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을 해체하는 사진가
마이클 올리버 러브

남성 패션을 재정의하는
케이프타운 사진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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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요구되었던 젠더의 역할과 이분법적 이미지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습니다. 작금의 시대는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구호와 함께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죠. 무엇보다 패션계의 지각변동이 눈에 띕니다. 앞서 발행된 희량 에디터의 아티클 ‘여성복과 남성복은 구분될 수 있는가’에서 살펴보았듯, 젠더를 명확히 구분하던 패션이 이제는 ‘젠더리스’라는 형태로 사회적 규범을 전복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있지요. 특히 패션 사진은 짧은 시간에 시각적인 이질감을 자아내 내재된 고정관념을 건드리는 데에 효과적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남성 패션을 재정의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사진가 마이클 올리버 러브의 작품을 통해 젠더의 경계를 다시 봅니다.


‘남성성’의 성전을 깨부술 때

이미지 출처: 마이클 올리버 러브 공식 인스타그램

케이프타운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올리버 러브(Michael Oliver Love)는 씬에서 ‘가장 유망하고 재능 있는 사진가’라 추앙받는 아티스트 중 한 명입니다. 에이전시 히어로 크리에이티브(Hero Creative)를 이끌며 친한 친구들과 함께 촬영에 임하고, 퀴어의 삶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죠. 그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전하기 위해 사진이라는 수단을 적극 사용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젠더를 평면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프레임을 다채롭게 채워내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마이클 올리버 러브 공식 인스타그램
이미지 출처: 마이클 올리버 러브 공식 인스타그램

그의 작품에서는 흔히 통용되는 ‘남성성’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강인함은 사그라들고, 부드러운 면모가 두드러집니다. 남성의 인체를 주된 피사체로 사용할 때도 투박한 모습이 아닌, 곡선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담아내지요. 사실 이러한 방식은 피사체가 여성인 경우에 흔히 적용되었던 것으로, 러브는 남성의 몸을 새롭게 전시해 규범을 전복시킵니다. 사회적 통념에 따르면 남성은 강인하고 정적이며 굳세어야 하지만 그의 작품 속 남자들은 부드럽게 웃고 유연하며 때론 약한 모습을 내비칩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이미지 출처: 마이클 올리버 러브 공식 인스타그램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스트런던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 자란 그는 자연 풍경과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파인더에 담아 왔습니다. 바다를 누비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 포즈를 취하고, 갈대밭 사이에 놓인 인간을 조명하며 자연과 인간의 교차를 눈여겨봤죠. 작품을 통해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곡선과 우리 몸의 곡선이 닮아 있고, 우리 몸 그 자체가 풍경의 일부임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광활한 자연 앞에 선 모델들은 하나의 점처럼 보이기도, 돌이나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미지 출처: 마이클 올리버 러브 공식 인스타그램
이미지 출처: 마이클 올리버 러브 공식 인스타그램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아이덴티티는 패션 업계의 주목을 받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그의 작품이 세간의 관심을 끌자 다양한 패션 매체가 그를 찾기 시작하는데요. ‘킨포크(Kinfolk)’ 매거진과의 작업을 시작으로 ‘보그(VOGUE)’, ‘버버리(Burberry)’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기에 이릅니다. 이전 작업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배경으로 인체의 굴곡을 강조했으며, 기하학적 오브제 안에서 인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등 눈에 띄는 프레임을 완성해내죠. 그의 사진은 시선을 끌만큼 독특하지만, 동시에 미묘한 편안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몸 사이에 깃든 평화. 풍경의 일부가 된 몸은 성별의 구분을 떠나 연약한 존재로 읽히기도 합니다.


퀴어 커뮤니티를 위하여

이미지 출처: 팬지 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

러브는 사회가 정의한 ‘남성’이란 규격에 도전하는 남성 패션 매거진 ‘팬지(Pansy)’의 창립자입니다. 팬지 매거진 역시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흐리게 만들고,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공간을 표방합니다. 꽃을 의미하는 영단어 팬지는 본래 성소수자를 비방하는 단어였지만 러브는 자신의 집단을 호명하는 명사로 사용함으로써 용어를 뒤집는 데에 성공하죠. 팬지 매거진은 현재까지도 소수자라는 이유로 끔찍한 폭력과 불평등을 겪는 사람들을 향해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팬지 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
이미지 출처: 팬지 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

러브는 한 인터뷰에서 “진주 귀걸이와 보아털 소재를 입은 남성의 이미지를 더 많이 보고 싶었다”며 남성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에 깊은 애정을 보였습니다. 실제 팬지에서는 남성성의 다채로운 면면을 조명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와 같은 이미지의 누적을 통해 러브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남자다움에 대한 보편적 기대에 도전하고, 입체적인 남성성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입니다. 퀴어 커뮤니티는 물론 나다움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면서요.


INSTAGRAM : 팬지 매거진


젠더의 분계선이 분명할수록 사회는 규격화된 성역할을 요구합니다. 성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이들을 배척하고, ‘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과 함께 시스템 바깥으로 내몰죠. 러브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남성성’이라는 정의를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만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과연 남성성은 하나로 정의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시선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다양성을 응시하는 순간, 사회의 외곽에서 비롯한 수많은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 오를 거예요.


WEBSITE : 마이클 올리버 러브

INSTAGRAM : @micahaeloliverlover


현예진

현예진

비틀리고 왜곡된 것들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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