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맨 뒷칸에 앉아 차내를 바라본 적 있나요? 대부분 승객들은 저마다 휴대 기기를 가로 혹은 세로로 들고서 네모난 화면에 집중합니다. 창밖으로는 가로수가 흐르고, 도심의 풍경이 생동하고 있는데도 휴대 기기가 내뿜는 화려한 노이즈를 선택하죠. 우리는 언제부터 자그마한 기기에 시선을 빼앗겨 왔던 걸까요. 짧고 단순한 영상 콘텐츠가 시간을 삼키고,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강제 급식시키는 지금. 의식적으로 다른 감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찾아야만 합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이번 시간에는 문화예술 팟캐스트 추천 리스트를 준비했습니다.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오디오 콘텐츠를 탐색해 보세요.
<시스터후드>
오디오 콘텐츠를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만큼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팟캐스트 <시스터후드>를 소개합니다. <시스터후드>는 오랜 시간 콘텐츠 기획자로 활약하고 있는 황효진 작가와 다채로운 장르의 글을 써온 윤이나 작가의 팀 헤이메이트가 만든 팟캐스트입니다. 팟캐스트의 이름처럼 자매애가 돋보이는 오디오 콘텐츠가 특징으로, 이들은 ‘여성이 보는 여성의 이야기’를 표방합니다. 진행자 황효진・윤이나 작가는 영화, 문학, 예능,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여성의 시선에서 소개하고 비평하며 나아가 사회 이슈를 리뷰합니다. 방송과 일상을 오가며 쉼 없이 대화한 이들의 이야기는 책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로 출간되기도 했죠. 두 작가의 시선을 빌려 대중문화 속 여성의 서사를 확인해 보세요.
<이연의 일기>
유튜브 크리에이터 이연을 아시나요? 이연은 드로잉 콘텐츠로 주목받는 크리에이터이자 두 권의 책을 발간한 작가입니다. 그가 제공하는 20분 안팎의 영상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해, 특유의 작화가 두드러지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죠. 그의 콘텐츠가 특별한 이유는 직접 그림을 그리며 얻은 지혜나 알아두면 쓸모 있는 삶의 철학을 전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그의 구독자들은 콘텐츠를 통해 주눅들지 않고 그림 그릴 용기와 일상을 지탱하는 힘을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연만의 언어가 팟캐스트 <이연의 일기>로 제공됩니다. 왠지 모를 불안함 때문에 뒤척이는 밤을 견디고 있다면 <이연의 일기> 에피소드를 한 편 청취해보길 바랍니다.
<김혜리의 필름클럽>
<김혜리의 필름클럽>은 영화평론가 김혜리와 SBS 라디오 PD 최다은, 배우 임수정이 공동 진행자로 참여하고 있는 오디오 콘텐츠입니다. SBS 라디오 센터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로, 현재까지 165회에 걸쳐 다양한 영화를 비평해 왔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 온 김혜리 기자가 주축이라는 사실만으로 구독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죠. <김혜리의 필름클럽>은 세간에 화제가 된 영화를 선정해 줄거리를 소개하고, 각자 영화의 아쉬운 점과 눈에 띄는 점을 공유하거나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요소들에 대해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일부 청취자들은 오디오 콘텐츠를 듣기 위해 영화를 관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영화상영관을 나와서도 영화의 여운을 곱씹고 싶다면 <김혜리의 필름클럽>을 추천합니다.
<조용한 생활>
마지막으로 필자가 자투리 시간에 필히 청취하는 팟캐스트 <조용한 생활>을 소개합니다. <조용한 생활>은 앞서 소개한 <김혜리의 필름클럽>의 진행자 김혜리의 두 번째 팟캐스트인데요. 특이하게도 월 1회 몇 편의 오디오 콘텐츠를 엮어 발행하는 ‘오디오 매거진’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정기구독 비용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매 호 알찬 구성을 자랑합니다. 오랜 시간 한 도시에 머문 경험담을 나누는 ‘한 도시 이야기’, <씨네21> 송경원 기자와 영화를 톺아보는 ‘극장전’, 이슬아 작가와 함께 사연을 읽는 ‘슬퍼지려 하기 전에’, 고전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고독한 고전음악방’ 등. 한 호에 자리한 다채로운 코너들은 기다림의 동력이 되죠. 한 편씩 듣다 보면 순식간에 모든 에피소드를 청취하게 되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INSTAGRAM : @stilllife.audio_magazine
<이즘의 뮤직 클라우드>
대중음악 웹진 이즘이 제작한 <이즘의 뮤직 클라우드>는 ANTIEGG 박수진 에디터가 진행자로 참여하고 있는 팟캐스트입니다. 박수진 에디터는 대중음악 평론가로 이즘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이즘의 뮤직 클라우드>를 통해 국내외 대중음악 소식을 전하며 독자로 하여금 음악적 식견을 넓힐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박수진 에디터의 인사이트가 담긴 콘텐츠라는 점은 물론, 시의성이 높은 주제를 선정해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업데이트한다는 점도 무척 매력적입니다. 음악씬의 굵직한 이슈들을 1시간 내외에 파악할 수 있으니,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청취자라면 마다할 수 없죠. 출퇴근 길 매일 비슷한 플레이리스트에 지쳐가던 차였다면, <이즘의 뮤직 클라우드>를 통해 신선한 자극을 찾길 바랍니다.
영상 콘텐츠가 날이 갈수록 화려하게 변모해도, 오디오 콘텐츠는 굳건히 마니아층을 늘리고 있습니다. 오디오 콘텐츠에 내재한 음성의 힘은 강력합니다. 적적한 공간을 채우고,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게 만들고, 외로움을 느낄 때면 가만히 온기를 전하는 역할을 해내죠. 이뿐만 아니라 청각에 의존해 입체적으로 무언갈 그려내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특성은 ‘경청’을 연습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습니다. 일상의 변화를 이끌 문화예술 팟캐스트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