 1일, 합동분향소에서 묵념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대통령실 제공

추모에서 비롯되는 힘 때문에 기득권층은 사회적 참사를 기리는 추모의 시도를 필사적으로 막는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참사 직후, 국가는 유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차단했다. 유가족과의 상의도 없이 차려진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없었다. “애도의 시공간을 국가가 점유”하는 관제 애도를 통해 참사는 빠르게 프레임 씌워졌다. ‘왜 갔는지’가 아닌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가 중요한 쟁점을 뒤로 하고 희생자들은 ‘놀러 갔다 죽은 사람들’이 되었고, 생존자들은 ‘놀러 갔다 혼자 살아난 사람’이 되는 2차 가해를 두려워하며 증언을 피했다. 정부가 참사를 단순 사고로 만드는 동안 유가족은 자신들이 피해자임을 거꾸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정부는 참사 직후 SNS, 언론을 통해 혐오와 단절의 2차 가해의 확산을 유도했다. 국민들이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희생자들을 오롯이 추모하고 고장 난 사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여지를 잘랐다.

마치 세월호 참사를 통해 학습한 듯, 이태원 참사가 정치적 사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꼬리를 자르는 대응이 이어졌다. 사건 다음 날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고, 희생자에게 위로금 2,000만원과 장례비 최대 1,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퍼졌다. 합동 분향소와 조기 게양, 검은 리본 배부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추모의 기한과 방식을 임의로 지정했다는 것부터 이 애도는 너무나 이상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사과하는 사람도 없었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과 계획 발표 또한 없었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애도의 권리마저 강탈당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항의를 이어가자 ‘마약’이나 ‘놀러 갔다 죽었다’는 프레임은 더더욱 퍼져 유가족은 보상금에 집착하는 집단으로 낙인찍혔고, 이태원 참사에 엮인 부정적 감정의 순환은 참사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혐오, 망각으로 이어졌다.

재난은 반복된다. 재난을 막을 수 없다면 재난 후 회복하는 ‘사회의 재난 회복력’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참사 피해자들을 비롯해 시민 사회 전체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 참여와 화합을 만드는 장이 곧 추모의 장이건만 유가족은 애도의 기회를 강탈당했고, 우리는 건강하게 자발적으로 애도할 수 있는 방식을 강탈당하면서 추모 방법을 학습할 기회를 잃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부터 세월호, 이태원, 오송지 하차도 사고 등 그간 숱한 재난을 겪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충분하고 적절히 애도한 경험이 없다.

혐오 정치의 시대에서 잃은 것

이미지 출처: 이코노미조

애도의 핵심이 정부가 의도한 정치적 쟁점으로 넘어가면서 ‘우리 모두 상처받았다’는 공동의 감각 또한 마모되었다. 슬픔은 ‘나약함’일 뿐, 애도를 강요하지 말라는 강변이 빠르게 퍼졌다. 추모의 자리가 일상에 방해가 된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혐오 정치가 전 세계적으로 주요 정치 전략이 된 시대다. 혐오 정치는 서로를 갈라치기하고 타자화함으로써 사람들이 연대하는 것을 막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연합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릴수록 기득권 집단은 위기감을 느낀다. 따라서 기득권층은 끊임없이 갈라치기를 조장한다. 경쟁 레이스에 선 사회 구성원들에게 생계가 걸린 경제 이익을 당근과 채찍으로 삼아 교묘히 연대를 막고, 온갖 종류의 혐오를 사회 전반으로 순환시켜 공감과 이해의 가능성을 철저히 제거한다.

자신이 겪는 비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대상으로서 국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 옆 사람, 익명 공간 속 낯선 타자를 탓하기란 너무나 쉽다. 국가가 만든 거대한 링 위에서 우리는 타자를 자신의 권리와 이득을 빼앗는 악한 존재로 여기고, 참사를 겪은 약자는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약은 존재’가 된다.


진정한 추모,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애도는 감정의 찌꺼기처럼 축적된다. 여러 국가적 재난을 겪으며 우리는 책임지지 않는 국가를 반복적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납득할 만한 답변은 물론, 참사에 대한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장조차 열리지 않았다. 보여주기식 담론에서는 몰랐다, 듣지 못했다, 보지 못했다는 말로 도망치거나 책임을 지웠다.

그렇다면 안전망 없는 사회 구성원인 우리는 공동의 애도를 영영 포기해야 할까? 수많은 실천 방법들이 있겠지만, 문화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슬픔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이미지 출처: pixabay

첫째, 슬픔은 고유한 것임을 기억하는 태도로의 전환이다. 사회가 폭력적으로 제시하는 추모의 방법과 슬픔의 정도를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애도일기>에서 롤랑 바르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회적 비극을 자신의 슬픔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에 슬퍼해야 할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이트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하고 떠나보냄으로써 애도가 성공한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 바라본 진정한 애도는 ‘무엇을 상실했는지’ 그 대상을 명확히 아는 데서 시작된다.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가 임의로 설치한 이름과 얼굴 없는 분향소를 보자. 우리가 무엇을 애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체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숱하게 겪은 참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비슷한 상실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참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거나, 현장을 찾아 그 장소를 건강하게 향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상실의 대상을 찾으며 깨닫는 상실이라는 감정의 무게. 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있어야 제대로 된 애도를 시작이나마 할 수 있다.

2) 애도하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이미지 출처: 뉴스1

둘째, 슬픔을 기억하려 노력하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인용한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말에 따르면, 숨기고 싶은 패악한 역사와 수치, 그 아래 희생된 피해자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올려놓는 일은 참사 이면의 낯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거대한 추모의 시작이다. 사회적 참사를 추념하는 예술 작품 설치를 금지하고 해체하는 움직임은, 해당 참사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 올려 진정한 애도와 건실한 비판, 대항의 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틀어막으려는 의도다. 일상 공간, 우리 눈, 손, 발이 지척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시각예술로 참사의 아픔을 형상화하는 것은 진부할지언정 가장 효과적인 애도와 사회 진보의 수단인 것이다.

앞서 소개한 추모의 건축물들을 비롯해 영상물, 공예, 전시 등 여러 퍼포먼스로 아픔을 기억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진흙 속 사금처럼 빛나고 있다. 특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제주 4.3, 광주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문학으로 남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큰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문학을 통해 뒤늦게나마 애도의 물결이 서서히 퍼지는 현상을 지켜보자면 정치권력이 참사를 다루는 방식을 학습하고 있듯, 우리 또한 예술을 비롯한 여러 방법을 활용해 참사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화합의 추모를 학습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믿어보게 된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올바른 추모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우리가 추모의 방법과 의미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적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인생에서 모두가 겪기 마련인 상실과 아픔이 개개인에게 닥쳤을 때도 각자 건강한 애도를 경험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올바른 추모 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필자는 아티클에서 소개한 몇몇 추모의 건축 공간을 직접 방문한 경험이 있다. 정교하게 설계된 공간에서 내 것 아니었던 슬픔을 내 것으로 가져오는 동안, 오히려 고유한 나의 슬픔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의 슬픔을 오롯이 감각하고 타인의 슬픔을 위무하는 진실한 애도를 학습하는 일은 오징어 게임처럼 위태로운 사회에서 서로를 붙드는 힘이 되고, 생을 하찮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청명한 마음을 만든다.

상실을 부지런히 감각하고, 슬픔을 힘써 수집하자. 애도의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의 감정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회가 규정하는 애도의 형식에 매몰되지 않도록, 진짜 애도가 지니는 본질과 파동을 주체적으로 익히는 것이다. 사실 진정한 애도를 ‘학습’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또 언제 닥칠지 모를 참사와 그로부터 빚어질 가해를 경계하는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인간으로서,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응당 행하고 누려야 할 추모의 권리와 애도 윤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죽음은 삶에서 완성된다. 슬픔이라는 감정조차 사치스러워지는 시대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초를 서는 일에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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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빈

고전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방황하고 반항하며 만드는 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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